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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칼럼] 새로운 한·중·일 산업 3국지

황태자의 사색 2022. 2. 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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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칼럼] 새로운 한·중·일 산업 3국지

한국, 디지털기술로 日추월
중국은 판 바꿔 한국 추격
대만·베트남, 韓대기업 호평
새 정권, 투트랙 기업정책 쓰고
대통령직속 경제전략실 필요

 
며칠 전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지인과 통화했다. 최근 상황을 한탄하는 일본인이 많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1980년대 '1억 중산층' 신화를 이뤄냈지만 지금은 '1억명 빈곤층'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왔다고 했다. 일본 근로자 실질임금은 1997년 정점을 찍은 후 지금까지 정체상태다. 나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지향점이 달랐고 기술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일본의 대처 부족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일본 기업은 내수시장이 큰 만큼 '니혼이치(일본시장에서의 1등)'를 목표로 내걸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국내시장이 작아서 처음부터 '글로벌'을 내걸고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과거 한·중·일 3국은 국가 간 분업체제를 잘 갖췄다. 일본이 고급 소재(부품)를 만들었고, 한국은 이를 가져다가 중간재나 반제품을 생산했다. 중국은 저임금 노동을 활용해 최종 제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3국 간 제조업 가치사슬이 맞물려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이 같은 산업 구도는 급변했다. 3국이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 경쟁을 하고 있으며 각자도생을 하는 모습이다. 디지털시대가 도래하자 일본은 한국의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고 휴대폰으로 결재하는 한국 근로자들과 결재 도장을 찍기 위해 사무실로 출근하는 일본 직장인의 모습은 대비된다.

중국도 그동안 맹렬히 추격해왔다. 일사불란한 공산당 1당 체제의 장점을 이용해 중간기술을 생략하고 최첨단으로 내달렸다. 국가가 나서서 새로운 인프라를 깔고 산업의 판을 바꾸고 점프하는 '축지법 전략'으로 압축 성장을 이뤘다. 중국은 내연기관으로는 기존 강자들을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충전 인프라를 깔고 보조금으로 전기차를 키웠다. 통신 분야에서도 유선전화를 건너뛰고 곧바로 휴대폰을 사용하도록 무선 인프라를 깔았다.

이런 가운데 터진 미·중 갈등은 새로운 한·중·일 산업 3국지가 펼쳐질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이 일본을 바짝 따라잡자, 최근 일본 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확실하게 앞서가려고 분투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첨단 전략 위주로 축지법을 구사해온 중국은 미국의 개입으로 주춤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은 우선 2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첫째, 대기업과 벤처(스타트업)에 대해서 다른 정책을 쓰는 투트랙 전략이다.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거대 기업과 경쟁하는 대기업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친노조정책을 수정하고 대기업을 옥죄고 있는 낡은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탈원전 등 산업에 특정 프레임이나 이념을 덧씌우고 제동을 거는 자해 행위를 멈춰야 한다. 베트남과 대만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대기업을 키워서 중국보다 앞서서 반도체와 중화학공업 등 제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의 이 같은 장점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벤처(스타트업)가 내놓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에 넣고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협력하고 연계되도록 M&A(인수·합병) 활성화 등 산업 생태계 개선을 위한 관련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기득권이 쌓아놓은 장벽 때문에 좌절된 '타다 서비스'가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민간기업이 하기 어렵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의 경제전략실을 만들고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부 부처에도 관련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 이 조직은 외교적 상황이나 지정학적 위기가 국민과 기업에 미칠 영향을 다뤄야 한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희소금속이나 요소수, 소재, 부품 등을 조달하지 못했을 때의 시나리오별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중·일 산업에서 새로운 3국지가 펼쳐지고 있는 지금 상황이야말로 한국이 확실하게 일본을 추월하고 중국과는 격차를 벌릴 마지막 기회다. 국익을 위해 새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김대영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