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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세계에서 생각한다…'인간다움'이란 뭘까

황태자의 사색 2022. 3. 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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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세계에서 생각한다…'인간다움'이란 뭘까

이언 쳉 개인전 `세계 건설`
리움미술관서 전시


게임·인공지능 활용해
인간의식에 대해 탐구
7월까지 5점 한자리에

차가운 최첨단 기술과
따뜻한 철학 만나 신선
관람객 참여 작품도

  • 이한나 기자
  • 입력 : 2022.03.18 17:03:29   수정 : 2022.03.18 17: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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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쳉의 작품 `사절-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사진 제공 = 리움미술관]
"살아 있는 존재는 다소 지루하더라도 예측 불가능성과 복잡성이 있어 흥미롭다."

두 아이의 아빠가 돼 인간 존재의 성장 과정을 더욱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홍콩계 미국 작가 이언 쳉(38). 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 '세계 건설(Worlding)'이 서울 리움미술관 블랙박스에서 오는 7월 3일까지 열린다. 차가운 최첨단 기술로 작품을 만들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 존재를 철학적으로 성찰해온 그는 이번에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총 5점을 처음 한자리에 모았다.UC버클리에서 인지과학과 미술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 비주얼아트 석사를 마친 그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게임 형식 작품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작가 이언 쳉.
대표작인 '사절(Emissaries)' 3부작(2015~2017년)은 가상의 생태계 속에서 인공지능을 가진 등장인물과 자연환경이 서로 교류하고 반응하면서 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라이브 시뮬레이션' 영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영원히 플레이되는 비디오 게임'이라 말한다. 스토리를 전개하는 등장인물인 사절이 임무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면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판이 열리듯 작품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도시 건설 게임 '심시티' 개발자 윌 라이트는 물론 심리학 대가 칼 융, '의식의 기원'을 쓴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 등이 내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또 방탄소년단(BTS) 같은 대중문화 아이콘(상징)이 '맵 오브 더 솔' 앨범을 통해 인간 성숙 이론을 담은 것도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의 작업이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함께 영감을 받았듯 한국 관객과 소통하고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뱀의 형상을 한 인공 생명체인 'BOB(Bag of Beliefs·신념이 담긴 가방)'(2018~2019년)은 인간 의식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한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있고, 다른 면이 나타나는 것처럼 BOB은 다양한 동기와 신념을 가진 여러 개의 AI로 이뤄진다. 관람객들은 별도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서 BOB에 신념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성격 형성에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열매에 독이 있다'는 메시지를 입력할 경우 BOB은 열매를 거부해 굶어 죽는 결말이 나올 수 있는 식이다. 성격의 20%를 품은 상태로 환생해 다시 플레이된다.


최신작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Life After BOB: The Chalice Study)'는 한국의 리움과 뉴욕 더셰드, 루마 재단, 라이트 아트 스페이스(LAS·베를린)가 제작을 지원한 신작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신경과학자 아버지가 딸인 여자 주인공 찰리스의 뇌에 인공지능 BOB을 이식한 후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AI가 최적의 경로를 안내해 정해진 삶을 살도록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딸이 자율성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AI 시대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관람객들은 제시된 링크에 접속해 애니메이션 정보를 직접 볼 수 있는 '월드워칭' 모드를 체험하면서 작가의 세계관을 탐험할 수 있다.

이진아 리움미술관 선임큐레이터는 "게임 엔진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인간의 의식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고 밝혔다. 태현선 리움 학예연구실장은 "작품을 관통하는 돌봄의 정서를 차가운 디지털 매체로 풀어낸 점이 신선하다"고 했다. 다만 초기작은 어설프더라도 우리에게 생경한 원시시대를 게임 형식으로 보여줘 참신함이 있었던 반면, 최신작은 좀 더 상업적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보니 상상의 여지가 줄어든 듯싶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