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소련의 부활? 푸틴이 노리는 건 러시안 왕국의 건설”
[아무튼, 주말] “소련의 부활? 푸틴이 노리는 건 러시안 왕국의 건설”
러시아 우크라 부모에게 태어나
韓 귀화한 민방위 5년차 일리야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후 동부 지역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지만, 전면전은 처음 있는 일이다. 21세기에 벌어진 이 전쟁은 두 국가의 ‘정체성 전쟁’으로도 볼 수 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도 침공을 강행한 이유는 뭘까.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40)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지난달 24일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국기 이모티콘을 게시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정당한’ 전쟁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를 둔 그는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 귀화해 방송과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그에게 푸틴의 침공 의도와 전쟁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생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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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전쟁을 어떻게 보시나.
“아버지는 원래 푸틴 대통령을 지지했다. 푸틴이 경제적 혼란을 딛고 2000년대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동시대를 살아온 분들은 우크라이나를 같은 나라로 보는 인식도 강하다. 그런데 아버지조차 전쟁을 두고 ‘이건 아니다’며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방송은 ‘전쟁’ 대신 ‘군사 작전’이라 부른다.
“푸틴이 밝힌 군사 작전의 공식 명분은 ‘탈나치화’ ‘탈무장화’다. 푸틴과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1940년대 독일 나치의 후손들이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민족인 우크라이나 국민을 그들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력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민간인 살상까지 자행하는 러시아를 전 세계가 비난하는데 왜 국민들은 푸틴에게 저항하지 않나.
“한국은 불만이 있으면 상황을 바꾸려 하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에서 대통령은 바꿀 수 없는 ‘아버지’다. 술꾼에다 주정을 일삼는다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인 것처럼, 대통령이 잘못을 해도 시위나 반대 목소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차르, 공산주의 시대를 거치며 오랜 시간 선전선동에 노출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에서도 현재 반전 시위가 열리고 있다.”
-푸틴이 진짜 전쟁을 할 거란 전망은 많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벌일 것인가’라는 물음에 전문가와 교수들의 예측이 전부 빗나갔다. 푸틴을 합리적인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의학적 치매’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푸틴은 합리와 논리가 통하는 상태가 아니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푸틴은 러시아를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 내 푸틴 지지율이 고공행진 하는 이유는 뭘까.
“’북한 주민은 얼마나 김정은을 좋아할까?’ 물어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지지율 숫자는 의미가 없다. 한국은 전쟁이나 산업화 시대 경험의 유무가 진보와 보수를 가른다. 러시아에서는 ‘전통적 가치관’이 기준이 된다. 만약 고정된 성 역할을 긍정하거나, 러시아정교의 종교적 생활 양식을 잘 따른다면 보수다. ‘나이’도 기준이 될 수 있다. 소련이 해체되기 전 모습을 경험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20세기 최대 재앙은 소련의 붕괴’라는 푸틴 연설에 크게 동감할 것이다.”
-’소련의 부활’을 원하는 걸까.
“소련은 공산주의라는 ‘이념’으로 묶인 국가 연합이었다. 푸틴은 이념으로 우크라이나를 묶으려는 게 아니다. 인종과 언어, 문화가 같은 슬라브 ‘민족’은 단 하나의 국가여야 한다는 일념 하에 러시안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는 게 정확하다.”
-왜 하필 지금일까.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모두 정권을 쥔 지 얼마 안 됐다. 적극적으로 훼방 놓을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혼란 시기라고 봤을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유가까지 올랐다는 점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푸틴이 ‘미치광이 전략’을 펼쳐 다음 행동을 예측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란 말도 나온다.
“아니라고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전략이었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지금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됐고, 푸틴을 포함한 러시아 주요 인물의 자산도 동결됐다. 이전의 푸틴 모습과 다르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크림반도 합병 때만 해도 푸틴은 의회에 나가 40분간 연설을 했다. 미국과 유럽의 예상 행동에 대비한 플랜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앞으로의 계획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유럽은 단합할까?
“영국과 독일 등 각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어떤 이해관계도 뛰어넘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유럽은 결국 단합을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