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주식 쪼개기’ 벌써 8곳, 증시부양 불쏘시개 될까
코스피 ‘주식 쪼개기’ 벌써 8곳, 증시부양 불쏘시개 될까
신세계 3社·DI동일 등 공시 이어져… 작년에는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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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 9일 장 마감 후 주식을 20대1로 액면 분할한다고 공시했다.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6월 6일부터 기존 1주가 20주가 되는 것이다. 9일 2785.58달러였던 아마존 주가는 15일에는 2947.33달러로 5.8% 상승했다. 액면 분할을 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앞서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도 오는 7월 20대1 액면 분할을 실시한다고 지난달 공시했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사모펀드 블랙록, 멕시코 음식 체인점 치폴레 등을 액면 분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꼽았다. 모두 주가가 600달러를 넘는 고가(高價) 주식이다.
한국 증시에서도 액면 분할이 활발해지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액면 분할을 공시한 기업은 총 9개였다. 아직 1분기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작년(11개) 수준에 육박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신세계 I&C 등 신세계 그룹 계열사와 2차 전지 기업 DI동일, 아세아시멘트, 한미반도체 등 8개가 코스피 종목이다.
주가가 비싼 기업들이 주식을 소액으로 쪼개는 액면 분할 자체는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소액 주주들의 투자가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소액 주주 투자가 늘면 주가는 상승 여력이 생긴다.
하지만 액면 분할 후 주가가 늘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 투자 전문 매체 모틀리풀(The Motley Fool)은 “낮은 가격이 주식 수요 증가를 부추긴다 생각하지만 그 현상은 거의 일시적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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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 투자 가능해져 주가에 호재
액면 분할은 유통 주식 수를 늘려 개인들의 투자를 쉽게 만들고 가라앉은 주가를 떠받치려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1980년 이후 S&P500 지수 편입 종목들을 분석한 결과, 액면 분할을 발표한 기업의 주가는 6개월 뒤 평균 13.9% 올랐다. 같은 기간 S&P500 상승률(4.4%)의 3배 이상이었다. 루스 포랫 알파벳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액면 분할을 추진하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주식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증시는 올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예고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거래 대금이 크게 준 상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증시 일평균 거래 대금은 18조6620억원으로, 작년 동기(32조3770억원)보다 42% 넘게 줄었고, 코로나 사태가 터진 2년 전(2020년 2월·14조1770억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액면 분할이 위축된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면서 액면 분할이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자금이 충분하고, 대주주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절반을 넘어 거래량이 작은 DI동일은 지난 4일 10대1 액면 분할을 결정했다. 유진투자증권은 “회사가 소액 주주 요구에 마음을 연 것이라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했다.
◇장기적 주가 향방은 결국 실적
통상 액면 분할은 문턱을 낮춘다는 점에서 단기 호재로 인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주가 하락으로 저가 이미지가 생길 수 있고, 단기 투자자 증가로 주가의 출렁임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고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주주들이 액면 분할을 요구했지만, 주식의 투기적 매매가 증가할 수 있다며 거절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네이버가 액면 분할 후 고전한 사례로 꼽힌다. 2018년 5월 삼성전자는 기존 1주를 50주로 쪼개 한 주 가격이 기존 265만원에서 5만3000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주가는 3개월 후 오히려 14% 가까이 하락했다. 1년 반이 지난 2019년 11월에야 액면 분할 직후 주가 수준을 회복했다. 네이버도 2018년 10월 5대1 액면 분할을 해 기존 70만4000원이었던 주식을 13만8000원으로 재상장했지만, 11만원대까지 미끄러졌다가 이듬해 8월을 지나면서 주가가 회복됐다.
전문가들은 액면 분할을 하더라도 장기적인 주가를 결정하는 요소는 영업 성과와 재무 건전성이라고 지적한다.
☞주식 액면분할
액면가가 5000원인 주식 1주를 500원짜리 10주나 100원짜리 50주 등으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주가가 너무 높아 매매가 어려울 경우 액면분할을 통해 잘게 쪼개면 소액으로도 사고팔 수 있게 된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지만 장기적으로 큰 효과가 없다는 연구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