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위기일수록 헝그리정신 필요…신발부터 운동화로 바꿨어요"

황태자의 사색 2020. 10. 1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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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일수록 헝그리정신 필요…신발부터 운동화로 바꿨어요"

[매경이 만난 사람] 창립 50주년 맞은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

패션업계 IMF보다 힘들어
직원들 임금 제때 주려고
아끼던 땅도, 주식도 팔아

나는 지금 회장님 아닌 사장
영업부서장 40명과 단톡방
10년만에 직접결재 업무챙겨

경총 부회장으로 책임 느껴
기업인에 `희망전도사` 될터

  • 심상대 기자
  • 입력 : 2020.10.13 17:11:46 수정 : 2020.10.13 20:10:03
  • 1■ 대담 = 김경도 유통경제부장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이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형지그룹 본사 앞에서 두 주먹을 쥔 채 파이팅을 외치며 위기

극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한주형 기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딩 꼭대기층에 위치한 회장실은 얼핏 평범해 보였다.

 

테이블, 소파 그리고 선반 가득한 기념사진은 여느 회장실과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테이블 뒤로 난 문을 통해 테라스로 나가면 색다른 걸 느낀다.

 

커다란 샌드백과 다양한 크기의 아령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67)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땀 흘리며 샌드백을 때린다.

 

장갑을 착용하고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최병오 회장은 "경영이 위기를 맞을수록 헝그리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대문 시장 의류 브랜드 `크라운`으로 패션 업계에 발을 들인 최 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패션유통기업 형지를 키워냈다.

 

의류 브랜드는 17개, 전국 매장 수는 2000여 개에 달한다. 한국의류산업협회장, 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맡으며 업계 발전을 위한 목소리도 꾸준히 내왔다.

 

그는 형지와 업계를 `한 몸`으로 여긴다. 그에게 형지의 성공은 업계의 성공이요, 형지의 실패는 업계의 실패와 같다.

 

그래서 그는 요즘 어깨가 무겁다. 창업 50주년과 역대 최악의 위기를 동시에 맞은 그에게 형지와 패션 업계 미래를

물어봤다.

 


―현재 국내 패션 업계 위기 수준은.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50년간 사업을 해오면서 지금처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IMF·리먼 사태도 잘 버텼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좋지 않은 걸 피부로 느낀다.

 

신기술을 앞세운 혁신산업에 비해 패션산업과 같은 전통산업은 더 소외되는 상황이다.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주52시간근무제 적용 등은 현장 목소리가 잘 반영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패션 업계 리더로서 책임감 느끼나.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누가 부탁하진 않았지만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나도 27년 전 부도난 적이 있고 그것을 딛고 일어섰다. 지금껏 회사를 경영하면서 임금 지급을 하루도 지연한 적이 없다.

 

장관이나 공직자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업계 현안을 위한 대책을 간곡히 요청한다.

 

지난 6월 경총 회장단 간담회를 통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 결과 입·출국 제한이 완화됐다.

 

앞으로도 기업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우리 패션기업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믿는다.

 

패션산업 경쟁력이 예전보다 한 차원 더 높아지면서,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 패션 수준은 디자인이나 기능성, 품질 면에서 세계적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나.

▷땅이라도 팔아서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했다. 몇 달 전엔 서울 송파와 경기 수지에 있는 부동산을 처분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수도 없이 찾아 둘러볼 정도로 개인적으로 아끼던 자산이었다.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주식까지

처분했다.

 

당시 매도한 주식 주가가 지금 5~6배나 뛰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재를 털어 임금을 지불하더라도 기업이 망해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옥 1층에는 4개 브랜드 매장을 열고 그 수익금은 직원 복지에 사용할 예정이다.

 

위기 대응 차원에서 불가피한 구조조정도 발생했는데 그에 대해선 아쉬움이 크다.

―직원들에게 `초심`을 강조한다는데.

▷나부터 신발을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사원이건 대리건 모든 임직원과 소통을 강조하고 영업부서장 40명과 `단톡방`을 만들어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점주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면서 손을 잡고 그들과 어려움을 겪어가자고 의지를 다진다.

 

200명 정도 이름을 외웠는데 그렇게 하니 다들 반가워한다. 직원들과 점주들 모두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우리 모두 줄탁동시(어미 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알을 쪼는 행위)로 행동에 나설 때다.

―`회장 아닌 사장`이라 선포했는데.

▷지난 10일 영업직원들과 워크숍 자리에서 얘기했다. 10여 년 만에 결재를 직접 하는 등 모든 업무를 다 챙기겠다는

뜻이며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어갈 생각이다.

 

매출 증진을 위해 최대한 유연한 사고를 동원하자고 전했다. 평생 남보다 반의반 걸음 더 먼저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사업적으로는 본업인 여성 캐주얼에 완전히 집중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업무상에서도 직급 대신 심플하게 `선배님`

`후배님`으로 호칭해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장벽을 허물어 보려 한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다 함께 `MIT(미션 임파서블 팀)`가 되자고 강조했다.

―형지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좋은 품질이 우선이다. 그다음은 합리적 가격이다. 형지 브랜드 대부분은 가두점 중심으로 패션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동대문시장에서 시작해 브랜드를 키워냈는데

요즘으로 치자면 `혁신` 그 이상이었다.

 

현시대의 혁신기업인인 마윈과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웃음) 브랜드를 론칭한 뒤 한동안 매년 100%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겨울 추위가 심하다는 얘길 들었는데 패션 업계엔 좋은 뉴스다. 올해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영업을 남은 시즌 동안

극복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흥행을 위한 대대적 이벤트도 필요하다. 지난겨울 소화하지 못한 제품은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할 예정이다.

―MZ세대 마음 얻는 방법은.

▷코로나19로 며느리와 딸들이 어머님들을 외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여성복 매장이 많이 힘들었다(웃음).

 

다행히 이달 들어 매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패션 브랜드 형지I&C는 일본 시장 진출 상표권을 출원했고 온라인

매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형지엘리트 교복도 흑자 전환 후 야구용품 사업 추진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이다. 최근 골프웨어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며 까스텔바작도 긍정적 성과를 내고 있다.

 

모두가 하나하나 주옥같은 브랜드다. 충분히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만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브랜드 값어치

 

높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1020세대가 주요 고객인 국내 대표 온라인 패션플랫폼과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캐주얼 상품 출시를 논의하고 있다. 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로 형지와 플랫폼 양측 모두에 획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운동…지칠 때면 "마! 참아봐" 하던 복싱코치 떠올려




 

최병오 회장이 본사 7층 테라스에서 샌드백으로 운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형지그룹]

올 블랙(all black). 지난 12일 오후 논현로 본사에서 만난 최병오 회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 컬러 차림이었다. 바람막이 점퍼에 스트레치 기능이 강조된 트레이닝복 상·하의 그리고 운동화까지.

당장이라도 땅을 박차고 전방을 향해 전력 질주할 에너지가 느껴졌다. 형지그룹 옷으로 무장했느냐는 말에 티셔츠는 며느리가 선물해준 다른 회사 브랜드라며 웃어 보였다.

―요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매일 운동한다. 새벽 4시~4시 30분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한다. 예전엔 운동을 하고 출근했지만 최근엔 회사에서 운동을 한다. 운동할 수 있는 장비를 다 갖춰놨다. 언제까지 하겠다는 생각 없이 끝까지 이어나갈 것이다. 성격이 급해 `속도전`으로 사업을 키웠지만 건강을 위해 템포 조절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5시간 정도였던 수면 시간도 조금씩 늘리고 있다. 건강을 생각했더니 요즘 활력이 넘친다.

―회사에 샌드백을 설치한 이유는.

▷젊은 시절 실제로 권투를 했다. 당시 복싱을 가르쳤던 코치는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마! 참아봐"를 외치며 몰아붙였다. 온몸에 힘이 풀려 죽을 것 같아도 다시 일어서야 했다. 지금도 그 한마디가 내 자신을 가다듬는 무기가 됐다. 회사에서 때리는 샌드백은 기분이 다르다. 하루를 매일 링에 오르는 심정으로 산다. 인생이라는 라운드에서는 비틀거릴 때도,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릴 때도 있다. 샌드백 외에 모든 동선에 운동기구를 배치했다.

―청년에게 전해줄 말은.

▷사람들에게 조금은 관심을 덜 받는 분야라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으면 한다. 한 예로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열악한데 그쪽에서 1~2년간 고생해본 뒤 창업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남이 싫어하고 보기에 험한 것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미래 패션인에게는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를 항상 잘 주시하라 말하고 싶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꿋꿋하게 가자는 것도 당부한다. 나는 아직도 스티브 잡스의 명언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를 곱씹고 있다.

 



▶▶ He is…

△1953년 부산 출생 △전남대 철학 명예박사 △부산대 경영학 명예박사 △1971년 부산국제시장 페인트 매장 오픈 △1981년 서울 동대문 바다상가 △1998년 형지어패럴 대표 △2011~2018년 한국의류산업협회 회장 △2018~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2019년~ 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 △2019년~ 부산섬유패션정책포럼 상임대표

[정리 = 심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