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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은 부리가 도톰하고 발이 큰 새들이 열대우림이나 오로라가 펼쳐진 하늘 아래 모여 있는 평화로운 풍경으로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도도새는 아프리카 모리셔스섬에 서식하다 1681년 멸종됐다.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한 데다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도달했을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도도(바보)'로 불리다 잡아먹혔다. 김선우 작가는 "현대인이 낙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안주하는 동안 스스로 자유라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는 모습이 도도새와 닮았다"고 말했다.
날지 못하는 도도새는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한다.
2014년부터 새를 매개로 세상의 본질을 탐구해왔던 작가는 2015년 을지재단 일현미술관 지원으로 실제 인도양 모리셔스섬을 방문한 뒤 도도새 연작을 내놓게 됐다. 27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낙원(Paradise)'을 주제로 그린 회화 21점을 선보였다. 3000명 가까이 이 전시에 방문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대형 작품에 한국화 등을 적극 접목했다. 2022년 작품 'Paradise'(227.3×181.8㎝)는 조선시대 왕실 어좌 뒤편 병풍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에서 영감을 얻어 낮과 밤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다. 2021년 작품 'La Festa(축제)'(181.8×227.3㎝)는 코로나19로 불가능해진 떠들썩한 축제를 담았다. 도도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음식과 소주를 나눠먹거나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유쾌하다. 일본 우키요에(목판화)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파도'를 오마주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김 작가는 "모리셔스에서 300장 넘는 드로잉을 해왔는데 마르지 않는 샘처럼 아이디어가 솟아나와 계속 그리게 된다"며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강점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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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변화의 단초로 읽는 편에서는 도도새의 쉽고 명료한 시각 언어에 주목한다. 미술사적 가치를 중시하던 기존 수집가층과 달리 한정판 럭셔리 브랜드에 열광하며 되팔기 시장을 키운 젊은 층이 매력을 느끼는 요소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집 안 꾸미기와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과도 연결된다. 어릴 때부터 책과 그림을 좋아하고 온라인게임, 여행을 즐긴 김선우 작가는 동년배들이 공감하는 세계관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이진명 평론가(전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는 "서구에서도 주류 미술계 출신이 아닌 뱅크시가 등장해 작품 값이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며 "김선우는 도도새를 통해 문명화의 허구를 드러내고 꾸준히 노력해 발전을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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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소통의 달인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일찍 시작하고 익숙한 세대답게 책에서 인상 깊은 글귀나 전시 정보, 과거 기억 등을 직접 공유한다. 댓글을 달고 응원해주는 이들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는 "내 작품이 별로인 것 같아 의심을 많이 하는데 응원을 받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하는 루틴(일상)도 철저히 지켜 동료들이 '예술 공무원'이라고 부를 정도다.
김선우 작가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공모전 헌터'가 될 정도로 20대를 치열하게 보냈다고 한다. 작품을 캐리어에 들고 참여한 로마와 런던 아트페어에서 이방인들에게 도도새를 설명하며 직접 팔아본 경험도 작업을 이어가는 데 확신을 줬다고 했다. 2019년 프린트베이커리 전속작가가 되며 안정적 작업 기반이 마련됐다.
"공무원이던 부모님이 화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바로 독립해야 했어요. 작가로서 생존이 시급하다 보니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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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존 미술계 시선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2007년 미술시장 호황 때 경매시장에서 너무 떴다가 이제 그 존재마저 미미해진 젊은 작가들의 '데자뷔(기시감)' 때문이다. 경매시장에서 도도새는 추가 상승이 부담되는 수준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고 화업 50년도 넘는 중견 작가들에 비견할 만한 가격 수준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데이미언 허스트로 대표되는 yBa그룹처럼 20대 때 두각을 나타내 세계적 전성기를 오래 누린 사례도 있다"면서도 "작가가 더 성장해 국공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야 가격 거품이 아님이 입증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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