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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정약용과 마과회통(麻科會通)
황태자의 사색
2022. 1. 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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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정약용과 마과회통(麻科會通)
조선시대 전염병 공포에 맞선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
어린 자식 잃은 슬픔 뒤로하고
국내외 서적 수십종 참고해
홍역처방법 제시한 `마과회통`
책 서두에는 총 8편으로 나눠
의서 구성 취지 자세히 소개
의학자로서 면모도 잘 드러나
- 입력 : 2022.01.22 0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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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전염병 공포는 대단했고, 전염병 퇴치를 위한 의학적인 방법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홍역과 두창 같은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의학서를 편찬하였다. '마과회통'은 전염병 치료를 위해 분투했던 의학자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마과회통'이란, 마과(麻科), 즉 마진(痲疹·홍역) 계통 병과 그 치료법을 모두 모아(會) 잘 통(通)하도록 정리했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1798년 10월에 완성한 '마과회통' 서문에서 먼저 송나라 범중엄이 말한 "내가 책을 읽고 도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천하의 인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黃帝)의 의서(醫書)를 읽어서 의약의 오묘한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것 또한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다"고 인용한 후에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다. 즉 어렸을 때 마진으로 사망할 뻔했다가 이헌길(李獻吉)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이 있다고 술회하면서, 이에 은혜를 갚고자 책을 저술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마과회통'에서 이헌길의 처방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도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 컸다. 정약용은 이헌길의 책을 가져다가 읽는 한편, 중국의 홍역에 관한 책 수십 종을 얻어서 조례(條例)를 갖추어 나갔다. 정약용은 홍역은 어떤 질병보다 전염 속도가 빠르고, 걸리면 고열로 사망하는 만큼, 무엇보다 홍역에 간편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하는 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정약용의 홍역 연구에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다. 바로 자식들의 죽음이다. 정약용은 1789년 12월에 태어난 아들 구장(懼장)이 1791년 4월 초에 죽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 '억여행(憶汝行)'을 지었다. 시에는 '마마로 죽는 것은 어찌하랴만/종기로 죽었으니 억울타마다/악성 종기 잘 낫는 웅황 썼다면/나쁜 균이 그 어찌 자랐겠는가'라며 악성 종기로 아들을 잃은 슬픔을 시로 남겼는데, 자식을 잃은 아픔은 당시에 유행한 홍역의 퇴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을 총애했던 정조도 아들 문효세자를 홍역으로 잃었다. 문효세자는 2021년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주인공인 정조와 후궁인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1786년 다섯 살 때 홍역으로 사망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은 정약용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졌다. 조선의 백성과 왕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라도 지긋지긋한 전염병을 잡아야 했다.
'마과회통'을 완성한 정약용은 책의 앞부분에 '팔편총목제어(八篇總目題語)'라 하여 8편으로 '마과회통'을 구성한 취지를 소개하고 있다. 병의 근본과 증상에 대한 원증편(原篇), 구역질, 목이 쉬는 것, 코피, 종기 등 병의 증세에 관한 인증편(因篇), 홍역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반점, 땀띠, 두드러기를 분별하는 내용인 변사편(辨似篇), 두진(천연두)과 마진의 차이와 함께 이치를 살펴 치료하고 여독을 다스리는 데에는 그 방법이 같음을 적은 자이편(資異篇), 마진 치료에 대한 잘못된 방법을 가리고, 이헌길의 처방을 적은 아속편(我俗篇), 정약용 자신의 견해를 밝힌 오견편(吾見篇), 하나의 처방이 여러 번 나와서 열람하기에 불편하므로 같은 것끼리 모아 갑을로 표시하고 분류하여 서로 현혹되지 않도록 한 합제편(合劑篇), 치료법 중 주된 것을 가려 현혹됨이 없게 한 본초편(本草篇)이 그것이다.
대개 정약용은 실학의 집대성자로 알려져 있다. 관직, 토지, 세금 제도의 개혁 방향을 제시한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관들이 지켜야 할 규범들을 정리한 '목민심서(牧民心書)', 형옥과 법률에 관한 저술인 '흠흠신서(欽欽新書)'는 1표 2서라 하여 사상가이자 실학자로서 그의 입지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들 저술 외에도 정약용은 자연과학, 국방, 역사, 지리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성과를 낸 학자였고, '마과회통'은 전염병에 맞서 분투한 의학자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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