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첫 발걸음 떼는 누리호, 한국 우주개발 도약 신호탄

황태자의 사색 2022. 6. 20. 09:52
728x90

첫 발걸음 떼는 누리호, 한국 우주개발 도약 신호탄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00:34

지면보기지면 정보

우주발사체의 미래

황진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의 첫 독자기술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2차 발사가 미뤄지고 있다. 지난주 초속 12m의 거센 바람으로, 47m 높이의 누리호 기립과 전기 및 산화제와 연료를 공급하는 엄빌리컬 타워 작업에 심각한 안전성이 우려돼 하루 순연됐다가, 이튿날에는 누리호의 기립 후 발사준비를 위한 사전점검 과정에서 산화제 탱크 내부의 레벨 센서에 오류가 발견돼 또다시 연기됐다. 다행히 오류는 단순 센서 불량으로 결론이 났고, 날씨 문제만 없다면 21일 발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누리호 발사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공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야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 부족했던 1차 발사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이번 2차 발사는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순수 국산기술 발사체 누리호의 개발 과정은 나로호 개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나로호 첫 발사에서의 페어링 분리 실패, 2010년 1단 비행 구간에서의 폭발사고를 극복하고, 2013년 어렵사리 세 번째 시도 끝에 발사에 성공했다. 나로호는 러시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어렵게 성립된 한·러 협력을 통해, 러시아의 1단 액체 로켓과 우리의 2단 고체로켓을 결합하는 형태로 개발했다. 우주발사체의 가장 중요한 1단 엔진이 러시아제였기 때문에 한국의 우주발사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주개척의 핵심은 우주발사체
‘우주로, 우주로’ 각국 경쟁 가속
2030년까지 위성수 1만7041기
민관 함께 우주산업 키워나가야

‘메이드 인 코리아’ 발사체

지난 1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제2 발사대에서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기립되고 있는 장면. 연속촬영 후 편집한 사진이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하지만 누리호는 1단 액체엔진을 비롯한 모든 부품이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1957년 인류 최초의 우주발사체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지 65년이 지나 ‘진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발사체가 탄생하고,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리고 우주탐사를 실현할 수 있는 우주자립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주개척의 시작과 끝은 우주발사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조한 발사체였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 인류 최초의 유인 달착륙을 실현한 닐 암스트롱은 새턴5 로켓이 없었다면 임무 완수가 불가능했다. 우주에서의 모든 업적은 우주발사체 개발의 역사다. 인간이 중력을 벗어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고와 실패가 있었음에도 인류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우주를 정복해왔다.

인류의 우주개척을 열어온 우주발사체는 핵무기 등 대량파괴 무기의 운반수단으로 간주돼 국가 간 기술이전이나 부품수입이 불가능하다. 요즘 같이 국제분업이 원활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부품이나 기술을 자유로이 거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엔진은 물론 소재부품까지 100% 자국산 제품으로 개발해야 하는 매우 보기 드문 분야다. 한국이 자랑하는 반도체 분야도 해외 장비 수입이 70% 이상이고, 스마트전기차 배터리 등도 상당한 소재나 구성품이 외국산이지만,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주발사체는 예외다. 때문에 우주발사체 개발 첫 단계에 매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주발사체 보유국은 여전히 극히 소수이지만, 최근 우주발사체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누리호가 1.5t 위성을 600~800㎞ 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성능인데 반해, 미국 스페이스X의 팔콘 헤비는 저궤도에 64t, 정지궤도에 27t을 투입할 수 있을 만큼 고성능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팔콘9을 통해 재사용 발사체 시대를 열어 기존의 발사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우주를 경제성이 있는 영역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당 우주탑재체 발사비용은 스페이스셔틀의 5만4500달러에서 아리안5 9167달러, 프로톤 4320달러, 팰콘9는 2720달러, 그리고 팰콘 헤비는 1400달러까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40년까지 저궤도에 ㎏당 수십 달러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머지않아 민간인 달여행 가능

또 스페이스X는 완전한 재사용이 가능하고 100t 이상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초대형 발사체 스타십을 개발 중이다. 내년 민간인 최초의 달여행을 실현하고, 장기적으로 유인 화성 탐사하는 데 스타십을 사용할 계획이다. NASA는 유인 달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사업의 일부로 개발비가 무려 23조원(230억달러)인 우주발사체 SLS를 개발하고 있다. 이 발사체로 유인 달 탐사선 오리온을 달에 보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유럽우주국(ESA)은 21t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 아리안6를, 중국도 140t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초대형 발사체 창정 9호를 개발 중이다.

2016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된 국제우주대회에서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1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 번에 100명 이상을 수용하는 우주선 1000척 이상이 필요하다. 그는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60년이 되는 2029년에는 첫 번째 유인 화성착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인류가 지구 이외의 타행성에 거주하는 종족이 되는 것을 우리 세대에서 보게 될 수도 있다.

한국도 누리호를 이을 차세대 발사체를 준비하고 있다. 2023년부터 2031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1단부에 추력 100t급 액체엔진 5개를, 2단부에는 10t급 2개로 구성된 발사체를 개발해 지구 저궤도에 10t, 달궤도에 1.8t, 그리고 화성 천이궤도에 1t을 보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 수요 위성을 발사하고, 나아가 달착륙·화성탐사 등도 자력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23조원을 투입하는 NASA의 SLS와 같은 초대형발사체나 유인우주선을 당장 개발할 수는 없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범위에서 국내 위성발사 및 우주탐사 수요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계적으로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컨설트(2021)에 따르면 지난 2011~2020년 전 세계 위성 발사 수가 3816기였으나, 향후 2030년까지 발사될 위성의 수는 1만7041기로, 현재의 4.5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경우에도 2030년까지 100기 이상의 위성개발 계획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는 뜻이다.

뉴스페이스 시대에 동참해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우선은 누리호의 성능을 향상하고, 반복 발사를 통해 국내 산업체의 생산 역량을 증대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위한 감시정찰위성 수요와 많이 증가하는 다양한 용도의 국내 위성 발사수요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뉴스페이스 시대에 동참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발사체로 한국 최초의 달착륙을 실현하고 우주자원 선점을 위한 우주탐사 경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우주청 설립을 통해 우주 분야의 국가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강력한 산업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연구계는 엔진 성능 향상, 재사용발사기술 개발 등 성능고도화 노력에 전념하고, 기업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향후 국내 발사 수요에 대비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갖추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시장에 대비해야 한다. 메이드인 코리아 우주발사체가 어느덧 세계시장에서 하나의 선택 대안으로 떠오를 날이 올 것이다.

20여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최하는 워크숍에 갔을 때 미국 발사체 기업 임원으로부터 “한국이 왜 우주발사체 시장에 진입하려고 하느냐. 세계에 발사체가 없어서 그러느냐”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현대가 포니 자동차를 개발한 이유는 세계시장에서 포드 자동차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언젠가 한국의 우주발사체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갈 길은 멀지만 이제 첫걸음을 떼려 하고 있다. 이 첫걸음이 비록 작더라도 한국 우주개발의 미래를 향한 커다란 도약의 신호탄이라고 믿고 싶다.

황진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