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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없인 못산다던 그 바닷가…연30만명 찾는 감성마을 된 사연 [핫플레이스]

황태자의 사색 2022. 1. 2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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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없인 못산다던 그 바닷가…연30만명 찾는 감성마을 된 사연 [핫플레이스]

강원도 동해 묵호 `논골담길`

쇠락한 어촌 담벽에 벽화 그려
이야기 있는 감성 마을로 변신
골목마다 카페·펜션 들어서며
해마다 30만명 여행객 `북적`

  • 이상헌 기자
  • 입력 : 2022.01.28 16:00:42   수정 : 2022.01.28 20:36:58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 마을. 1940년대 이곳 판자촌은 마치 고층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감성 벽화로 채워진 `논골담길`로 관광명소가 됐다. [사진 제공 = 동해시·공모전 당선작]
'묵호를 아는가'. 소설가 심상대가 자신의 소설 제목을 이같이 붙인 것은 이제는 항구 이름으로만 남은 옛 묵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강원도 동해 묵호항 앞 작은 언덕에 형형색색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달동네가 있다. 언덕 꼭대기에 하얀 등대가 있는 '묵호등대 마을'이다. 마을은 1930년대 삼척 일대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묵호항을 중심으로 어부와 그 가족들이 터를 잡으며 형성됐다. 당시만 해도 묵호항 일대는 오징어와 명태 등 어획량이 풍부해 블록으로 벽을 세우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린 판잣집이 하나둘 생겨났다. 주민들은 언덕 곳곳에 오징어와 명태 등을 말렸다. 이 때문에 '○○ 덕장집'이라는 택호가 많았다.

1941년 묵호항이 동해안 제1 무역항으로 개항한 뒤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선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늦은 밤 묵호항에 입항하면 언덕 판자촌이 마치 고층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해항이 크게 성장했고, 묵호항 일대는 급속도로 쇠퇴했다. 어획량까지 줄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떠나고 빈집이 생겨났다. 몇몇 어르신만 남아 삶을 꾸려가며 동네는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논골담길은 오징어가 널려 있는 덕장 등 옛 묵호 이야기가 담긴 벽화로 채워져 있다. [사진 제공 = 프로젝트 미터]
이랬던 동네가 '감성 마을'로 변하기 시작한 건 2010년 무렵이다. 동해문화원이 문화전승사업의 일환으로 골목길을 따라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공공미술공동체 마주 보기(현 문화기획사 프로젝트 미터) 회원 작가들이 벽화 작업을 맡았다. 작가들은 주민을 인터뷰하고 오징어가 널려 있는 덕장, 생선을 손질하는 아낙네, 항구에서 지게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어부 등 옛 묵호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당시 벽화 작업을 총괄했던 유현우 씨(동해시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38)는 "직접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과 지역 정서, 문화를 벽화에 녹여냈다"며 "작가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을 드러내지 않고 지역에서 공감할 수 있는 색깔을 입혔다"고 회상했다.

논골담길은 논골1·2·3길, 등대오름길 등 네 갈래로 나뉘며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다. 논골1길에는 과거 도시를 밝혔던 사람들과 그들의 생업이, 논골2길에는 구멍가게 등 지금은 사라진 추억이 벽화로 녹아 있다. 논골3길에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강인하고 엄했던 아버지의 모습 등 가정에서 벌어졌던 일화가 담겼다. 등대오름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묵호의 환경을 담아낸 골목이다.

벽화 곳곳에 새겨진 글귀는 감성을 자극한다. 어선 불빛이 수놓은 밤바다를 그린 작품에는 '오늘도 아버지의 등불은 검은 바다 위를 서성인다'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장화 그림과 함께 '오징어, 명태가 넘쳐나던 그 시절… 온 동네 흙길이 물바다가 됐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는 글귀는 어부의 삶을 진지하면서도 재치 있게 담아냈다.

논골담길은 경사가 완만한 편은 아니다. 골목은 1~2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그동안 일부 보수 공사가 진행되긴 했지만 벽돌과 시멘트로 만든 계단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이 또한 논골담길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판잣집들과 정겨운 벽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항구와 어선들, 그 뒤로 펼쳐진 동해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든 작품으로 만든다.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카페와 쉼터, 펜션 등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생선을 손질하는 아낙네 등 옛 묵호 이야기가 담긴 벽화로 채워져 있다. [이상헌 기자]
여기저기 둘러보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정상에 있는 묵호등대(1963년 건립)에 다다른다. 과거 묵호항을 드나들던 배들의 길라잡이였던 등대는 현재 여러 색을 발하는 LED 조명으로 아름다운 어촌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등대 주변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공원이 있다. 공원은 1968년 정소영 감독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영화에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논골담길은 해마다 약 30만명이 찾는다. 특히 레트로(retro)를 넘어 뉴트로(New+retro) 바람을 타고 젊은 층 사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맛집'으로 통한다. 한 SNS에서는 논골담길 관련 게시글이 현재 2만3000여 개에 이른다. 지난 16일에도 논골담길은 젊은 연인들로 가득했다. 너도나도 "이 동네 참 이쁘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휴대폰을 들어 올리고 포즈를 취하기 바빴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이수진 씨(27)는 "동네가 아기자기하고 이쁘다"며 "감성적인 벽화와 바람개비, 등대 등 인생샷을 찍을 곳이 너무 많다"고 흡족해했다. 가족과 찾은 이하늘 씨(37)는 "이런 풍경이 낯선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며 "눈 내린 날에 와도 이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촌 마을인 만큼 싱싱한 회 한 사발도 빼놓을 수 없다. 묵호항 주변 어느 횟집을 가든 강원도 인심은 서비스다.

[동해 = 이상헌 기자]

[핫플레이스] 묵호등대 가는 입구…'도째비골' 오싹오싹

체험관광시설 스카이밸리

  • 이상헌 기자
  • 입력 : 2022.01.28 16:00:32   수정 : 2022.01.28 16:16:01
 
 

[사진 제공 = 동해시]
"엄마~!" 논골담길 근처에 비명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동해시가 묵호등대 진입로 유휴공간에 국비 등 80억원을 들여 조성한 복합체험 관광지다. 여기서 도째비는 '도깨비'의 강원도 방언이다. 과거 묵호항 일대가 번성했을 당시 밤비가 내리면 푸른빛으로 보인다고 해 도째비골로 불렸다. 이름처럼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곳이다. 스카이사이클과 스카이워크, 원통 슬라이드 등 '스릴 만점' 체험시설 때문이다. 스카이사이클은 59m 높이에 설치된 와이어를 따라 상공을 달리는 자전거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아 비명이 절로 나온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함께 꼭 들러야 할 곳이 '해랑전망대'다. 해랑전망대는 도째비골과 비슷한 시기에 개장한 시설이다. 길이 85m 해상 교량으로 길이는 짧지만 바닷가 쪽으로 나 있어 경치가 장관이다. 일부 구간은 유리 바닥 구조여서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교량 전체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돼 포토존으로도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