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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고사성어 리더십] 이름의 힘

황태자의 사색 2022. 6. 2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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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고사성어 리더십] 이름의 힘

효심 가득 드러나는 `애일당`
`김구 연구실`선 애국심 물씬
공간의 작명엔 가치관 담겨

시대정신·진심 간직한 正名
강요 없이 조직 목표 일깨워

  • 입력 : 2022.06.21 0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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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안동의 서원과 종택들을 탐방하는 인문기행을 다녀왔다. 당호(堂號)의 출처를 알게 되니 한결 흥미로웠다. 시대와 세월의 간극을 넘어 선비들의 가치와 원칙을 엿볼 수 있어서다.

조선 중기의 문신 농암 이현보 종택의 별채 당호 애일당(愛日堂)엔 효심이 담겨 있다. 애일이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부모님이 살아 계신 하루하루를 아까워한다'는 뜻이다. 연로한 부친을 위해 아버지와 동년배인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대해 색동옷을 입고 이곳에서 춤을 추며 '재롱잔치'를 벌였다는 농암의 모습이 그려졌다.

도산서원의 원생들이 기숙하던 동재의 당호 박약재(博約齋)는 '지식은 넓게 가지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博學於文 約之以禮, 논어 옹야 편)'는 의미다. 현판에 담긴 묵언의 당부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복궁(景福宮)을 비롯해 중국의 장락궁(長樂宮), 미앙궁(未央宮) 등 궁실 이름에선 그만큼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실행과 가치보다는 '오랫동안 번영하고 누리겠다'는 '그들만의 리그' 왕조의 야망이 주로 담겨서일 것이다.

회사 방문을 갔을 때 공간의 작명 방식을 눈여겨보곤 한다. 조직문화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어서다. 모 기업의 인재개발원에 갔는데 강의실 이름에 '김구'가 붙어 있었다. 회사 출신 인물 중 동명이인이 있나 물어보니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을 기린 것'이란 설명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개발에 임한 연구자들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어 뭉클했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개발한 (주)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은 과거 회의실 명칭을 올림픽 각 종목에서 선보인 혁신적인 기술의 명칭을 따 붙였다.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기 위한 암묵적 환경 조성인 셈이다. 독일계 기업 DH로 인수합병되면서 현재 신사옥 회의실은 구성원 자녀의 이름을 따서 작명했다. 부모로서 엄숙한 책임감을 더 느낄 것 같다.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은 집무실부터 회의실까지 무협지 속 무대와 연관해 명명한 바 있다. 회의실 이름인 '광명정'은 김용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에서 영웅들이 모여 대사를 의논한 곳에서 따왔다.

공자는 '정치를 하게 되면 정명(正名)부터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명은 명칭과 명분에 맞는 공통언어다. 공간 작명은 조직문화에서 큰 효과를 발한다. 무엇이 중요 가치인가, 지향점인가,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강요'하지 않고 '강조'할 수 있어서다. 작명 효과 면에서 현재 용산 대통령실 이름은 볼품없어 보인다. 단순한 지역명이나 외관, 기능명을 넘어 시대정신과 지향 가치를 담은 '정명'을 기대해본다.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코칭경영원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