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오프라인의 귀환]온라인으로 물건은 살 수 있지만 관계 맺는 특별한 경험은 못 해
[디지털 시대, 오프라인의 귀환]온라인으로 물건은 살 수 있지만 관계 맺는 특별한 경험은 못 해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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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의 아파트’에서 판매한 1회용 필름 카메라 [사진 프로젝트 렌트]
“원미경이 누구야? 1981년도 모델이래.” “배용준, 이정재도 있어.”
세 명의 여학생이 유리전시장 안을 들여다보며 주고받은 대화다. 이들은 지금 가나초콜릿을 거쳐 간 광고 모델들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는 중이다.
지난 4월 19일 프로젝트 렌트 성수점 카페에 ‘2022 가나 초콜릿 하우스’ 팝업 매장이 오픈했다. 1975년 롯데제과가 출시한 타블릿 형태의 초콜릿 ‘가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헤리티지 존,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한정판 굿즈, DIY 클래스, 포토부스까지 공간 구성이 다채롭다. 가장 흥미를 끈 건 초콜릿의 무한변신을 확인할 수 있는 ‘디저트 페어링 바’. 국내 유명 파티시에, 음료 전문가, 바리스타가 참여해 초콜릿의 다양한 형태와 식감을 맛볼 수 있도록 5코스의 메뉴를 준비했다. 뜨거운 것이 닿으면 녹아버리는 초콜릿을 ‘냄비받침’으로 디자인한 굿즈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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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대표
이 색다른 형태의 팝업 공간을 기획한 사람은 브랜드컨설팅 전문회사 필라멘트앤코의 최원석(사진) 대표다. 그는 4년 전부터 성수동 일대에서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작은 브랜드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재밌는 아이디어의 팝업 공간을 함께 기획하는 ‘프로젝트 렌트’ 사업을 하고 있다. 벌써 성수동에만 프로젝트 렌트 5호점까지 들어섰다. 6평짜리 공간 1호점은 월 트래픽 20만 명, 월 매출 1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브랜드에게는 일시적이라도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주고, 큰 브랜드와는 기존과 다른 컨셉트로 새롭게 인식될 기회를 함께 고민하죠.”
지난해에는 ‘32년차 만년 사원 로티는 퇴근하면 뭘 할까?’라는 상상력으로 ‘로티의 아파트’ 팝업 공간을 운영해 화제를 모았다. 1989년 서울 잠실 테마파크와 함께 탄생한 캐릭터 로티(LOTTY)를 의인화한 기획이다.
지난 4년간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팝업 공간을 물었더니 ‘평양에서 잡화점을 낸다면 어떨까?’하는 상상력으로 문을 연 ‘평양슈퍼마켓’과 2020년 2주간 진행된 점집 프로젝트 ‘성수당’을 꼽았다. 프로젝트 렌트 사업을 소개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기획한 팝업 공간이다. 최 대표는 특히 ‘성수당’이 ‘오프라인 공간의 힘’을 잘 드러낸 기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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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점집 ‘성수당’. [사진 프로젝트 렌트]
“온라인에도 ‘오늘의 운세’ 등 많은 운세 코너가 있죠. 사주·궁합 봐주는 스마트폰 앱도 많고요. 하지만 이런 디지털 운세들은 나와 조건이 비슷한 수많은 누군가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라 신뢰감이 덜해요. 그런데 발품 팔아 오프라인 공간에서 무당을 만나 직접 체험을 하면 오직 나만을 위한 카운슬링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그는 ‘이곳에 올만 했다’ 하게 만드는 게 공간의 힘이라고 했다.
“물건은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관계’를 깊게 맺고 오래 이어지도록 하는 요소는 특별한 ‘경험’이죠. 온라인에선 보편적인 디스플레이는 잘하지만, 특별한 홈페이지 경험을 만들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죠. 그래도 생각만큼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해요. 그런데 똑같은 비용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열면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어도 확실하게 이야기와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으니까 팬덤은 훨씬 높아지죠. 희소가치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에요.”
다음은 최 대표가 꼽아준 매력적인 오프라인 공간 기획 팁이다.
[tip] ‘와야 할 이유’를 만들어라 배달 앱으로 유명 식당의 음식을 시켜먹을 수는 있지만, 직접 가서 먹으면 인테리어·서비스 등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아서 더 맛있게 느껴진다. 맛집 앞에 줄을 서는 이유는 불편함마저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tip] 제품을 많이 팔려고 마라 공간 안에서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게 목적이 돼야 한다. 어차피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게 정상이다. 오프라인에선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만드는가가 본질이다. 소개팅 사진만으로 결혼상대를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tip] 경험의 밀도를 높여라 소비자에게 수많은 브랜드는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어장’이다. 그래도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좋았던 경험, 그 놈의 정 때문이다.
[tip] 좋은 브랜드끼리 협업할 공간을 만들어라 서울에서 부산의 잘 나가는 카페의 커피 맛을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충분히 지갑을 연다.
[tip] 디지털 바이럴 효과를 염두에 둬라 SNS로 확산된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은 ‘나도 이런 사진 찍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