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정인보 호가 ‘위당’인 이유는 당나귀? 나도 멋들어진 아호 갖고 싶네
[아무튼, 주말] 정인보 호가 ‘위당’인 이유는 당나귀? 나도 멋들어진 아호 갖고 싶네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최북, 이육사, 이상, 이희승
명사들 號에 얽힌 별별 사연
교과서에서 만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승무’가 맘에 쏙 들었다. 시의 말이 맛깔나고 춤사위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학생 시절 이해가 쉽지 않은 시보다는 산문을 즐겨 읽었는데 ‘승무’는 괜히 좋아서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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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오래돼서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인지 가물가물하다. 국어 시험지를 받아 들었는데 친숙한 ‘승무’가 지문으로 출제됐다. 옳다구나! 이게 웬 떡이냐 싶었는데 기쁨도 잠시, 첫 문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작가의 아호(雅號)를 묻고 있었는데 지은이가 그저 조지훈이라고만 알았지 호는 배운 적이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덤벼들었는데 이런 낭패가 있는가. 종료 직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짱으로 ‘지훈’이라고 적었다. 나도향(본명이 경손)같이 호가 이름처럼 불리는 문인이 있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기 때문이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요행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험을 마친 후 서둘러 참고서를 찾아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조지훈의 본명이 ‘동탁’이고 ‘지훈’은 아호였다. 김소월(본명이 정식)은 척 봐도 소월이 아호이고 본명이 따로 있겠거니 싶은데, 이 경우는 ‘지훈’이 본명이고 ‘동탁’이 아호 같았다. 아무튼 점수를 땄으니 기분은 좋았는데, 글쎄 작가의 호를 묻는 단순 암기형 문제가 고등학교 국어 시험 문제로 적합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기야 당시는 유명 예술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는 호로 칭하며 이야기해야 행세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이기는 했다.
근대 우리나라 3대 천재의 한 명으로 꼽는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장난기도 총기(聰氣) 못지않았다. 하루는 잘 알고 지내는 대학자 정인보에게 씩 웃으며 다가와서 좋은 호를 지어주겠다며 ‘위락당(爲樂堂)’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행동거지가 좀 수상쩍었지만 얼떨결에 좋다 하니 박장대소하며, “거꾸로 읽으면 당나귀가 아니냐, 당나귀 정 씨에게 십상”이라는 장난의 말씀이 아닌가. 여느 사람이면 역정을 냄 직하지만 정인보는 껄껄 웃으며 가운데 ‘락’ 자를 빼고 위당(爲堂)을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고 한다. 동(同)시대를 살았던 어느 문필가의 수필 내용이 재미있어 기억하는데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로 유명한 시인 월파(月坡) 김상용에 얽힌 일화에도 배꼽을 잡았다. 일제강점기 이화여전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피차 허물없이 지내는 국어학자 이희승이 어느 날 수작을 걸었다.
“자네 호가 월파라고 했지. 달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달에 얽힌 기막힌 호를 하나 지어줌세. 소동파의 후적벽부에서 따온 말인데 지월(地月)이라 하면 어떻겠나?”
“지월? 지월? 지월이라! 사내대장부가 호 하나쯤 더 가져도 좋지.” 자고로 글 좀 읽는다는 선비는 호가 여러 개인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에 월파의 반응이 망발은 아니었다.
이희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하하하, 걸려들었어. 지(地)는 땅이고 월(月)은 달이니 ‘땅딸보’라는 뜻이야. 자네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호가 어디 있겠나.”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의 친구를 제대로 놀렸는데 이희승의 수필에 나오는, 출처가 분명한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의 아호는 호생관(毫生館)으로 알려져 있는데 때때로 칠칠(七七)이라고 했다. 호생관이란 붓을 놀려서 겨우 입에 풀칠한다는 뜻으로, 아호만 보더라도 품성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고관대작의 강압적인 태도에 반발해서 스스로 자기 눈을 붓으로 찌른 괴팍한 성격이, 칠칠의 내용을 알면 더욱 잘 드러난다. 이름인 ‘북(北)’의 좌우를 쪼개서 칠칠이라 했는데 자신을 칠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아호를 통해서 낮추고 있으니 말이다.
옛 풍습으로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혹은 어르신이나 친지의 힘을 빌려서 호를 지었는데 작호(作號)에 특별한 법칙은 없다고 알고 있다. 당사자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말을 넣기도 하고, 지향하는 마음을 담기도 하고, 뜻이 좋은 옛 글귀에서 따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고향을 나타내는 글자로 꾸미기도 했다.
조선 말의 동양화가 심전(心田) 안중식은 애제자인 노수현과 이상범에게 자신의 호에서 한 글자씩 떼어내 각각 심산(心汕), 청전(靑田)이라는 호를 짓게 해 사제 간의 정을 나눴다. 시인 이육사(본명이 원록)처럼 일제 치하 수감 당시 자신의 죄수 번호 264를, 천재 문학가 이상(본명이 김해경)같이 잘못된 호칭(직장 동료 일본인이 이 씨로 잘못 알고 ‘이상’이라고 불렀다)을 호로 삼은 특이한 인물들도 있다.
세월이 흘러 생각이 달라지거나 싫증이 나면 호를 바꾸기도 했는데 용처에 맞게 그때그때 다른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20여 개의 호를 가졌고, 추사 혹은 완당으로 알려진 명필 김정희는 사용한 아호가 수백 개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요즈음은 호를 짓는 사람이 드물다. 사람을 칭할 때 흔히 성(姓) 뒤에 직책이나 직업을 붙여서 부르는데 아호에서 묻어나는 친밀감이나 정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효율이 절대 선(善)인 각박한 세상에 여유와 멋이 무슨 소용이랴만, 오늘따라 주책없이 멋들어진 아호 하나 갖고 싶은 부질 없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