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자’ 되어버린 당신 ‘모히토서 몰디브’ 한잔
‘외부자’ 되어버린 당신 ‘모히토서 몰디브’ 한잔
[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영화 ‘내부자들’

과연 얼마만큼이 진실일까? ‘내부자들(2015)’을 보면 나 같은 필부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이 정말 영화에서 보여주는 방식대로 돌아가는 걸까? 그러나 영화의 흐름을 좇다 보면 이런 궁금증은 곧 묻혀 버린다. 그 유명한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까?”라는 대사 덕분이다.
웃기다 못해 밈(meme)화 되어 버린 대사이지만 ‘모히토 가서 몰디브’의 맥락은 슬프다.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헌)는 내부자들의 허드렛일을 해주는 ‘외부자’이다. 그런 팔자에 진력이 나 신세 역전을 꾀하다가 발각돼 오른팔을 잘리고 폐인이 되어 버린다. 그런 안상구와 더불어 또 다른 외부자 우장훈(조승우)이 있다. 그는 좋은 성과를 내면서도 ‘족보 없는’ 경찰 출신 검사라 승진에서 번번이 밀린다.
이런 두 외부자가 재벌 미래자동차의 비자금 파일로 의기투합한다. 각각 복수(안상구)와 정의(우장훈)를 꾀하는 가운데 안상구의 옛 소속사 가수인 주은혜(이엘)가 도움을 준다. 내부자들을 건드리는 게 위험한 일임을 아는 주은혜는 안상구에게 다 그만 두고 ‘몰디브 같은 데 가서 모히토나 한잔 마시자’고 제안한다. 부질 없는 복수일랑 접어두고 행복을 찾아 떠나자는 제안이었건만, 안상구는 능청스럽게 ‘모히토에서 몰디브’로 받아치며 거절한다.
‘모히토에서 몰디브’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이병헌의 애드리브였다는 이 대사는 나처럼 ‘몰디브에서 모히토’임을 확실히 아는 사람조차 헷갈리게 만든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틀려서 연신 고치고 있다. 둘 다 세 음절인 데다가 ‘ㅁ’으로 시작되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몰디브에서 모히토’인가, ‘모히토에서 몰디브인가?’ 모히토나 몰디브, 둘 가운데 하나에라도 관심이 있다면 “에이, 그걸 말이라고. ‘몰디브에서 모히토’잖아”라고 딱 잘라 말할 것이다. 당연히 정답이지만 안타깝게도 100점은 아니다.

일단 ‘헤밍웨이의 칵테일’로도 유명한 모히토의 고향은 쿠바이다. 남미 원주민이 쿠바에서 찾아온 열대 풍토병의 치료제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19세기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착취당했었던 아프리카 노예들이 만들었다는 기원설도 있다. 재료가 간단하면서도 민트와 라임의 향,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져 자신만의 입지를 확실히 누리고 있는 칵테일이다. 국제바텐더협회의 표준 레시피를 소개해보자. 흰색 럼 45밀리리터, 라임즙 20밀리리터, 민트 6줄기, 백설탕 2작은술, 탄산수를 준비한다. 높고 긴 잔에 민트와 설탕, 라임즙을 담고 숟가락 등으로 짓이겨 민트의 향을 끌어낸다. 탄산수와 얼음으로 잔을 거의 채운 뒤 럼을 더하고 잘 섞어 마무리한다.
한편 몰디브는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750킬로미터쯤 떨어진 인도양의 관광지이다. 원래 인천에서 직항편이 있었지만 팬데믹 시국을 맞아 운항이 중단되었다. 다른 관광객과 마주칠 일이 없는 ‘비대면 여행지’라 백신을 맞았다면 입국이 가능하다. ‘내부자’ 덕분에 몰디브가 예전보다 많이 알려졌으며, 심지어 ‘몰디브에서 모히토 한잔’이라는 꿈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몰디브에 갔다면 그곳의 명물 칵테일을 먼저 마셔보고 모히토로 넘어가는 게 더 즐거울 수 있다. 오렌지와 파인애플 주스에 흰색 럼 등을 섞은 ‘몰다비안 레이디’, 보드카에 커피 리큐어인 ‘베일리스’, 초콜릿 리큐어인 티아 마리아를 더한 ‘스팅레이’ 등이 유명하다.
‘몰디브에서 모히토’의 주인공 주은혜의 말로는 비참하다. 그는 안상구가 비자금 파일을 폭로한 후폭풍으로 모함에 시달릴 때 변사체로 발견된다. 안상구를 위해 내부자들을 협박했다가 미래자동차에 당한 것이다. 이런 희생을 겪은 것은 물론, 직접 내부로 뛰어드는 위기까지 감수하고 각각의 복수와 정의를 이룬 안상구와 우장훈은 고민한다. 날씨도 좋은데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까? 몰디브를 간다면 다른 칵테일을 마시는 게, 모히토를 마시고 싶다면 헤밍웨이가 말년을 보낸 미국 최남단의 키웨스트로 가는 게 좋다. 양쪽 모두 비행기를 갈아타고 15~20시간 걸려야 닿는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