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6만장이 태블릿에 쏙, 여기는 스마트 조선소
도면 6만장이 태블릿에 쏙, 여기는 스마트 조선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르포]
도면 뭉치 뒤적이는 건 옛말
공정별 품질·안전상황 한눈에
제품 실시간 3D 모형으로 확인
노동집약을 기술집약 산업으로
지난달 23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개의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은 LNG(액화천연가스) 탱크와 해양 플랜트 일감으로 모두 차 있었다. 2020년 하반기부터 쏟아진 수주 물량이었다. 대형 크레인이 600~800t짜리 거대 선체 구조물을 옮기고 있었고, 작업장 곳곳에선 용접 스파크가 일었다. 오랜 수주 불황을 이겨낸 조선소는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이날 현장에선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조 현장 곳곳에서 직원들이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작업 현황을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두툼한 도면 뭉치를 꺼내 공정 상황을 체크하는 옛 방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삼성중공업 박진형 스마트야드연구센터장은 “온라인 플랫폼 ‘심포니(Symphony)’로 경영진부터 현장 작업자까지 직원 모두가 공정별 품질·능률·가동률·스케줄·안전 상황 등 공정 상황 전체를 체크할 수 있다”며 “거제조선소가 스마트 조선소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면 대신 태블릿PC
삼성중공업은 2019년 말부터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3D(3차원) 모델링’ 사업이다. 과거 삼성중공업 각 제작 부서 직원들은 특정 부품을 만들 때마다 수십 장 도면 뭉치를 뒤적여가며 완성품의 모습을 상상해야 했다. 작업 경혐이 풍부한 베테랑이 아니면 도면과 완성된 모형이 다르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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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태블릿PC에 설치된 삼성중공업 자체 앱을 실행해 실시간으로 완성된 제품의 3D 모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참조해 자신이 작업하는 부품이 최종 제품의 어느 부분에 들어가는지, 필요한 자재는 무엇인지, 해당 자재는 조선소 부지 내 어느 곳에 적재돼 있는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재고가 부족한 자재의 발주도 이 앱으로 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제작 부서에선 선박 한 척당 공작 도면이 6만 장 가까이 필요했는데, 이런 도면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까지는 2D 도면과 3D 모델링을 병행해서 활용해 왔고, 올해 상반기에는 특정 부품을 제작할 때 3D 모델링으로만 작업하는 테스트를 실시한다. 내년에는 3D 모델링을 모든 부서에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업무와 관련된 직원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챗봇(사람과 음성·문자로 대화 가능한 컴퓨터 프로그램)도 지난 연말 도입했다. 가상 공간에서 선박·크레인·자재를 미리 배치해 최적화된 작업 일정을 짤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안재영 스마트기술연구 파트장은 “건조한 선박을 바다에 띄워 안벽(岸壁·선박을 접안하도록 만든 구조물)에 갖다 대는 작업은 한 번에 1억원이 드는 힘든 작업인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덕분에 선박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마트화로 비용 10~20% 절감
삼성중공업은 스마트 조선소로의 변신을 통해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업을 기술집약 산업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는 각종 공정을 효율화했고, 올해는 업무 시스템 통합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중남 스마트SHI(Smart Samsung Heavy Industries) 사무국장은 “비효율적 공정을 제거하고 작업 차질을 최소화해 원가 10% 절감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태블릿PC를 어색해하며 안 쓰겠다는 근로자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들 손에 들고 일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1·2차 협력사들에도 스마트 기술을 이식해 스마트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배 제작 공정에서의 자동화·무인화 전환작업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축구장 560개 크기의 조선소 내에서 무거운 자재들을 운반하는 지게차도 무인화 기술을 적용해 올해 내에 선보일 계획이며, 선박 제작에 필수적인 용접 과정도 다양한 용접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윤종현 거제조선소장은 “용접 로봇의 소형화, 경량화를 통해 어떤 작업장이든지 이동하면서 작업할 수 있는 용접 로봇을 조만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