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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윤종용 부회장과 '골든디스크'의 추억
황태자의 사색
2022. 5. 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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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디스크상'은 연예부 차장이던 1986년 한국의 '그래미상'을 꿈꾸며 만들었다. 국내 처음으로 한 해 동안의 음반 판매량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공정한 운영으로 가수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꿈의 상이 됐다. 개인적으로도 보람이었다. 또 1990년 이어령 장관의 문화부가 민간기관 행사에 처음으로 후원금을 지원했다. '골든디스크상'의 '생황 부는 여인상' 트로피도 이 장관의 아이디어였다. 당시 광화문에 있던 문화부 장관실에서 이 장관과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단독취재하던 중 이 장관이 '골든디스크상' 트로피를 조각 작품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조각가 김수현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1991년 12월 7일 오후 2시 제6회 '골든디스크상' 시상식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열었다. 클래식 공연만을 허락했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대중가수 공연의 첫 막을 올린 역사적 시간이었다. 이종덕 세종문화회관 사장과 나의 오랜 교분과 공감으로 이뤄졌다. 또 MBC는 9시 저녁 뉴스까지 뒤로하고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쇼 프로듀서 출신인 지석원 MBC 편성국장은 '골든디스크상'에 대한 이해와 가요 사랑이 깊었다. 또 선경 매그네틱(현 SKM), SK, 삼성전자의 협찬이 큰 도움이 됐다. 선착순으로 입장권을 배부했는데 세종문화회관 매표소 앞에는 10대 팬들이 하루 전 새벽부터 몰려 모포를 두르고 추운 12월의 겨울밤을 새웠을 만큼 절대적인 인기였다.
윤종용 부회장과는 한국 드라마 제작의 선구자인 신현택 회장, 배동만 제일기획 사장과 함께 가끔 식사도 하고 운동도 했지만 언제나 친근한 성품이었다. 윤 부회장의 그런 성정과 경영철학이 오늘날 삼성전자의 기반이 된 건 아닌지. "어려운 건 쉽게 하고, 복잡한 건 간단히 하고, 안 되는 건 되게 하라." '골든디스크상'을 추억할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말이 메아리친다.
[신대남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