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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위로 암세포 돌연변이 DNA만 잘라낸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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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위로 암세포 돌연변이 DNA만 잘라낸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3.26 00:20

업데이트 2022.03.26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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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명경재 UNIST 교수

명경재 UNIST 교수가 울산 연구실에서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DNA 편집과 이를 이용한 암 치료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UNIST]

지난달 22일 국제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크리스퍼 카스9을 이용한 암세포 정밀 표적화’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이 실렸다. 최신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돌연변이의 DNA 이중나선을 잘라 냄으로써 정상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사멸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암치료는 그간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해 왔지만, 여전히 암세포 외에도 정상세포까지 죽이거나, 암세포에 내성이 생겨 치료효과가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암세포란 원래 정상세포의 DNA 속 염기서열의 일부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논문에서처럼 21세기 생명과학의 발달로 등장한 유전자가위를 이용할 수 있다면, 암치료에 혁명적 방법이 등장하는 셈이다.

논문의 저자는 한국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칼학과 특훈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장을 맡고 있는 명경재 교수였다. 난치병 치료와 관련한 논문이 언론에 보도될 때면 으레 그렇듯, 암환자와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을 담은 e메일과 전화가 명 교수에게 밀려들었다. ‘내가 그 치료를 받을 수는 없나요’ ‘임상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어머니를 이대로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제발 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안타깝게도 당장 명 교수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부작용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것이지만, 추가 연구와 임상을 거쳐 환자들 앞에 나타나기까지는 짧아도 5~10년은 걸린다. 이 같은 얘기가 언론 보도에도 나왔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와 가족들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울산 UNIST 연구실에서 명 교수를 만나 유전자가위 기술과 암치료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해 물었다.

신델라 치료법, 방사선·항암제 대신하는 셈

유전자가위로 어떻게 암치료를 하나.
“생물정보학 분석을 통해 정상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유방암 등 여러 암세포 고유의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다음으로 이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크리스퍼 카스9 유전자가위를 제작해 돌연변이의 DNA 이중나선을 골라 잘라 내는 방법으로, 정상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치료법을 신델라(CINDELA·Cancer specific INDEL Attacker)로 이름 지었다. ‘인델’(inDel)이란 돌연변이 현상으로 DNA 속에 특정 염기가 들어가거나 빠지는 경우를 말한다. 기존에도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암치료 연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특정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고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신델라는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정상세포에서 발견되지 않는 돌연변이를 찾아내 유전자가위를 만든다면,  개인마다 유전자가위가 달라야 하는 건가.
“그렇다. 개인마다 다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환자 맞춤형 치료법인 셈이다. 환자 몸속의 암세포가 발견되면 여기서 DNA를 뽑고 분석하는 데 2주 정도 걸린다.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가위를 만드는데,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정확도도 문제 아닌가.
“그걸 오프 타깃 이펙트(off target effect)라고 한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유전자 치료는 특정 염기서열을 바꿔, 세포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신델라 치료법은 특정 돌연변이 구간을 잘라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정상 세포의 DNA가 조금 잘리는 정도의 손상은 돌연변이 없이 복구된다.”
혈액암이나, 다른 장기로 암이 퍼진 경우도 치료할 수 있나.
“혈액암에는 더 효과가 좋을 수 있다. 암세포가 전이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암세포라는 것도 생존하려면 산소를 전달하는 핏줄이 있어야 한다. 즉, 유전자가위를 핏줄에 넣어 주면 된다.”
기사가 나간 뒤 언제 그런 치료를 받을 수 있느냐는 암환자와 가족들의 문의가 쏟아진다.
“아직은 실험실에서 개념만 입증된 상태다. 실험실에서 쓰는 사람의 암세포가 있다. 이걸 배양접시에서 키운 것을 가지고 실험했다. 여기서 90%의 효과를 봤다. 다음으로 그 암세포를 쥐의 표피 아래 집어넣어서 실험도 해 봤다. 이 경우는 효과가 좀 약했다. 암이 자라는 속도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무슨 차이인가.
“약물 전달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배양접시 상태에서는 암세포층이 얇기 때문에 약물 효과를 내는 유전자가위가 암세포에 잘 전달된다. 하지만, 실험쥐의 표피 안으로 들어간 암세포의 경우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암세포 주변 둘레에 유전자가위를 주사하면 암세포 덩어리의 겉면엔 효과가 있는데, 안쪽에는 못 미친다. 유전자가위를 바이러스에 실어서 암세포에 전달하는데, 이 바이러스의 양을 높이면 치료효과가 좋지만, 바이러스에 의한 예기치 않은 반응도 생길 수 있다.”
부작용 없이 암세포 덩어리 안으로 유전자가위를 집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연구자들이 전달체로 쓸 부작용 없는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계속 연구 중이다. 아데노 어소시에이트 바이러스라는 게 있는데, 지금까지는 부작용도 적고 효과가 가장 좋았다. 신델라 치료법이 상용화하기까지 가장 어려운 포인트가 바로 약물 전달 체계다. 나는 원래 DNA 복구가 전공이다. 이 때문에 우리 연구진에도 유전자가위를 연구하는 조승우 교수, 나노파티클을 연구하는 주진명 교수 등이 합류해 같이 하고 있다.”
다음 단계의 실험은 뭔가.
“실제 암환자에게서 채취한 암세포를 이용해 실험하는 거다. 여러 병원으로부터 실제 환자의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얻어서 이를 실험실에서 키우고 있다. 현재 환자 30명의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확보했다. 이것도 임상의사들을 어렵게 설득해서 겨우 받은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다. 임상시험은 여건상 우리 연구단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델라 치료법을 기술이전 받은 회사가 임상의사들과 같이 진행해야 한다.”
기술 이전은 언제 했나.
“신델라 전반에 대한 기술을 내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특허를 냈다. 벌써 2년 정도 됐다. 한국에 먼저 특허를 출원해 등록됐고, 해외의 경우 현재 미국·중국 등 10여 개국에 출원이 돼 있는 상태다. 이 특허를 기술이전 받아 창업한 국내기업이 있다. UNIST 교원 창업기업인 카스큐어세라퓨틱스다. 생물학과 이화선 교수가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바이오기업 임원 출신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IBS가 가지고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들었다.”

(IBS 연구단은 특정 대학에 소속돼 있어도 연구개발(R&D) 비용은 모두 IBS에서 받는다. IBS 연구단은 대전 IBS 직할 소속과 각 대학에 속한 외부 연구단, 두 가지가 있다. 명 교수는 월급은 대학에서, 연구비는 IBS에서 받는 외부 연구단에 해당한다.)

신델라 치료법의 대표 발명자인 교수님은 왜 기업에 참여하지 않았나.
“연구에 참여한 다른 교수들도 학교에서 아직 테뉴어(영년직)를 받지 못한 상황이고, 나는 IBS 단장을 겸하고 있는데, IBS 규정에 따라 관련 연구진은 창업에 참여할 수 없다.”
교수님이 속한 대학인 UNIST는 특허료를 못 받나.
“그렇지 않다. IBS와 UNIST 반반씩 특허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발명자에게도 50%의 특허료 배분이 있다.”
외국의 연구는 어떤가.
“앞서 말했듯,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암치료법이 있긴 했지만, 한계가 많았다. 이제 유전자가위 암치료법의 관건은 효율적인 약물전달 체계다. 이건 암치료뿐만 아니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모든 연구, 치료법의 가장 큰 당면 과제다. 하버드대학의 데이비드 리우 교수가 낸 논문에 의하면 전달체계를 리포솜 계열로 썼더니 유전자가위 효소 전달이 굉장히 잘됐다고 한다.”

(리우 교수는 최근 바이오 분야에서 주목받는 대표적 유전자가위 연구자다. 특정 DNA 염기 하나만 자르고 교체할 수 있는 정밀한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1~3세대 유전자 가위는 DNA 두 가닥을 모두 잘라 유전체를 교정한 뒤 세포가 재생되는 방법을 썼다. 이 경우 원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는 고칠 수 있지만, 예기치 않은 변이까지 나타날 위험이 있다. 리우 교수의 유전자 가위 기술을 DNA 이중 가닥을 모두 끊지 않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단일 염기만을 교체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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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중 등 10여 개 국가에 특허 출원

신델라 치료법이 상용화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모든 연구가 다 잘 진행될 경우에도 앞으로 5~10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임상과 임상 1·2·3상 등 통상적인 임상절차를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정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다면 기간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겠나.”
신델라 치료법이 상용화되면 기존에 암세포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은 없어지겠다.
“외과적으로 암세포를 잘라 내는 방식은 당분간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처럼 암세포 주변을 크게 잘라 낼 필요는 없다. 눈에 보이는 게 있으면 잘라 내고, 그 주변 부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신델라 치료법을 쓰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재발 가능성도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암수술 후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를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앞으로 추가 연구를 통해 유전자가위가 세포 속에 깊숙이 잘 전달된다면 신델라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명경재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분자세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루드비히암연구소 박사후연구원과 미국 국립보건원(NIH) 종신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UNIST의 해외저명학자 영입 과정을 통해 2014년 귀국,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의 특훈교수 겸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