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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장애인 인권]특수학교 필요하지만…“장애인 가두는 또 다른 차별”

황태자의 사색 2022. 4. 1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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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장애인 인권]특수학교 필요하지만…“장애인 가두는 또 다른 차별”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16 00:20

업데이트 2022.04.1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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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교육 받을 권리-장애인 학교 현실

2020년 3월 개교한 서울 강서구의 공립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 [사진 김정인]

“지나가다가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기 무릎 꿇고 저희가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사정하겠습니다.”

2017년 장애 학생 학부모들의 ‘무릎 호소’로 지어진 학교가 있다. 2013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설립 예고 후 7년이 지난 2020년 3월에야 문을 연 서울 강서구의 서울서진학교다. 다행스럽게도 무릎 호소의 애절함은 서진학교 설립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특수학교 설립은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자 기본권의 문제”라며 오는 2024년 서울 동부권의 첫 특수학교인 동진학교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특수학교 4곳, 2040년까지 5곳을 설립해 총 9개교 설립 계획을 밝혔다.

서울 2040년까지 9개교 신설 계획

서진학교 사태는 특수교육 필요성에 대한 경종을 울렸지만, 특수교육의 현실은 아직 냉혹하기만 하다. 늘어나는 특수교육대상자를 수용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충분하지 않다. 교육부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는 10년 전인 2011년 8만2000명에서 2021년 9만8000명으로 약 1만5000명이 증가했다. 특수학교도 10년 전 155개교에서 올해 3월 기준 192개교로, 특수학급은 2011년 1만2000학급에서 2021년 1만5000학급까지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대상자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강진운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장은 “거주지 인근에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이 설치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이주하거나 원거리 통학을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며 “전반적인 학령인구가 감소했지만 특수교육대상자는 상당히 증가해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의 신·증설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2017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2차 주민토론회장에서 무릎을 꿇은 학부모들. [사진 이택수]

일반 학교 진학을 원하지만 정당한 교육권을 보장받기 어려워 차선책으로 특수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장애인 학생들 사이에서 차별을 당할까 봐 우려되고, 장애 학생을 접한 경험이 적은 교사에 대한 신뢰도도 낮기 때문이다. 특히 입시 위주의 교육에 집중된 중·고등학교의 경우 더욱 그렇다. 경기 시흥시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는 30대 김연주씨도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까지 집에서 10㎞가 걸리더라”며 “장거리 통학을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 피해를 본 사례도 많고, 보다 맞춤화된 교육을 받고 싶어 특수학교 입학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강 회장 역시 “아직은 일반 학교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배제가 발생할 수 있어 교육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차원에서라도 특수학교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의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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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철저히 분리해 교육하는 특수학교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를 조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장애인의 교육권을 존중한다는 명목 아래 특수학교를 짓고 있지만, 특수학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를 접할 기회를 차단하기 때문에 장애 인식 개선에는 도움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을 ‘분리’하는 것은 차별로 간주하기 때문에 특수학교는 또 다른 의미의 장애인 차별”이라며 “지금은 일반 학교의 통합교육 인프라가 부족해 부득이하게 특수학교를 유지하고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통합교육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것이 정부 교육 기조와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울타리로 분리된 특수학교 내에서 장애인 인권 침해가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특수학교의 폐쇄성을 부각한다.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장애 학생들이 피해를 진술하거나 외부에 공론화하기 어려워 학교 밖에서의 견제나 감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 학생 인권침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수학교 교원과 학부모의 40% 이상이 특수학교 내에서 인권침해나 장애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김 국장은 “장애 학생의 안전을 위해 특수학교를 보냈음에도 내부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며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도 특수학교처럼 격리돼서 살아갈 수는 없기에 통합교육이 지향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 폐쇄성으로 인권침해 우려도

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은 한국이 당사국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예로 들어 적극적인 통합교육 정책 도입을 주문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4조에는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차별 없이 실현하기 위해 통합된 교육제도와 평생교육을 보장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강 회장은 “특수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떨어져 있는 ‘외딴 섬’이 아니다”라며 “특수교육 관련 주체뿐만 아니라  교육계, 사회 전체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에도 적극적인 특수학급 설치가 시급하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이 특수학급 확대 계획을 공개하자 일부 사립학교에서 “교사들이 장애 학생을 교육한 경험이 적고 비장애 학생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며 반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재 전국 특수학급의 97.7%가 국·공립학교 특수학급으로, 사립학교의 특수학급은 3% 미만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립학교도 공립학교처럼 예산지원을 받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특수교육대상자의 통학 불편 해소 및 학교선택권 보장을 위해 사립학교에 특수학급을 신설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