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식품 10년, 매출 100배 ‘K비건’으로
[헬로, 프런티어] 채식 전문기업 ‘올가니카’ 홍정욱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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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만난 식물성 식품 전문기업 ‘올가니카’의 홍정욱(52) 회장은 “5분 정도 짧게 명상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인터뷰이고 집중해야 하니까요. 매순간 최선을 다하기 위해 짧게라도 생각을 가다듬고 나와요.” 한 올 흐트러짐이 없는 2대8 가르마에 터틀넥 스웨터 차림이었다.
그가 2013년 창업한 올가니카는 지난달 중순 중국 국영기업인 중신그룹의 씨틱캐피털로부터 3600만달러(43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씨틱캐피털은 160억달러(19조원) 규모의 펀드를 운영하는 회사다. 올가니카의 첫해 매출은 8억원, 작년 매출은 800억원이다. 9년 만에 100배로 덩치가 커졌다. 자회사로 대체육 회사인 ‘브라잇밸리’, 소스업체인 ‘올가니카시즌’도 두고 있다. 홍 회장은 “어려움에 처한 언론사를 운영해 3년 만에 흑자도 내봤고, 정치에 뛰어들어 쓰라린 경험도 해봤다”면서 “앞으로 당분간은 K비건, K푸드테크를 키워내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회의원과 언론사(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 경영자를 지낸 그가 식물성 식품회사의 경영자로 변신하게 된 건 2012년 가을 무렵이다. 2011년 12월에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였다. 이때 우연히 일본의 가나와 히데오가 쓴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를 읽고 식품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우리가 먹는 것을 바꾸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게 환경을 바꾸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일본 홋카이도 친환경 농장도 찾아갔는데, 그곳 농장주인이 ‘채소는 목숨을 다해 재배해야 한다. 정말로 우리의 목숨이 걸린 음식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더군요. 큰 충격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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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팔판동 뒷골목의 작은 주택에서 착즙 주스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3종 제품을 개발해 자신의 세 아이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놨지만 처음엔 인기가 없었다. ‘망하겠다’ 싶을 때쯤 한 방송인이 다이어트 비결로 올가니카 주스를 먹었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매출이 수십 배 뛰었다. 이후 식물성 간편식·프로틴 제품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넓혀나갔다. 현재는 이마트·코스트코·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제품을 팔고 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도 올가니카의 주스를 직원 간식으로 제공한다. 2019년 헤럴드경제를 중흥그룹에 매각할 때 홍 회장은 헤럴드의 자회사였던 올가니카의 지분은 100% 사들여 독립했다.
작년엔 대체육 전문자회사 ‘브라잇밸리’를 세웠다. 홍 회장은 “아직도 한국에선 ‘채식을 한다’고 하면 ‘유별나다’는 눈총을 받지만, 2030년쯤엔 우리나라 인구의 60% 정도가 고기를 먹지 않게 된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이 식당에서 곱창이나 삼겹살 구워 먹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은 3%가 안 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이미 전기차와 휘발유차의 전쟁은 전기차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이미 흐름은 채식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홍 회장은 ‘K비건’이 앞으로 전 세계 채식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의 많은 채식 인구가 햄버거나 소시지 같은 서양 식단 위주인 대체육·채식메뉴에 불만이 많다는 것. 그는 “지난 20년 동안 햄버거·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는 90% 정도 성장한 반면, 아시안 음식의 시장은 500% 가까이 커졌다”면서 “우리나라의 갈비와 불고기, 중국의 볶음밥과 마파두부, 태국의 팟타이나 나시고렝 같은 아시안푸드를 활용한 메뉴를 계속 개발해 해외 시장에 승부를 걸겠다”고 했다. “5년 안에 5배가 넘게 성장할 자신이 있다”고도 말했다.
“정치는 완전히 떠난 것이냐”고 물었다. 홍 회장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로선 정치가 K비건과 푸드테크처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영역이 아니어서 돌아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윽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을 가장 빨리 바꾸는 건 결국 정치가 아니라 기업과 시민이 아닐까요? 현재 저는 그 답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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