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일기’이자 ‘신문’ 입는 게 아니라 읽는 것”
온라인 명품 편집숍 ‘육스네타포르테’ 앨리슨 로니스 대표 인터뷰
‘당신 옷장 뒤에 있는 여자.’
당신이 매일 열어보는 옷장 뒤에 어떤 여자가 서 있다면, 아마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이 문장은 최고의 찬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옷장 뒤의 여자’(the woman behind your wardrobe)라고 불린 패션계의 권력자, 세계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인 이탈리아 기업 ‘육스네타포르테’(Yoox Net-a-Porter·YNAP)그룹의 앨리슨 로니스(Loehnis·51) 대표다. 매출 규모 3조원에 직원만 4700여 명. 구찌, 까르띠에, 발렌티노 등 고가 패션 브랜드부터 미술 작품, 홈 인테리어 제품 등 전 세계 1000개 넘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 현재 매달 평균 180국에서 80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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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립 20년을 기념해 런던에 있는 그녀와 전화로 만났다. 미국 뉴욕 출신인 앨리슨은 2007년 마케팅·세일즈 부사장으로 합류해 2016년 그룹 대표(president)가 됐다. 그녀는 명품 아웃렛 쇼핑몰인 ‘더 아웃넷’과 남성 전문 사이트 ‘미스터 포터’를 열었다. 또 자체 패션지를 쇼핑몰에 도입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격식에 맞는 옷 입기부터 전 세계 길거리 패션 스타일 등을 독자이자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옷은 자신을 표현해주는 ‘일기’이자 소식을 담는 ‘신문’이죠. 그때의 날씨, 기분 상태, 기념일이나 출근 여부 등 모든 것이 옷으로 기록되죠. 옷은 단지 입는 게 아니라 ‘읽는’ 매체인 것입니다.”
그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디즈니 크리에이티브 이사로 일했다. 당시의 경험이 콘텐츠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뉴욕 매거진은 “앨리슨의 쇼핑몰에선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지식이 적립된다’고 표현했다. 쇼핑몰이 정보의 원천으로 바뀌자, 한번 사이트를 찾았던 이들은 여지없이 재방문했다. “전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신문 헤드라인 체크로 아침을 시작하거든요.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궁금증이 습관으로 굳어진 거죠.” 네타포르테는 한국에도 10년 전부터 직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해외 직구(직접 구매)족의 ‘개미 지옥’(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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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이 사훈(社訓)처럼 강조하는 문장은 ‘일단 해보자(Let’s try that, Let’s give it a whirl)’. 비슷비슷한 쇼핑몰 사이트가 쏟아지자 독점과 선점으로 치고 나갔다. 미술사 전공자로, 전 세계 단 하나밖에 없는 ‘진품’의 가치를 부각한 것.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유럽 본사 매장에서도 구할 수 없는 제품을 선보였다. ‘남다름’을 원하는 2040 세대가 출근 도장 찍듯 사이트를 찾아왔다. 최근엔 ‘투자’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리세일(재판매)이 MZ세대의 트렌드로 떠오르는 현상에 주목해 사둘수록 가치가 오를 만한 제품군을 선별해 소개했다. 한정판은 기본. 온라인에선 사는 게 꺼려질 법한 수천만~수억 원대의 고급 시계 보석류가 코로나 시기에 판매가 급상승했다. 그 결과 올 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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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해보자’ 정신은 K패션으로 향했다. K패션에 대해선 무심하던 2017년부터 서울패션위크를 찾아 해외에 생소한 한국 브랜드를 자사 입점시켰다. 2018년 신설한 자사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인 ‘뱅가드’를 통해 ‘구드(gu_de)’ ‘르917′ 등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를 전격 발탁했다. 2019년엔 유망 브랜드 6개를 선정한 ‘코리안 콜렉티브’로 미국 뉴욕 블루밍 데일스 백화점에서 팝업 매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K패션이 세계로 나가는 디딤돌이 돼 주는 것이다. 최근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민주 킴의 경우 네타프로테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2020년 론칭한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인패션’ 우승자이기도 하다. 영국 패셥협회와 협력해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금을 설립하면서 지난 7일 그룹 소녀시대 출신 디자이너 제시카 정을 글로벌 멘토로 위촉하기도 했다.
“동양적인 절제미에 서양식 재단, 강렬한 프린트, 길거리 스타일의 고급화…. K패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죠.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요즘엔 해외 팝 스타와 럭셔리 브랜드가 먼저 찾아요! K패션,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앨리슨의 성공 비법 5
1. ′손안의 백화점’. 앱으로 명품 트렌드 검색
2.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 명품 독점 선(先)판매
3. 쇼핑몰에서 패션 칼럼, 코디법 등 정보 제공
4. 적극적인 신진 디자이너 발굴
5. 고가 주얼리 구입 전 시착·주문 제작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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