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럭 호철’서 ‘할아버지’로, 팀 바꾸려고 나 먼저 변했죠
‘버럭 호철’서 ‘할아버지’로, 팀 바꾸려고 나 먼저 변했죠
[스포츠 오디세이] 여자배구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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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체육관에서 환하게 웃으며 촬영에 응한 김호철 감독. 정준희 기자
‘버럭 호철’이 변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도끼눈을 뜬 채 선수들을 몰아붙이던 독종 승부사가 이제는 실수해도 웃어주고,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됐다. 여자배구 IBK기업은행 김호철(67) 감독 얘기다.
이탈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내던 김 감독은 IBK기업은행의 러브콜을 받았다. 김사니 코치와 주전 세터 조송화의 팀 무단이탈 및 ‘감독 교체 쿠데타’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IBK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김 감독이 팀을 쇄신해 주기를 원했다.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답게 최고의 선수와 지도자로 커리어를 쌓은 김 감독이었지만 여자 팀은 처음이었다. 부임 후 6연패에 빠졌다가 지난 1월 15일 흥국생명을 꺾고 첫 승을 올린 김 감독은 이후 1승1패를 거두며 팀을 안정시켜 나가고 있다. 프로배구 V리그 4라운드를 마치고 5라운드를 준비 중인 김 감독을 경기도 기흥에 있는 IBK기업은행 연수원에서 만났다.
가끔 ‘버럭’ 하지만 마스크 덕에 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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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3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IBK기업은행과 도로공사의 경기에서 산타 모자를 쓴 김호철 감독이 김수지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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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감독이 김하경 세터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뉴스1]
김 감독은 ‘지도자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는 “제가 먼저 체육관 올라가서 기다리고, 충분히 대화하고, ‘오늘은 이런 거 할 거다’ 공고해서 이해시킵니다. ‘나는 기본만 줄 테니 응용은 너희들이 해라’고 강조하죠” 라고 말했다.
세터 김하경 성실, 이진은 테크닉 장점
조금은 불편한 질문을 할 때가 됐다. 이번 IBK 사태가 코치와 일부 베테랑 선수가 작당해서 감독을 몰아낸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라며 “여자 프로팀에서 감독의 중요성을 잊고 있는 것 같아요. 선수만 잘 관리하면 된다 하는데, 그 선수 관리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감독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수도 지도자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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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UCN 유튜브 채널
김 감독이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IBK기업은행이라는 명문구단을 자랑스럽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우승도 좋지만 팬들이 ‘아하, 우리가 좋아하던 배구가 다시 왔구나’ 하는 느낌을 만들어 주는 게 제 역할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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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뛸 당시의 김호철 세터(가운데). [중앙포토]
“너네 감독은 뒤로 물러서는 거 싫어해. 사움닭(싸움닭)이야.”
“발에 못질해 놨냐? 점심 때 뭐 잘못 먹었어?”
IBK기업은행 경기는 게임보다 작전타임이 더 재미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호철 감독의 원초적인 표정과 멘트, 선수들의 각양각색 반응이 어우러지는 ‘개그 쇼’다.
김 감독이 부임 후 첫 승을 거둔 흥국생명전에서도 ‘작탐(작전타임) 개그’는 이어졌다.
2-2로 맞선 5세트, 승리까지 1점을 남긴 14-11에서 김 감독은 세터 김하경에게 “(수지) 언니한테 하나 빼 주면 누가 잡아먹어? 이 색기야”라며 김수지에게 토스할 것을 지시한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김수지에게 김 감독은 “웃지 말고 결정을 내 줘야 한다니까”라고 채근한다.
김 감독은 “옛날에는 작전타임에 화를 내면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고,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싶어요”라고 회고한 뒤 “내가 경상도 톤이라 선수들이 잘 못 알아듣는 게 많아서 듣기 쉽게 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연습하면서 다 얘기했던 부분인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면 그 부분을 빨리 캐치해서 전달하려다 보니 엉뚱한 말도 나오고, 선수들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과 비유를 섞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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