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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이는 이곳…꼭꼭 숨은 교동도를 아시나요? [핫플레이스]
황태자의 사색
2022. 4. 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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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대교 입구에서도 해병대원들이 차를 멈춰 세운다. 출입허가증을 보여줘야 비로소 교동도에 입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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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은 옛 추억을 소환한다. 2014년 7월 교동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 육지와 교류가 더뎠기 때문에 1960~1970년대 거리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폭 3m가 조금 넘는 시장 길 양쪽에 길게 늘어선 건물은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ㅅ' 자 모양의 함석 지붕, 단층 슬래브 지붕은 그 자체로 정겹다. 새마을운동 시절 정부에서 지원한 자재로 지은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남녀 구두와 고무신 등을 3~4단으로 쌓아올린 신발 가게, 양복점·다방·전파사 간판은 촌스럽지만 향수를 자극한다. 동전을 넣는 공중전화기는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 전화기 옆에 적혀 있는 '과연 이 전화는 통화가 될까'라는 글에 웃음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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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교동도에서 태어나 2016년 작고하기 전까지 대룡시장에서 시계수리업과 도장업 외길을 걸은 황세환 씨 가게는 자녀가 강화군에 기증해 전시장이 됐다. 1평(약 3.3㎡) 남짓한 공간에서 황씨 손길이 닿은 각종 바늘 시계와 시곗줄은 마치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듯하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1981 1000불 국민소득의 길,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적힌 산아제한 포스터는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이 포스터를 읽은 중년 관광객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이제는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하는데 애들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하네."
실향민 1세대가 일궈온 대룡시장은 60여 년 세월이 지나면서 손바뀜이 일어나고 있다. 최성호 대룡시장 상인회장(59)은 "현재 교동도에 살아 계신 실향민은 50여 명이고, 이 가운데 대룡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분은 10여 명"이라면서 "이분들도 고령이어서 사실상 자녀들이 전담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도 많이 변했다. 최 회장은 "1950년대에는 문방구, 교복, 양복점, 도배장판, 생활용품 위주였다면 지금은 가게 100여 곳에서 없는 것 빼고 다 판다"고 말했다. 4대째 이어오는 고깃집, 실향민인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40년째 떡집을 운영하는 며느리가 있는가 하면, 호떡·베트남 쌀국수·피자·순대엿을 팔거나 카페 등으로 변신한 가게도 있다. 교동이발관은 분식집으로, 철물점은 카페로 변신했다. 업종은 바뀌었지만 옛 물건은 그대로 둬 레트로(Retro·복고) 분위기는 여전하다.
교동에서 생산되는 쌀, 찰수수, 서리태콩, 도토리, 고춧가루 등 각종 농산물을 시장 안에서 흥정하며 직접 살 수 있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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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을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들의 요구 사항은 한결같다. 향수를 자극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계속 간직해 달라는 것. 지난 13일 대룡시장을 찾은 최태섭 씨(63·안양)도 대룡시장이 옛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길 희망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초등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교동도에서 2년 정도 살았다고 했다. 최씨는 "50여 년 만에 교동도를 처음으로 찾았는데 옛것 그대로여서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난다"면서 "이런 옛 분위기를 가진 곳이 수도권에서 귀한 만큼 앞으로도 잘 간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문소 두 곳을 통과하고 찾은 민통선 섬마을인 만큼 대룡시장 주변을 마저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인근 화개산(해발 259m) 주변에는 교동향교와 연산군 유배지, 우(牛)시장터 등이 남아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때 안향이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최초로 공자상을 들여와 모신 곳으로, 공자의 신주와 유현들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연산군 유배지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이 유배돼 그해 11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지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교동초등학교에서 화개산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1950년대 말부터 키우던 소들을 거래했던 우시장터가 나온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떠나보내며 아쉬워하는 주인과 가격을 흥정하려는 상인들의 시끌벅적한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강화 = 지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