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빠꼼이는 토박이 어르신… ‘쉬움의 미학’으로 2200만 연결했죠”
[2022 컬처 체인저] [1]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 대표
한국에서 ‘당근’이란 단어는 3단계로 보폭을 넓혔다. 홍당무의 다른 이름에서 1990년대 PC 통신 시절엔 ‘당연’을 뜻하는 은어로, 최근엔 ‘중고 거래’를 상징하는 말로 확장했다. 2200만명이 쓴다는 국민 앱 ‘당근마켓’이 만들어낸 사회 현상이다. 여기서 당근은 ‘당신의 근처’를 줄인 말. 2015년 판교 지역 기반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시작한 이 앱은 최근 ‘동네 생활’이라는 이웃 정보 커뮤니티로 확장, 무서운 속도로 저인망식 동네 연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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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당근마켓(43) 공동 대표는 한국인 셋 중 하나를 새로운 동사 ‘당근하다’에 빠뜨린 주인공이다. IT 업계 양대 산맥 카카오와 네이버를 거친 개발자 출신 스타트업 대표지만,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컬처 체인저(culture changer·문화를 바꾸는 사람)’다. 그가 요즘 주목하는 화두는 뭘까.
-중고 거래에서 이웃 커뮤니티로 확장한 이유가 뭔가.
“코로나 때문에 동네와 접점이 확 늘었다. 예컨대 재택근무도 엄밀히 따지면 집이 아닌 동네 카페에서 하는 사람이 많다. 물품 거래를 넘어 모세혈관처럼 오밀조밀하게 동네 서비스를 연결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 대표는 지인이나 공통 관심사 기반으로 형성되는 기존 소셜 네트워크와 차별해 ‘동네’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동네 커뮤니티를 ‘뉴 소셜(New Social)’로 규정했다.
-’찐 동네’의 재발견으로 들린다.
“아파트 단지처럼 동 단위에서 한 단계 더 좁힌 지역 단위가 관심사다. 초(超)로컬, 하이퍼로컬(hyperlocal·지역 밀착)로 불리는 개념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활발히 이용하던 상권이기도 하다. 차 없이 걸어 다니는 거리니까 요즘 대세인 ESG(환경·사회·기업 지배 구조)에도 부합하는 물리적 단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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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포착한 현상이 있다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세대 구분을 안 했는데 뜻밖의 소통이 이뤄지더라. 60대 후반 시어머니 생신 때 갈 만한 동네 식당을 묻는 30대 이용자에게 60대 이용자가 친구와 계 모임 하는 식당을 추천하고, 사춘기 딸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에게 고등학생 이용자가 딸의 심리를 대변해 주는 식이다. 세대 차를 키운다는 온라인이 오히려 다른 세대 이해를 돕는 툴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뭣보다 온라인에 없는 동네 정보 최고 빠꼼이는 그 동네 토박이 어르신 아닌가. 이분들 참여가 무척 중요하다.”
-세대 간 기술 격차가 심각해 디지털 고려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푸념도 나오는데?
“70대인 우리 부모님도 할 수 있는 쉬운 앱을 염두에 둔다. 첫째도 둘째도 ‘쉽게 만들자’가 모토다. 처음부터 휴대전화 번호 인증과 GPS 기반으로 동네 인증만 하면 가입할 수 있게 했고, 글꼴도 시원시원하게 했다. 얼마 전 우리 앱으로 가사 도우미 구함 광고를 했더니 60대 동네 분 28명이 연락하셨다. 대부분 직접 앱을 사용하시더라. 방금 본 개발자 면접에선 20~30대 응시자들이 ‘부모님이 즐겨 쓰는 앱’이라고 하더라. 어떤 칭찬보다 뿌듯했다.”
-쉬운 디지털?
“우리 핵심 가치는 ‘쉬움의 미학’이다. 기능과 디자인에서 더하기보다 빼기에 신경 쓴다. 디지털을 어려워하는 동료 부모님의 스마트폰 첫 화면엔 노랑, 주황, 빨강 앱 세 개가 깔려 있다. 카톡, 당근마켓, 유튜브. 그만큼 쉽게 만든 앱이란 얘기다. 사실 쉽게 사용하게 하는 것이 기술적으론 훨씬 힘들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양쪽을 경험한 X세대라는 점도 영향이 있을까.
“어렸을 적 동네 공터에서 놀아 본 세대다. 그런 추억 때문일까, 온라인에도 공터처럼 정 넘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활 밀착형 시선은 어떻게 키우나.
“도그푸딩(Dogfooding·개밥 먹기)이라는 실리콘밸리 용어가 있다.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해야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 시선으로 우리 앱을 써보고 일상에서 아이디어도 얻는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세상 바라보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요즘 눈여겨보는 풍경이 있다면.
“동네의 텅 빈 배드민턴장. 늘 회원 모집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한쪽에선 배드민턴 칠 장소를 구하느라 애먹는 이웃이 있다. 좁은 동네에서도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를 낸다. 이런 문제를 풀고 싶다.”
-취준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로 꼽힌 설문 결과도 있더라.
“직원들에게 ‘건강한 충돌’을 강조한다. 수시로, 제대로 충돌하는 것이 중요한데 의외로 어렵다. 안 해보면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인다. 7년 동안 매달 ‘문화의 날’을 이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의 날’이 뭔가.
“두 종류의 문화를 함께하는 날이다. 오전엔 회사 문화와 관련된 주제를 얘기하고 오후엔 공연 보거나 전시 관람하며 진짜 문화 생활을 한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직원 250명이 비대면으로 문화의 날 토론을 한다. 라디오처럼 틀어놓다가 관심 있는 부분이 나오면 자유롭게 발언하라고 한다. 이런 식의 열린 참여, 열린 결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 자기 생각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으니까.”
-솔직함이 왜 중요한가?
“조직 문화에서도, 기술에서도 그럴싸한 포장은 위험하다. 솔직 담백하고 따뜻한 디지털. 내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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