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만 쳤다하면, 회사 이름부터 바꾸더라
사고만 쳤다하면, 회사 이름부터 바꾸더라
올들어 코스닥 46개사 ‘새 간판’
61%가 자본잠식 등 악재 세탁용
지난 8일 코스닥 상장사 에디슨EV는 주주총회를 열어 회사명을 스마트솔루션즈로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에디슨EV는 관계사인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차 인수전에 동원돼 회사채를 800억원 발행했던 기업이다.
인수에 실패하자 무리한 회사채 발행 여파에 외부 감사인의 감사 의견 거절이 이어지며 거래 정지 상태가 됐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사명 변경 카드를 꺼낸 것이다.
강 회장은 “최근 잇단 악재로 에디슨이란 이름에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새 출발 차원에서
사명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에디슨EV처럼 사명을 변경한 코스닥 업체는 46곳이나 된다.
문제는 사명 변경 사례 중 상당수가 사업 다각화나 회사 분할·합병 등 체질 개선이 동반된 게 아니라 자본 잠식이나
거래 정지, 횡령 같은 악재를 감추기 위한 이미지 세탁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공시만 보지 말고 사명 변경의 전후 과정을 꼼꼼히 살핀 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간판만 바꾼 불량 기업 주의보
본지가 사명을 바꾼 기업 46곳을 분석한 결과, 매출이나 이익 급감, 법정 분쟁 같은 악재에 휘말린 곳이 28곳(61%)에
달했다.
공시 의무 위반, 감사 의견 거절, 범죄 혐의 등에 따라 거래가 정지되거나 상장폐지 된 업체도 10곳에 달했다.
46곳 중 19곳(41%)은 상장 이후 2번 이상 사명을 변경했다.
전자 부품 제조사 미래오토스는 지난 4월 에이치엔티에서 사명을 변경했다.
미래오토스는 회계법인의 감사 거절, 내부 회계 관리 제도 비적정을 이유로 수차례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됐던 업체다.
경남제약헬스케어에서 이름을 바꾼 커머스마이너는 경영진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돼 거래가 정지됐던 전력이 있다.
반도체 부품사인 에스에이치엔엘(구 아래스)은 상장폐지 심사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이익을 부풀렸다가 검찰에 고발됐다.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사인 광무(구 릭스솔루션)는 4년 연속 손실을 기록하며 관리 종목으로 지정됐고,
물류 업체인 디에스앤엘(구 포티스), 소프트웨어 공급사인 디모아(구 인피니티엔티) 등은 감사 의견 거절로 거래가
정지됐다.
샘코에서 이름을 바꾼 항공기 부품사 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사명 변경은 코스피보다는 코스닥 업체에서 자주 일어난다.
비교적 규모가 작아 대주주 변경이 잦고, 사명 변경에 필요한 정관 변경도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홍정석 화우 변호사는 “사명 변경 후 호재성 공시를 내놓고 주가를 띄운 후 수익을 얻는 건 기업 사냥꾼들이 쓰는
흔한 수법”이라고 했다.
2019년 있었던 라임 펀드 사태에서도 사명을 변경한 코스닥 업체들이 새로운 사업 진출 소식을 흘리며 주가를 띄우면서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잦은 사명 변경과 최대 주주 변동, 무리한 외부 자금 조달 등을 불공정 거래 혐의가 발생한 종목의
공통점으로 꼽는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사명 변경이 잦고 주가가 널뛰기하는 종목은 투자자들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업 목적 등 내실 꼼꼼히 살펴야
물론 이 같은 꼼수와 무관한 사명 변경 사례들도 있다. 사업 구조 재편 등 체질 개선과 맞물린 경우들이다.
‘나노스’로 이름을 바꾼 SBW생명과학은 헬스케어 사업 본격화를 알렸고 1분기엔 영업이익 흑자 전환도 공시했다.
KH건설(구 KH이엔티)도 종합 건설 사업 진출을 발표하면서 사명을 바꿨다.
온라인 교육 업체 크레버스는 청담러닝과 씨엠에스에듀가 합병하면서 사명을 변경한 경우다.
증시 전문가들은 사명 변경과 함께 공시되는 신규 사업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에디슨EV의 경우 상호를 변경하며 전자 상거래 및 유통업을 신규 사업으로 추가했다.
강영권 회장은 “전자 상거래 부문만 잘하게 된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채 비율이 200%를 넘는 에디슨EV의 현금성 자산은 300억원에 불과하다.
대규모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전기차 사업의 손실을 만회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