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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야당서 제의 많았지만…그의 한마디 "대쓰요" [인터뷰]
황태자의 사색
2022. 4. 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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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야구인 출신 KBO 총재가 된 것을 축하드린다. 어떻게 총재를 맡게 됐나.
▷내가 총재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전 총재께서 그만두시면서 구단들이 선임을 해준 것이다. 이사회에서 나를 추천했다는 얘기를 언론 보도로 알았는데 대략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갔다. 원래는 올 시즌 야구 중계를 앞두고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주 얼굴 볼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어려운 시점에 야구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고 하니 더욱 무겁게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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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인기가 하락세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관중도 없었는데 선수들 여러 사건사고까지 나왔고,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 성적도 저조했다. 사실 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가 스포츠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한 환경 자체가 아직 구조적으로 부족하다. 소득도 3만달러 이상에 인구도 1억명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야구 외에도 축구, 농구, 배구까지 4종목이 프로인 데다 개인 종목으로 골프까지 있다. 여러모로 스포츠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는다. 한국이 참 다재다능하고 여러 스포츠에 강한 나라인데 이게 프로스포츠의 산업화에는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일단 야구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진다고들 한다.
▷'팬 퍼스트'를 강조해야 하고, 경기력도 프로다운 야구를 해야 한다. 결국 경기력을 높이고 팬서비스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공중파나 케이블TV로 야구를 보는 중장년이 주요 타깃이었는데 그 사이 MZ세대가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MZ세대도 새로 공략해야 하기에 MZ세대위원회도 만들어 운영할 것이다. 게임이든 뭐든 MZ세대가 좋아하는 분야 종사자들과 만나보도록 하겠다. 대략 19세부터 30세 정도의 세대는 긴 호흡의 경기를 싫어하고 놀거리도 훨씬 다양해졌다. 지금은 다른 종목과의 경쟁보다도 뉴미디어와의 경쟁이다.
―그렇다면 KBO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리그 커미셔너의 역할은 팬과 구단과 선수를 조화시켜 리그를 발전시키고,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팬이 먼저고, 기량을 올리고, 산업화까지 순서대로 가야 한다. 30대부터 줄곧 국회의원 제의를 엄청 많이 받아봤지만 여당, 야당이 아니라 나는 체육당, 야구당이다. 법과 조례 등 규제 문제를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어 잠실구장 운영권, 광고권도 서울시가 가지고 있다. 광고 수익 172억원 중 잠실을 쓰는 LG와 두산 구단은 22억5000만원씩밖에 못 가져간다. 보탤 것이 입장 수입과 중계권료 정도뿐인데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대전도 신구장 착공을 두고 문제가 많은데 꼭 대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어떤 지자체라도 구단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옮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뉴욕 양키스는 뉴욕시에 뉴양키스타디움 연간 사용료를 상징적인 액수로 10달러만 낸다지 않나. 수원만 해도 구단 네이밍라이트, 운영권, 광고권 등을 kt 구단에 줬다. 다른 지자체들도 자세를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도 지방 야구장 건설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는데 앞으로도 남쪽에 야구장 벨트를 조성해서 프로구단들도 훈련하고, 학생팀들도 가서 지역에 활기가 돌고 돈도 쓰게 만들게 하고 싶다. 스포츠산업에 대한 인식을 지자체들에 알리겠다.
―재벌 기업들이 스포츠구단을 운영하는 상황이라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부분도 많다.
▷아무래도 각 구단이 생각과 입장이 다 달라서 통합적인 마케팅도 어렵다. 또 입장 수입만 해도 원년부터 홈팀이 72%, 원정팀이 28% 비율로 나누고 있는데, 이건 과거에 지방 구장들이 작고 잠실만 3만석에 달할 정도로 커서 그랬던 부분이 크다. 이제는 지방에도 2만석 이상 되는 새 야구장들이 생기고 있으니 언젠가는 요율을 조정해 홈팀이 100% 가져가야 자기들이 마케팅을 더 열심히 할 유인이 생긴다. 고척돔 가보면 키움구단 팬보다 원정 팬들이 더 많이 들어오는데 비정상적인 구조가 아닌가. 이런 말을 하면 재벌 기업은 어차피 돈 많지 않으냐고 하는데 아무리 재벌 기업이라지만 프로야구 원년과 달리 지금은 국내 프로스포츠 마케팅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야구 실력적인 측면에서도 향상이 필요하다.
▷국제화 이후 경기력 향상이 필요한데 선수들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야구 잘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다. 아시안게임 정도야 경쟁력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WBC와 올림픽에서까지 잘할 실력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치면 갤럭시22가 나오고 있는데 한 5 정도 쓰는 느낌 아닐까. 동네병원이야 진찰만 잘해주면 될지 몰라도 큰 병을 알려면 전문병원에서 MRI로 판독하지 않느냐. 야구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감독 야구를 했을지 몰라도 지금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는 정규 20명에 비정규까지 50명 정도 전력분석팀을 운영한다고 하고, 공의 궤적을 쫓는 트랙맨 시스템은 군사장비를 도입해 쓰고 있다. 우리는 구단들이 계속 적자니 이런 전문성 확보에 투자를 많이 못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한일전 등 국제 경기를 늘리자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력을 위한 방안인가.
▷축구도 A매치가 있으니 스타가 나온다. 손흥민 얼굴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야구는 그렇지 못하다. 야구팬들은 선수를 알아도 전체적으로는 보편성이 떨어진다. 작년에 강백호는 한때 4할을 치며 대단한 기록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슬펐다. 미국이었으면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이슈가 됐을 테지만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고, kt가 비인기 구단이라고 그나마도 관심을 덜 받았다. 우리만의 리그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야구를 더 알리려면 한일전 외에도 국제 경기를 더 늘려야 한다.
―사실 실력 외에 팬들을 대하는 야구선수들의 자세도 자주 구설에 올랐다.
▷1990년이었나, 토론토에서 코치를 할 때 켈리 그루버라는 3루수가 있었다. 시범경기 시즌에 경기를 마치고 아내와 나가는데 팬들에게 잡힌 걸 우연히 봤다. 팬들이 부탁하니 아내에게 한 시간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사인을 다 해주더라. 그걸 다 해주는 거다. 자기 연봉을 일단은 구단이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팬들이 준다는 사실을 아는 거다. 프로스포츠는 팬이 왕이다. 팬이 안 오면 프로구단 운영할 필요도 없다. 이런 걸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건 성인이 된 선수가 프로 와서 교육 좀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회 통념에 맞춰서 이해하고 도덕성을 갖추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선수들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데 선수는 공부를 하지 않고, 학생은 운동을 하지 않는 것 때문이라고 본다. 야구만의 문제는 아니고 스포츠 시스템의 문제지만 그래도 국내 프로스포츠 맏형인 야구가 잘해야 한다.
―정치, 산업 등 얽혀 있어서 쉽지 않은 부분도 많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돈 안 드는 쉬운 것부터라도 해달라고 하고 싶은 게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나오면 대통령이 초청해서 간단한 가든파티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야구만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축구, 농구, 배구 등도 마찬가지다. 조금 자유스럽게 젊은 선수들과 섞여서 대화하는 모습도 보여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방안들이 스포츠의 산업화를 위한 걸음으로 보인다.
▷작은 것이라도 해야 한다. 2009년 유영구 총재 시절에 야구발전위원장을 맡아서 일단 잠실야구장 화장실부터 바꿔달라고 했다. 야구장에 여성이 반이니까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야구가 '미국인의 여가(American pastime)'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 야구 표도 그리 비싸지 않고, 핫도그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이 야구장이어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투자도 필요하다. 사람들이 다들 진골, 성골 야구팬인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 허구연 신임 총재는…
1951년생으로 경남고, 고려대, 한일은행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 부상으로 이른 은퇴를 한 뒤에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해설자로 나섰다. 1985년 역대 최연소(만 34세)로 청보 핀토스 감독을 경험했고, 이후 롯데 자이언츠와 미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코치 생활을 거쳐 다시 해설자로 복귀해 특유의 목소리와 말투로 잘 알려진 유명인이 됐다. 야구 행정 활동도 다양하게 해왔다. 대한야구협회 이사를 역임했고 KBO 규칙위원장, 기술위원회 부위원장, 야구발전위원장, 아시아야구연맹 기술위원회 위원장, KBO 총재 고문 등도 거쳤다. 평소 야구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해 '허프라'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용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