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도 썰어본 이가 잘 썰어” “옳다 우기는 민주당에 지쳐”
“홍어도 썰어본 이가 잘 썰어” “옳다 우기는 민주당에 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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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대선 민심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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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이후 첫 주말인 지난 5일 광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구 양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반찬 등을 파는 상점가 외엔 한산했다. 광주=김성탁 기자
무등산은 전날 밤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눈은 그쳤지만, 지난 5일 광주광역시 서구 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 부는 바람은 매서웠다. 터미널 건물 너머로 HDC 현대산업개발이 신축하다 붕괴 사고가 난 주상복합아파트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인자 우리가 보믄 그 사람 머릿속에 뭘 담고 있는지 알잖어.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이재명이 윤석열보다 훨 낫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은 나름 대화하는 법은 습득했겄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허제. 윤석열 찍겠다는 사람도 있다던디, 막상 투표하러 가믄 이재명 찍을 거 같에요, 내 생각엔.”
“이재명 프라이버시 안좋아 … 이미지 좋았다면 찍어도 마음 편했을텐디”
“이재명 증오정치 할 것 같은게 걱정” “윤석열 지지기반 수구세력 같아”
“민주당 싫어 윤석열 뽑겠다는 사람도” “이재명 정 못 찍으면 안철수로”
건축업 때문에 충남 서산행 버스를 기다리던 남모(58·서구)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최근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 관련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그는 “부인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진 않는데, 이쪽이나 저쪽이나 쌤쌤”이라고 반응했다. 지난 3일 첫 4자 TV토론을 봤다는 그는 “윤석열은 말을 잘해도 척만 하는 거지 실질적으로 아는 건 없어 보였다”며 “이재명도 이 정도는 알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쳤다”고 평했다.
이와 달리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던 정모(52·서구)씨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저도 민주당 지지자인데, 맘이 가질 않아요. 설 연휴 때 매형에게 ‘누구 찍을란가?’하고 물었더니 ‘이재명 찍어야지 그럼 윤석열 찍어?’ 그러더라고요. 근데 전 잘 모르겠어요.” 정씨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던 홍준표 의원이 후보로 나왔으면 찍어줄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표현이 솔직하고 하겠다는 게 긍정적으로 보여서였단다. 투표할지 불분명하다고 밝힌 정씨는 “이재명씨는 증오 정치를 할 것 같은 게 걱정인데, 마음속 울분 같은 거로 정치를 하면 어긋날 것 같다”며 “윤석열씨는 지지기반이 좀 수구세력이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찍을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깨끗한 면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후보 가족 의혹과 관련해 정씨는 “이재명씨는 또 부인 문제가 나오지 않았느냐”며 “대장동도 흘러가는 것 보면 이상하다”고 말했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 논란에 대해선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안희정씨가 불쌍하다는 말은 우리가 말 못하는 것을 해주니 시원한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호남은 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이다. 대선을 한 달 가량 남기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정권 재창출 여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심장부인 광주의 민심은 한목소리가 아니었다. 터미널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던 버스 기사 두 명도 그랬다.
“윤석열을 찍기 뭐해서 이재명을 선택했는데, 개인 프라이버시가 너무 안 좋다 보니까…. 이미지만 더 좋았다면 찍어도 마음이 편했을 것 같은디.” 정모(51·광산구)씨는 이 후보 가족 의혹과 관련해 “사과도 한 두 번이지 않냐”고 말했다. 함께 있던 배모(56·광산구)씨는 “투표하는 날 무등산이나 가야겠다”고 운을 뗐다. “이재명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어요. 부동산 정책이 지금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용적률도 그렇고 다 풀어줘 버린다고 해싸서 맘에 안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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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속버스터미널 건물 너머로 신축 공사 중 붕괴 사고가 일어난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인다. 김성탁 기자
이들보다 젊은 연령대에선 대선에 대한 관심이 약해 보였다. 회사원 장모(42·광산구)씨는 “투표는 할 건데 크게 관심이 없다. 민주당이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무조건 밀어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던 동료 김모(37·동구)씨도 “직장생활 하기도 버거운데 남 일 같아서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관심이 없다”며 “연세 드신 분들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지만, 정치인들이야 선거 때면 생각해준다고 해도 민주당이나 다른 당이나 똑같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설 연휴가 지난 직후 주말이라서인지 이날 오후 광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구 양동시장은 반찬 등 먹거리를 파는 상가를 제외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고령층인 상인들은 이 후보에 대해 강한 지지 경향을 보였다.
“1번 찍어줘야죠. 이재명이 잘할 것 같에요. 어렵게 살면서 험한 일을 다 하고 고생 많이 했잖아. 옛날부터 난 이재명이 대통령 한 번 해묵을지 알았어요. 안희정이 그대로 있었으면 후보였겠지만….” 국밥집에서 음식을 만들던 김모(64)씨는 “장사하면서 TV를 다 보고 있다”며 거침없이 말했다. 이 후보 본인과 부인 의혹에 대해서도 김씨는 “대장동이 문제라지만 성남시도 잘 살게 해줬고, 마누라가 법인카드 썼다던데 솔직히 녹취록도 그렇고 이력도 거짓말을 해온 윤석열 마누라에게 대면 양반”이라고 주장했다.
홍어를 파는 인근 점포에는 70대 상인 세 명이 모여 있었다. 양모(73)씨는 휴대전화로 걸려온 여론조사에 일일이 버튼을 눌러 답한 뒤 칼로 홍어를 썰어 용기에 담으며 말했다. “이거 써는 것도 썰어본 사람이 잘 썰지, 신삥이 와선 죽어도 못 썰어. 누가 해야 나라를 잘 꾸리고 나갈지를 봐야제.” 그는 “이재명이 대장동에서 돈을 먹었으면 진작 잡아갔을 것”이라며 “김혜경도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재명이 일해 본 경험이 있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함께 있던 이모(73)씨도 “윤석열은 키워준 민주당을 배신했고, 정치도 해본 사람이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주변에 윤 후보나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양씨는 “말은 그래도 선거 때 되면 다 이재명 찍어주러 갈 것”이라고 읊조렸다.
반면 전남대로 가는 길에 탄 택시 운전자 박모(55)씨는 민주당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재명씨보다 민주당이 진짜 싫어요. 뭘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좋은데, 자기들이 다 맞는다며 절대 안 굽히잖아요. 180석이나 됐으면 통 큰 정치를 해야 하는데, 짜실짜실하게 장난질이나 하고….” 박씨는 “광주 사람들이 국민의힘을 찍어준 적 있느냐”며 “이젠 지쳐서 주변 사람들과도 관심을 끄고 투표하러 가지 말자고 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주변에 민주당 싫어 윤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도 꽤 있어서 지지율이 생각보다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남대 교정에서 만난 대학생 문모(23·북구)씨는 “부모님이 권유하시지만 따를 생각은 없다”며 “아직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중에서 정책을 따져보고 한 명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문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안 후보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를 뽑겠다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어린 딸을 데리고 교정을 찾은 30대 초반 부부는 “윤 후보는 뽑을 생각이 없지만, 이 후보 관련 의혹이 많아서 아직 못 정했다”며 “이 후보가 아니다 싶으면 안 후보를 찍으려 한다”고 했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광주에서 61.14%를 얻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1.55%에 불과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30.08%를 차지했다. 전남·북에서도 홍 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2.45%, 3.34%에 그쳐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와 달리 중앙일보가 지난 4~5일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00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광주·전라에서 이 후보는 69.2%, 윤 후보는 14.6%, 안 후보는 4.3%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011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선 호남에서 이 후보 54.7%, 윤 후보 28.5%로 나오기도 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흐름 때문에 이 후보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광주를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가 지난 6일 광주를 찾았고, 이준석 대표가 무등산 등반과 전남 섬 지역을 방문했다. 이 대표는 8일 대선의 호남 득표율 목표를 2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했다. 남은 기간 어떤 변화가 생길지, 실제 여야의 호남 득표율이 어떨지는 대선은 물론 이후 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