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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월요일] '비장소'의 고독

황태자의 사색 2021. 11. 2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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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월요일] '비장소'의 고독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별안간 생각에 잠긴다
희고 불어터진 나의 손이 앙증맞고 부드럽다는 생각
짧은 팔과 오동통한 다리가 제멋대로 휘청거린다는 생각
공원의 한복판에 나를 방치한 채 백 년쯤 흘렀다는 생각
겹겹의 산 뙤약볕을 추격하는 참매미의 울음소리

순박한 나의 부모들은 나무 뒤에 숨어서 희희 웃고 있다

- 유계영 作 '비장소'


시 제목이 '비장소'다. 비장소는 전통적인 '장소'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현대 소비문명의 상징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대형 쇼핑몰처럼 사람들이 모이지만 관계성이나 역사성이 없어 보이는 곳을 지칭한다. 반대로 집이나 학교는 '장소'다.

비장소에서 인간은 '고독한 군중'이다. 이 시는 고독한 현대인에 대한 수준 높은 묘사가 매력적이다.

인간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치된 나는 고독하다. 이 세계는 나의 전 세대인 부모님들은 잘 모른다. '비장소'는 21세기 한복판을 사는 세대에게는 숙명 같은 개념이다. 나는 오늘도 군중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혼자였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