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5등도 27등도 응원합니다
분노로 출발한 이번 올림픽
순위·승패에 온통 관심 쏠려
올림픽 출전한 선수 누구나
눈물의 드라마를 쓰고 나왔다
5위라는 기특한 성적을 거둔 차준환 말고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남자 피겨에는 또 한 명의 한국 선수가 있었다. 스물두 살 이시형이다. 그의 어머니는 한참 전부터 아들 경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한다. 못 해준 것들이 생각나서, 늘 경기장 주위를 돌며 기도만 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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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은 쇼트프로그램 29명 중 27위로 첫 올림픽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어려운 4회전 점프는 버텨냈는데, 평소 잘하던 3회전 연결 점프를 하다가 빙판에 등이 닿을 만큼 크게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 남은 스핀과 스텝을 마쳤다. 경기 전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그는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께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의 말대로 올림픽 무대를 밟기까지 많은 이의 응원과 후원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TV에서 김연아를 보고 어머니를 졸라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엄청나게 돈이 드는 운동에 뛰어든 아들을 어머니는 종일 김밥집에서 일하며 혼자 뒷바라지했다. 고시원에서 산 시절도, 빙상장 탈의실에서 잠든 날도 있었다. 두 차례 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어깨 수술까지 받고 나선 한동안 기초생활수급 지원으로 생활했다.
국가대표로 안정된 지원을 받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2016년 1점 차로 탈락하고 말았다. 제때 바꿔주지 못한 부츠, 침만 맞으며 달래온 부상도 문제였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했을 때, 도움의 손길이 하나둘 나타났다. 동사무소에 전화해 지원을 당부한 피겨 팬, 십시일반 모금해준 얼굴도 모르는 이들, 자기 차를 내준 교장 선생님, 스케이트를 선물한 연예인, 훈련비를 지원해준 기업 회장님, 지자체, 어린이재단… 그들은 이 재능 있는 소년이 환경 때문에 간절한 꿈을 꺾지 않길 바랐다. 이시형은 하루하루 끈질기게 훈련을 이어가 국내 2인자로 성장했다.
시련을 극복하는 데 익숙한 그는 키가 186.7㎝까지 커도, 코로나로 대회가 취소되고 운동할 곳이 문 닫아도 방법을 찾아내 이겨냈다. 두 손 들고 뛰는 기술을 노력 끝에 익혀, 피겨에 걸림돌이 되는 큰 키를 오히려 돋보이게 만들었다. 해외 코치 찾아갈 형편이 안 돼도 4회전 점프에 몰두해 결국 몸에 익혔다. 이 점프 덕에 차준환과 함께 한국 남자 피겨 최초로 올림픽 출전권 두 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도와주신 수많은 좋은 분께 내가 가진 최선의 기술, 내 진심이 느껴지는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하며 베이징을 향했다. 그의 올림픽 출전은 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 많은 이의 소망과 선의로 이룬 드라마였다.
성적 지상주의가 팽배했던 우리 사회에 결과만큼 과정을, 성적만큼 참가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는 소중한 분위기가 지난해 도쿄올림픽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런데 중국의 판정 문제가 베이징 올림픽 시작부터 모든 이슈를 장악했다. 분노할 일엔 분노하고, 바로잡을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다시 우리가 메달 색, 승패, 등수, 스타에게만 온통 관심을 쏟게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50등, 60등을 하더라도 올림픽까지 편하게 온 선수는 없다. 온몸을 감싼 경기복과 무거운 장비에 저마다의 놀라운 이야기, 우여곡절과 극복의 드라마가 가려져 있다. 알려지지 않은 선수에게도, 낯선 종목이라도, 땀과 투혼과 열정에 박수 보내는 분위기가 되살아났으면 한다. 이시형의 포털 사이트 응원 페이지에는 1만개 넘는 댓글이 그를 격려한다. ‘한 번 넘어졌다고 좌절 금지!’ 이시형은 소셜 미디어에 썼다. ‘감사합니다! 이번 경험으로 더 성장하는 선수가 되어서 2026 올림픽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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