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與장악 시의회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시정 바로세우기 25% 그쳐”
오세훈 “與장악 시의회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시정 바로세우기 25% 그쳐”
[안준호가 만난 사람] 취임 9개월 맞은 오세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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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9개월여간의 시정(市政) 운영을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비유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수레바퀴를 멈추려 한다는 뜻)’이라는 표현도 했다. 서울시의회 전체 의석 110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99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시정 운영 자체가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올해 예산 편성에서도 오 시장의 주요 공약 사업들은 시의회 심의를 거치면서 대폭 삭감됐다.
오 시장은 지난해 4·7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58% 득표율로 압도적 승리를 했지만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시의회의 벽을 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지난 20일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오 시장은 “지난 9개월여는 10년여 세월 동안 잘못된 서울시 바로 세우기에 총력을 기울인 기간이었다”며 “목표했던 것의 반의 반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고 했다. ‘서울시 바로 세우기’는 민간 위탁금·보조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몇몇 시민 단체가 사업을 독점하면서 발생한 비정상적이고 관행적인 혈세 낭비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는 “’시작이 반’이란 생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 4곳에서 통신 자료 조회를 당했다. 오 시장은 정보 공개를 청구해 통신 조회 사유를 물었다. 하지만 모두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그는 “지난 연말쯤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도 들었다”고 했다.
오 시장은 현재 대선 정국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선거전보다 정책 비전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장악 시의회에 좌절감 연속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으로 돌아온 소회는.
“지난 10년간 시 조직의 운영 상황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시민 단체 활동 경력만 갖고 시 팀장·과장·국장 자리를 맡아 갑자기 공무원들을 지휘 통솔하는 간부가 되니 공무원들로서는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예산 운영도 위탁 사업이나 보조금 사업을 빙자해 방만하게 이뤄졌다. 시민의 한 명으로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기간이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이런 것들을 바로잡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기간이었다.”
-당초 TBS 출연금 삭감이나 시민 단체 관련 민간 위탁 보조금 사업 예산을 삭감하려고 했으나 시의회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되살아났다. 서울시 바로 세우기 성과는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나.
“목표의 4분의 1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시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의석수에 밀려 반의 반쪽의 혁신밖에 못 이뤘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혹은 ‘당랑거철’의 형국밖에 안 됐다. (민주당이) 90%를 장악한 시의회를 상대로 뭔가를 바꾼다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들도 있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가장 간단한 예로 ‘아이 서울 유(I SEOUL U)’라는 서울시 브랜드가 있다. 외부에서 서울시를 바라보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브랜드인데 외국인들은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콩글리시’ 브랜드를 바꾸려고 해도 어렵다. 조례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시의회에서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서 조례로 제도화돼 있는 일들을 바꾸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목표 달성이 힘들고 늘 좌절의 연속이었다. 9개월여간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혁신을 시도하다가 의석수에 밀려 또다시 좌절감을 맛보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울시 바로 세우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시작이 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변화였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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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했을 때 협치를 강조했는데 잘 안 되는 것 아닌가.
“시의원들이 당론에 구속돼 터무니없는 행태를 보일 때도 있다. 지난 연말 예산 정국에서 10개 이상의 항목은 100% 예산이 삭감됐다. 그런 예산을 살려내는 과정에서 (시의회에) 많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서울시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삭감했던 예산을 다시 늘린 것이다. 과거의 구조화되고 관행화된 잘못들을 바로잡으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나는 시민 단체란 표현보다 서울시 관변 단체, 기득권 단체란 표현을 쓴다. 이들에게 흘러들어 가던 인건비 명목의 예산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지만 일정 부분 되살아났다.”
-시의회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필요할 때는 강경하게 대처하고 또 협상을 이끌어낼 때는 유화적으로 하겠다. 강경책과 유화책을 넘나들며 융통성 있게 하지 않으면 시의회를 상대하기 어렵다. 협상을 통해 내줄 건 내주고 지켜야 할 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겠다.”
재개발 절차 간소화로 주택 공급 숨통
-과거 무상 급식에 반대하면서 선별적 복지를 강조했는데, 최근엔 보편적 복지로 선회한 듯하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통 때와 위기 상황에 구사해야 할 정책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코로나 국면은 비상 상황이었다. 본질적으로 여전히 하후상박(下厚上薄·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후하고, 형편이 나은 사람에게 박하다) 정책이 필요하다. 어려운 분들을 더 도와야 한다는 제 철학은 ‘안심 소득(기준 소득에 못 미치는 가계 소득의 부족분을 서울시가 일정 부분 채워주는 소득 보장 제도)’ 등 서울시의 여러 정책에 녹아 있다. 그런데 지금 굉장히 어려운 계층을 꼽자면 청년층이다. 청년층이 지금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약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어떤 정책보다 최우선 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가 이슈다. 서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나.
“경제학의 기본 원칙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무시한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이 최악의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을 만들었다. 취임 이후 신속통합기획(사업 초기부터 시가 조합 등과 협의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시키는 재개발·재건축 기획) 등으로 재개발·재건축 정상화의 단초를 마련했다. 주택 공급의 숨통이 트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서울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는데 오세훈표 재개발이 다시 집값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하는데.
“집값 상승의 책임을 9개월 된 시장에게 돌리나. 4년 만에 서울 아파트 값을 2배까지 급등시킨 정부 여당이 할 말은 아니다. 작년 서울 아파트 값이 12.1% 오를 때 경기는 26.9%, 인천은 33.5% 상승했다.”
“도청 조심하라”는 경고 많이 받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 4곳에서 통신 조회를 당했다. 정보 공개를 청구해 통신 조회 근거를 묻겠다고 했는데.
“답변이 왔는데 모두 ‘수사 중인 상황이라 알려줄 수 없으니 양해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왜 통신 조회를 당했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여러 경로로 들었다. 특히 지난 연말 제가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조심하라’ 는 경고를 복수의 경로로 들었다. 그래서 통신 조회 여부를 의뢰해 본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어떻게 바라보나.
“선거 때마다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이 지속된다. 하루빨리 생산적인 토론이 시작돼 정책 비전 경쟁을 해야 한다. 국민 통합과 경제 활성화, 공정과 상생의 사회에 대한 시대정신이 경쟁의 화두가 돼야 한다.”
서울시 변화 실행에 5년은 필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또 도전한다고 했다. 서울 시민에게 ‘왜 오세훈이어야 하는가’ 설명한다면.
“작년 보궐선거에 임하면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나, 새로운 비전 설정과 실행에 5년은 필요하다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드렸다. 아마 많은 시민이 거기에 동의해서 저를 선택해 주신 게 아닌가 믿고 있다. 책임감을 절감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목표의 반의 반 정도밖에 이루지 못했다. 이제 변화의 기초는 놓았다.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에 따르면, 2010년 서울의 ‘글로벌 도시 지수’는 10위였는데 2020년 17위로 추락했다. 다시 끌어올려 ‘글로벌 톱5 도시’로 만들겠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께서 도와달라.”
☞오세훈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0년 서울 강남 을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돼 국회에 입성, 16대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 2010년 재선에 성공했다. 2011년 8월 전면 무상 급식에 반대하며 서울시장직을 걸고 이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쳤다가 투표율이 주민투표 성립 요건인 33.3%에 못 미쳐 무산되면서 중도 사퇴했다. 지난해 4·7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