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정치화 막고 큰 정부 유혹 물리쳐야
대통령의 경제정책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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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경제정책은 큰 정부와 정부개입을 선호하는 케인시안(Keynesian)의 진보주의(liberal),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보수주의(conservative)로 나눌 수 있다. 대통령은 이들 경제정책 중에서 선택하게 되고 그의 정책 선택에 따라 경제 성과도 다르게 된다.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와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허버트 스타인(Herbert Stein)은 이러한 대통령의 경제정책 선택에 초점을 맞춰 『대통령의 경제학(Presidential Economics)』을 저술했다. 루스벨트에서 클린턴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 수립 과정과 성과를 평가하고 그 성공 조건을 제시했다.
앞으로 계속될 우리나라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대선 후보들이 어떠한 경제정책을 선택하고 수립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저성장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으며 중국의 추격으로 선진국 문턱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경제정책 선택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환기에 있는 한국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는 대통령의 경제정책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재정낭비 줄이고 각종 로비 경계
부의 불평등, 일자리 창출로 해결
과학기술 인력 투자 더욱 늘려야
정부 역할 커질수록 비용도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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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스
먼저 경제의 과도한 정치화를 막아야 한다. 경제는 예산이나 법과 제도가 국회에서 결정되므로 정치의 영향을 받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도한 정치화는 그 부작용이 심각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 수립과정에서 특정 정치이념이나 포퓰리즘이 영향을 미치면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주된 원인인 경제적 요인을 등한시하고 정치적 요인만 고려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선심성 재정정책인 포퓰리즘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날 경우 남미 국가들처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늘어나 재정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국가 신뢰도를 하락시켜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큰 정부의 비효율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코로나 사태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세계는 정부 개입이 늘어나는 큰 정부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 또한 구조적으로 큰 정부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며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고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부(富)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배경이다.
큰 정부는 불평등과 같은 시장실패는 보완할 수 있지만, 정부실패라는 비용을 늘어나게 한다. 그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착취적 제도가 만들어질 틈이 생기면서 경제가 저성장과 양극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재정지출 낭비를 줄여 효율화하고 이익집단의 로비를 차단해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해 큰 정부의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
신산업정책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그리고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 일본의 20년 경기침체를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경제 여건은 1990년대 초의 일본과 유사하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추격으로 반도체와 전자 등 주력산업을 한국에 넘겨주고 장기 저성장의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국도 지금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성장잠재력이 낮아지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함께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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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스
최근 일본 관료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의 20년 경기침체와 저성장의 원인을 산업정책 실패에서 찾고 있다. 일본경제는 1980년대 전성기 때 세계 반도체의 70% 이상을 공급했으나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상과 1985년 엔화가치가 대폭 평가절상되는 플라자 협정으로 산업경쟁력을 잃게 됐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여기에 대응해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1년에는 통상산업성(MITI)을 경제산업성(METI)으로 사실상 축소 개편해 산업정책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반면 중국은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산업정책을 지속해서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도 최근 산업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해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 전략적 대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한국은 198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중복투자의 부작용을 겪은 후 산업정책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산업구조하에서는 산업정책이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중국의 추격으로 새로운 산업구조가 구축돼야 하는 현재는 신산업을 육성하고 기존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실업이나 양극화와 같은 대부분의 경제 현안은 모두 산업경쟁력 약화와 연관이 있다. 일자리 부족의 주된 원인은 중국의 추격으로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으로 전자와 자동차산업까지 중국 이전이 가시화될 경우 일자리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우려된다. 비대면 거래와 디지털화로 서비스업 또한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정책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학 교육, 정부연구소 개편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를 늘리고 기존 산업구조에 맞게 구축된 대학교육과 정부연구소 체제를 신산업구조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또 기업의 신산업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과학기술 입국을 다시 강조해야 할 때다.
역대 정부가 산업정책을 등한시한 배경은 5년 단임 대통령 정치체제와 연관이 있다. 신산업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장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 중 실적을 중요시하는 역대 정부는 제조업이나 첨단산업에 대한 산업정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경제가 중국에 추격당하는 처지가 됐다.
경제적 불평등도 완화해야 한다. 한국 국민은 평등을 중요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반영해 1949년 이승만 정부는 농지소유를 3정보로 제한하는 농지개혁으로 부의 불평등을 크게 완화했으며 그동안은 소득의 불평등 완화가 주된 정책 과제였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소득 불평등 완화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부의 불평등이 다시 확대되면서 부동산 개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잡을 수 있는 경제적 불평등은 근로의욕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으나 지나치게 격차가 큰 불평등은 노동생산성을 저하하고 사회주의 경향을 높인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수립이 필요하며 이는 복지 확충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부동산가격 안정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또 경제학자들은 이론에는 능하지만, 현실 경제에는 취약한 경우가 많으며 행정 경험이 없어 정책운용에 실패할 수 있다. 허버트 스타인 교수도 현실경제나 새로운 경제 흐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는 경우 경제학자 리스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 경제가 경제실험의 장소가 되기에는 국민이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대통령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적의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중국의 추격으로 인해 20년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험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질 것이 우려된다. 많은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성장의 사다리를 타고 한 계단씩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저성장, 양극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 대통령의 올바른 경제정책 선택, 즉 대통령의 경제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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