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책 100권' 기적…통장 3700원 일도씨, 식당 20개 CEO 됐다
'1년 책 100권' 기적…통장 3700원 일도씨, 식당 20개 CEO 됐다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이스트빌리지 광화문점'에서 만난 김일도 ‘일도씨패밀리’ 대표. 첫 책 『사장의 마음』과 주방용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김상선 기자
“20대 때 성공만 향해 달리다 보니 공허해지더라고요. 친구들과도 마음껏 놀고도 싶었고요. 술도 마셔보고 이것저것 다해봤는데 유일하게 마음을 식혀준 게 책이었어요.”
김일도(39) 일도씨패밀리 대표는 책 읽고 글 쓰는 요리사업가다. “멋져 보여서 사놨다가 읽지도 않고 책장에만 꽂아두기가 미안해서” 2007년 시작한 ‘1년에 책 100권 읽기’는 15년째 진행 중이다. 그는 “동기 부여를 위해 설정했던 목표가 지금은 생각이 고이지 않도록 해주는 자극제가 됐다”고 했다. ‘카르페 디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명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라틴어 수업』이 그의 인생 책이다. 사업을 하면서 조각조각 일기처럼 썼던 글을 모아 2019년 첫 책『사장의 마음』을 출간한 이후 지난해 『상하이를 여행하는 법』까지 어쩌다 3년 연속 책을 한 권씩 내게 됐다.
김 대표를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이스트빌리지서울 광화문점’에서 만났다. 그는 “100권 읽기를 3년 하니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면서 “‘사업하겠다’ ‘성공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경영도 나를 알고 직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생기더라”면서다. 그는 이번 설에도 전 매장을 돌며 직원들에게 직접 ‘떡값’을 돌렸다. “빳빳한 신권을 준비하는 과정도, 몇 글자 적힌 봉투에 담는 과정도 선물인데 그걸 손으로 건네면 돈에 온도가 붙는 느낌”이란다.
알바생 내보내니 통장 잔고 3700원

김일도 대표는 곱창으로 세계정복을 꿈꾸며 사업에 나섰지만 첫 가게에서 실패를 맛봤다. 마지막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면서 봤던 통장 잔고 3700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김상선 기자
그는 ‘시장 곱창집 아들’이다. 어릴 적 별명도 ‘곱창’이었다. 창피한 적도 있었지만, “엄마의 가게를 세계적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키웠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 뒤 30년을 장사해온 어머니에게 브랜딩이니, 마케팅이니 간섭하다 2010년 “내 것을 차려서 증명해 보이겠다”며 엄마 가게 상호로 호기롭게 첫 곱창집을 열었다. 보기 좋게 망했다.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야 했다. 아르바이트비를 인출한 뒤 통장 잔고는 3700원. ‘잘린’ 알바생이 친구를 데려오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들을 데려 와준 덕에 버텼다. 사람들은 젊은 사장님을 ‘일도씨’라고 불렀다.
1년을 버티자 망한 이유가 눈에 보였다. 김 대표는 “친구들이 지켜준 첫 가게를 차마 폐점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11년 신사동에 ‘일도씨’ 이름을 내건 곱창집을 새로 열었다. 임대료를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악의 입지를 선택했다. 수익은 생겼지만, 점심 장사가 문제였다. 점심 특선으로 닭갈비를 내놓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가 만든 닭갈비가 곱창집 사이드 메뉴 취급받는 건 싫어서” 2013년 방배동에 ‘일도씨 닭갈비’를 열었다. 가맹 문의가 밀려들었고, 대만과 미국에도 진출했다. 그는 “곱창으로 세계정복을 꿈꿨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닭갈비가 성공하더라”며 웃었다.
김 대표도 한때 프랜차이즈 왕을 꿈꿨지만, 가맹 사업은 하지 않는다. 직영점만 20곳을 두고 있다. 김 대표는 “나는 (입지가 최우선이라는) 프랜차이즈와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왔다”며 “내 돈을 날리더라도 쇼핑몰, 오피스, 주택가 등 수많은 상권을 직접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위기도 끊이지 않았다. 구제역 파동부터 조류인플루엔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까지.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30% 줄었다는 그는 “코로나는 안 무서운데 영업제한이 제일 무섭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1000~2000원만 더 주면 국산 김치”

김일도 대표는 "어머니가 걸어왔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30년 넘게 서울 송파구 마천시장에서 곱창집을 운영 중인 어머니 정애정(63) 씨와 함께. [사진 김일도]
김 대표는 “여전히 세계정복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흑인이 일도씨 찜닭을 먹는 장면이 그렇게 뿌듯했다”는 그는 “코로나가 풀리면 미국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7년 미국에 팝업 매장을 열었지만, 입주했던 건물이 소송에 휘말려 문을 닫았다. 그에겐 다른 꿈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식당 창업은 너무나 쉽고 필수로 받아야 할 교육도 없다. 배울 곳도 없고 정보를 얻을 곳도 없다는 얘기”라며 “외식업 정보를 공유하고 종사자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전문성 교육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선 김 대표를 ‘제2의 백종원’이라고도 한다. 한때 연관검색어로도 떴다. “과분한 칭찬”이라던 그는 그러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어머니가 걸어왔던 길”이라고 했다. “시장 방앗간에서 짜온 참기름 듬뿍 넣어주는, 보물 같은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요리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즈니스에 녹여보고 싶었다”면서다. 그가 한식 메뉴와 국내 식자재만 고집하는 이유다. “중국산 다 싫어하잖아요. 8000원짜리 김치찌개에 1000~2000원만 더 주면 국산 김치 쓸 수 있어요. 손님이 음식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기꺼이 가격을 지불해야 좋은 식당들이 더 많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