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황금 가지’ 겨우살이, 목숨 걸고 지킨 까닭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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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가지
이탈리아의 북부에는 ‘디아나의 숲’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커다란 신전(神殿)과 함께 황금 가지를 단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한 남자가 칼을 들고 밤낮없이 이 나무를 지킨다. 이 사람은 단순한 경비병이 아니다. 이 커다란 신전을 다스리는 최고의 사제, 그러니까 ‘사제의 왕’이다. 왜 왕이 직접 칼을 들고 나무를 지킬까? ‘숲의 왕’으로도 불리는 이 자리가 독점도, 세습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 단, 이 황금 가지를 꺾고 이 남자까지 죽여야 한다.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 겨우살이
인류학의 고전이자 13권이나 되는 대작인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는 이 묘한 신화로 시작한다. 이곳은 지금도 실재하는데, 신화에 등장하는 황금 가지는 진짜 금으로 된 게 아니다. 나뭇가지에 반(半) 기생하는 겨우살이라는 식물이 황금색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불린다. 이 식물은 겨울에도 잎을 내며 살아있는데, 황록색의 줄기에 10월쯤 열리는 콩알만 한 열매가 연한 노란색이라 차디찬 겨울, 쏟아지는 햇빛에 부드러운 바람까지 불면 황금 이파리처럼 보인다. ‘미개한’ 고대 사람들이라 이게 겨우살이라는 걸 몰랐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걸 왕의 상징으로 삼아 목숨을 걸었던 걸까?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는 단순한 책이 아니다. 13권까지 내는데 46년이 걸린 대작이자 수많은 문화 속에 담긴 인류의 정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한 역작이다. 프레이저는 여기서 이 세상의 신화와 문화, 그리고 문화 속의 다양한 의식이 그저 단순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의미(원형)를 담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짚어낸다.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라고 여기는 문화에도 다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숲의 왕’이 되기 위해 황금 가지를 두고 싸우는 신화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을까?
이 황금 가지는 상징일 뿐 진짜 의미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 인류의 가장 주요한 생존 전략은 협력이다. 개체로 보면 인간은 사자나 호랑이에 비해 턱없이 약하지만 긴밀한 협력과 뛰어난 지능을 이용해 최고의 존재가 되었다. 무엇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왕(리더)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공동체가 핵심 역량이었기에,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왕이 노쇠하거나 병이 들어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거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어떨까? 공동체는 파국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는 길은 하나다. 능력이 쇠약해지는 징후가 있는 왕을 즉시 살해해야 ‘원기 왕성한 후계자에게 (그의 영혼을) 이전할 수 있어’ 공동체의 쇠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니까 ‘숲의 왕’ 도전전은 이를 위한 절차이자 의식이었다. 이런 의식에 왜 황금빛이 나는 겨우살이가 상징화되었을까? ‘겨울에 헐벗은 가지 사이로 그 싱싱한 푸른 잎이 (특히) 참나무 숭배자들에게 신성한 생명의 표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을까지 푸르렀던 참나무의 생명력이 겨우살이 속에 들어있다고 여겼다(이용대 옮김, 한겨레출판, 2003년).
공동체를 위한 이 살벌한 권력 교체는 여기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상당히 많은 곳에서 실제로 존재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도 있었다고 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1800년대까지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나이지리아에 있었던 주쿤족의 왕은 중병에 걸리면 결투조차 없이 조용히 죽임을 당했다. ‘병을 앓고 있는 왕의 신음소리가 들리면 백성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가뭄과 흉작이 계속되었을 때도 힘이 약해진 증거라고 여겨 밤에 조용히 죽임을 당했다.
물리적 죽음 못잖은 사회적 죽음
7년의 통치 후 추수감사절 때 죽어야 하는 ‘단임제’ 방식이 있는 곳도 있었다. 이유는 더 이상은 제대로 된 통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능력이 있어서 왕이 되었기에 ‘백발을 보이거나 시력이 약해지거나 치아를 잃거나 무기력해지면’ 역시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엘리아스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이라는 책에서 D.베스터만의 『아프리카 역사』라는 책을 인용한 것을 재인용).
야만적인 것 같지만 보여지는 것 아래에 숨은 의미는 명확하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민주주의 덕분에 죽거나 죽여야 하는 일은 없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사회적 죽음도 물리적 죽음 못지않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팀장이 마음 아픈 푸념을 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임원 달기엔 좀 빠르지 않느냐’고 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좀 많지 않느냐’고 하네요. 이렇게 버려지는 걸까요?” 지속가능한 조직도 좋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세대교체라는 구호 속에 묻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진짜 교체해야 할 사람들은 시퍼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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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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