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 콜옵션 행사로 생긴 차익, 일반 주주도 받는 길 열려
CB 콜옵션 행사로 생긴 차익, 일반 주주도 받는 길 열려
실전 공시의 세계
시세 100만원 짜리 건물을 60만원에 살 수 있는 권리증서가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증서를 갖고 있는 기업은 40만원 정도 가치 있는 자산을 보유한 셈입니다. 건물 시세가 더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면 증서 가치는 더 높게 매겨질 겁니다. 그런데 이사회는 증서를 대주주에게 무상양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회사에 이익이 되는 권리를 아무런 대가없이 대주주에게 넘기는데도 주주들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주주들이 볼 수 있는 대외 재무제표에 권리의 가치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보니 ‘그려러니’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콜옵션부 전환사채(CB) 회계처리 지침’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이 지침이 주는 메시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건물 매수 권리를 빗대어 봤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사는 B사모펀드를 대상으로 발행금액 100만원 CB(만기 2년, 전환가격 1만원)를 발행했습니다. B사모펀드는 3개월마다 이자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회사 주가가 1만원보다 훨씬 높아지면 투자원금을 안 받는 대신 주당 1만원에 신주 100주 발행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CB 발행계약을 보면 30% 콜옵션이 붙어 있습니다. A사가 B사모펀드에게 발행금액의 30%(30억원)에 해당하는 CB를 매도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콜옵션 권리자는 ‘A사 또는 A사가 지정하는 제3자’로 하기로 약정했습니다. 발행회사 입장에서 CB는 부채입니다. 하지만 CB에 붙어있는 콜옵션은 자산(회사의 권리)입니다. 만약 A사 주가가 1만5000원이 되었다고 해 봅시다. B사모펀드는 전환권을 행사해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A사는 B사모펀드를 상대로 콜옵션을 행사하여 30억원어치 CB를 매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한다면 당장 15억원의 평가차익을 얻습니다.
그런데 콜옵션부 CB 발행기업 대부분은 콜옵션 행사가 이익이 되는 상황이 오면 권리자를 대주주(또는 그 일가)로 지정합니다. 전환차익의 기회를 무상으로 양도하는 셈입니다. 대주주의 지배력 희석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관행처럼 이런 일이 있어 왔습니다. 이들 기업은 내부적으로 콜옵션의 가치를 평가해 왔습니다. 일반주주들은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CB를 회계 처리할 때 부채부분 공정가치 평가액에서 자산 부분(콜옵션) 공정가치 평가액을 차감합니다. 이렇게 산출한 순부채 공정가치액만 재무제표에 표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앞으로는 콜옵션 부분을 별도의 파생상품자산으로 분류하고 따로 회계 처리하라는 방침을 확정했습니다. 재무제표에도 콜옵션 공정가치평가액을 따로 표기해야 하는 겁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콜옵션 가치가 회사 장부에 얼마로 기록되는지 알게 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이를 무상으로 대주주에게 양도하는 것이 어려워질 겁니다. 예컨대 회사 재무제표에 30억원으로 잡혀있는 콜옵션 자산을 그냥 넘긴다면 주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런 결정을 한 이사회를 대상으로 배임 소송을 걸 수도 있습니다. 이번 감독지침은 단순한 회계처리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CB 발행기업과 투자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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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중앙일보·이데일리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오랫동안 기업(산업)과 자본시장을 취재한 경험에 회계·공시 지식을 더해 재무제표 분석이나 기업경영을 다룬 저술·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1일3분1공시』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뻔 했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