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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주말] ‘배드’의 뜻을 ‘나쁘다’에서 ‘멋지다’로 뒤집어버린 팝의 황제

황태자의 사색 2022. 2. 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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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주말] ‘배드’의 뜻을 ‘나쁘다’에서 ‘멋지다’로 뒤집어버린 팝의 황제

[배순탁의 당신이 몰랐던 팝]
反폭력 메시지 담은
마이클 잭슨의 ‘배드’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입력 2022.02.19 03:00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1986년 공연 중 열창하는 모습. 이 공연 이듬해인 1987년 잭슨의 통상 7집 앨범 ‘배드’가 발매됐다./마이클 잭슨 공식 홈페이지

인생 최초의 팝 앨범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통산 7집 ‘배드’(Bad·1987년)다. 따라서 처음으로 경험한 팝 노래는 타이틀이자 1번 트랙인 ‘배드’가 된다. 스트리밍은커녕 인터넷도 없던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카세트 테이프로 이 곡을 포함한 앨범 전체를 듣고 또 들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미국 출장 중 사 온 선물이었다.

이 추억으로부터 몇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배드’라는 곡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좋아서 애청했다. 당연하다. 나는 고작해야 초등학생이었다. 대충 “나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곡을 플레이했다. 가사는 중요치 않았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박동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1987년이었다. BTS 멤버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다. 한류라는 말이 탄생하려면 10년이 넘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그랬다. 나는 ‘배드’를 통해 서구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본격적으로 팝 음악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요약하면 음악 평론가로서 나라는 인간의 뿌리에 자리한 노래요, 앨범인 셈이다.

한데 이걸 어쩌나. 훗날 알게 된 ‘배드’의 노랫말은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는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마이클 잭슨은 형제들과 함께 투어를 돌고 있었다. 투어 중 짬을 내 어머니 선물을 사러 골동품 전문점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나쁜 놈! 나쁜 놈!(You’re Bad! You’re Bad!)”

황당했을 것이다. 이게 뭐지 싶었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대중음악 자체를 멸시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밝혀진 건 없다. 이후 ‘배드’ 앨범 제작에 들어간 마이클 잭슨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에 없던 이미지를 창조하고 싶어 했다. 요체는 ‘록’이었다.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와 함께 마이클 잭슨은 ‘스릴러’(Thriller·1982년)의 수록곡 ‘비트 잇(Beat It)’의 록 접근법을 더욱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스릴러’를 통해 마이클 잭슨은 아날로그 녹음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준 바 있었다. 그러나 최고 전성기에 막 다다른 그에게 음악적 욕망은 매일 새살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그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그가 주목한 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 즉 ‘디지로그’였다. 엔지니어 브루스 스위디언과 함께 마이클 잭슨은 당시 평범한 뮤지션은 꿈도 못 꿀 하이엔드 디지털 기기를 구입해 ‘배드’의 사운드를 조각해나갔다. 천하의 마이클 잭슨 아닌가. 자본 따위 그에게 문제 될 리 없었다. 하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당신과 나의 운명처럼 얇은 지갑뿐이다.

이쯤에서 당신은 궁금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과 록적인 터치가 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물음표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배드’를 포함한 앨범의 빠른 곡들을 독보적이면서도 강렬한 사운드로 표현하길 원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기가 막힌 팁 하나가 떠올랐다고 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소리의 높이를 전부 5%씩 올려 음색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내자마자 퀸시 존스를 포함, 모든 스태프가 동의했다고 전해진다.

 
마이클 잭슨의 통상 7집 앨범 ‘배드’./마이클 잭슨 공식 홈페이지

커버도 중요했다. ‘배드’ 앨범 재킷을 보면 ‘스릴러’와 결이 다름을 곧장 파악할 수 있다. 사진 속 마이클 잭슨을 보라. 은빛 금속이 잔뜩 박힌 가죽 재킷을 입고, 무심한 듯 또렷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잭슨에 따르면 타이틀곡 ‘배드’는 ‘비트 잇’의 폭력 반대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대놓고 말하지/ 넌 잘못 살고 있어/ 널 정신차리게 할 거야/ 너무 늦기 전에 말이야/ 네 눈에 보이는 거짓들/ 분명히 말해두지/ 귀담아 들어야 해/ 싸움이나 걸지 말고/ 멋대로 지껄이지도 말라고/ 넌 전혀 남자답지 못해/ 네 약한 모습을 감추려고/ 남을 공격하고 있잖아.”

그러면서 마이클 잭슨은 절정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너와 나 둘 중 누가 멋진 거지?/ (폭력에 반대하는) 나야말로 진짜 멋지게 살고 있는 거야.”

그렇다. 곡에서 ‘배드’는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짜 멋지다’는 거다. 영어로 하면 ‘수퍼 쿨(Super Cool)’하다는 거다. 뮤직비디오도 찾아보길 권한다. 마이클 잭슨이 추구한 반(反)폭력 메시지를 더욱 명징하게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뮤직비디오의 마무리에서 마이클 잭슨은 ‘배드’가 폭력 반대를 넘어 상대를 향한 존중을 노래하는 곡임을 보여준다. 사족 하나 달아본다. 이 뮤직비디오는 나중 거물이 되는 웨슬리 스나입스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다.

원래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는 이 곡을 듀엣으로 녹음할 계획이었다. 놀랍게도 대상은 당시 언론이 대결 구도를 형성한 프린스(Prince)였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가히 불을 머금은 불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최종적으로는 무산됐지만 프린스는 곡 회의까지 참여하면서 마이클 잭슨에 대한 존중을 보여줬다. “이 곡은 내가 없어도 돼요. 이미 훌륭한 곡이니까요.” 이 만남이 꽤나 유쾌했던 프린스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이런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다.

“첫 가사가 ‘네 엉덩이는 내 거야(Your Butt is Mine)’잖아요? 그래서 마이클에게 물어봤죠. ‘이 가사는 누가 누구한테 부르는 거야? 네가 나한테 부르진 않을 거고, 나 역시도 너에게 부를 순 없어.’”

기실 ‘네 엉덩이는 내 거야’는 성적인 뉘앙스가 아닌 ‘너는 나한테 안된다’는 속뜻을 갖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니까, 서로를 리스펙트하면서도 끝내 지켜야 할 자존심이 두 천재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존중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