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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누구든 욕할 테면 하라… 나는 탈법과 범죄 막는 길로 간다”

황태자의 사색 2022. 2. 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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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누구든 욕할 테면 하라… 나는 탈법과 범죄 막는 길로 간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대선판에 뛰어든 이유

입력 2022.02.26 03:00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자신을 매우 ‘직선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대로 그의 말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저는 지위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아리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에요. 양심에 따라서!”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대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비(非)정치권 인사를 꼽으라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아닐까. 이 교수는 작년 11월 29일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윤석열호(號)에 합류했다. 이 교수 영입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이대남(20대 남성)’의 반대가 거셌지만, 윤 후보가 밀어붙였다. 이 교수는 1월 5일 선대위가 해산된 뒤에도 여성본부 고문직으로 일했다. 그러다 같은 달 18일 ‘김건희 녹취록’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이 나오자, 대신 사과하며 고문직에서 사임했다.

이 교수는 TV 시사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범죄심리학계 권위자다. 그가 대선 판에 등장한 뒤 비난 댓글이 빗발쳤다. ‘페미니스트여서’ ‘윤석열을 지지해서’ 혹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아서’ 싫다는 내용이 다수였다. 이 같은 비난을 감수하고 그가 대선 판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추위가 여전한 2월 경기대 서울캠퍼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의 말투는 시종일관 직선적이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의 원천은 20년 넘게 해온 일과 삶에서 기인한 듯 보였다. 왜 대선에 관여하게 됐는지, 자신을 향한 비난이 두렵지 않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는 약자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어디든 가는 사람이에요. 누가 욕을 하든 말든 관심이 없어요. 제겐 ‘피해자 보호’와 ‘범죄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좌로 가는지, 우로 가는지는 제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페미라니 생큐, 사실 나는 K며느리”

-직접 겪어본 선거판, 어땠나.

“정말 널을 뛰었다(웃음). 처음엔 여기는 왜 이렇게 산만한가 했다. 예상 못 한 일들도 많이 일어났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면, 영입 반대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크게 놀랍진 않았다. 전통적 질서에 기반한 정당에서 무조건 환영받을 수는 없겠단 생각은 했다.”

-아직도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사 댓글을 보나.

“본다. 같은 기사라도 네이버에선 이쪽이, 다음에선 저쪽이 나를 욕하더라(웃음).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애당초 내가 악플러들을 두려워했다면 20년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겠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덜 무섭다.”

-30대 아들이 있어서 젊은 남성들 마음을 잘 안다는 취지로 발언했던데.

“2030 남자들이 어떤 박탈감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 40년 동안 성 주류화 정책이 시행됐다. 여성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명함을 내밀게 해보자는 건데, 여대 설립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 주류화 정책이 시대착오적이고 역차별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대입 때) 같은 성적인데 여자는 ‘인서울’ 하고 남자는 못 하면, 당연히 차별이라고 느끼지 않겠나. 내 아들은 로스쿨 나와 군대를 3년 다녀왔다. 공조직(검찰)에 가고 싶어 했는데, (여자) 동기가 자신의 3년 선배가 되는 부분에 동의가 잘 안 됐던 것 같다. 젊은 남성들의 박탈감이 이런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건 안전한 사회지, 여성들만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페미 대모’라며 십자포화를 받았다.

“페미라 불러주면 나는 영광이고 생큐다. 그런데 내가 1년에 제사를 다섯 번 지낸다. 페미니스트적 삶을 살았다고 보긴 어렵다. 내가 말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닌 기본 인권의 문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한 입장은.

“결국은 여가부의 업보라고 본다.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정부 기관이 존재해야 하나. 박원순 성추행 사건 때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른 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그리고 나밖에 없었다. (여가부) 장관조차도 피해자라 부르지 않았고, 여당 국회의원은 ‘피해호소인’이란 조어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그러나 여가부는 폐지돼도 여성 정책은 살려야 한다. 통합가정법원 확대·개편, 법무부 직속 범죄피해보호국 등의 대안 공약을 제시했다. 민주당의 여성 공약들은 문재인 정부의 재탕이고, 실효성이 없는 빈 껍데기 정책들이다. 통합가정법원이 시행되면 성범죄·가정 폭력의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확실하게 될 거라 본다. 살인 사건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도 안 받고 빠져나가는 일을 더는 볼 수 없다.”

-선대본부 고문직은 왜 내려놨나.

“양심에 따른 선택이었다. (김건희씨 녹취록으로 인해) 2차 가해를 당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하는데, 이 당에서는 아무도 사과하지 않으니까. 이후 후보도 사과했다.”

-국민의힘 합류, 후회는 없나.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 전략을 구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잡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겨야 정의와 정직 등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다. 불법이 통용되는 세상은 막아야 한다.”

 

◇與 초법적 독선이 날 대선 판으로 이끌었다

-이번 대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는 뭔가.

“민주당 후보 때문이었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안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남을 헐뜯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초법적 사고를 하고 말을 바꾸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과가 네 번이나 있는 사람이 국민의 리더가 되겠다고? 나는 그 점을 용인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보여준 초법적 독선에도 진절머리가 났다.”

-윤석열 후보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세간에 윤 후보가 남편(이은재 변호사)과 친구라서 내가 돕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둘이 대학 동기는 맞지만 절친한 사이는 아니다. 법무부 감찰위원을 하면서 윤석열이란 사람을 알게 됐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감찰 과정과 조치가 적법했는지를 검토하면서 소위 ‘X 파일’이란 게 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쥴리설’이라니, 정말 황당했다. 검찰총장의 아내조차 접대부로 날조하는 세력이 정의로울 수가 있을까. 게다가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사회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가장 저질적 공격이다. 윤 후보가 온갖 수모를 당해도 의연하게 견딘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수정(왼쪽) 경기대 교수가 지난달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정천수 열린공감TV 대표를 '윤석열 후보 배우자의 개인사와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오른쪽은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 /뉴시스

-윤 후보 쪽에 가기 전엔 민주당과도 일했었다.

“의원들 중 아는 사람도 많고, 여성폭력기본방지법을 만들 때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데 피해호소인, 쥴리설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니까… 뭐랄까, 사기당한 느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정치권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당은 여성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국민의힘은 몰이해적인 것 같다.”

-개선의 여지가 있을까.

“민주당은 여성 이슈가 뭔지 잘 알면서도 피해호소인 같은 말을 한다. 기망적이고 비겁한 논리다. 국민의힘은 무지하다. 발전 가능성은? 글쎄.”

-윤 후보의 젠더 감수성은 어떤 것 같나.

“올드한 면이 있다. 약자 보호적인 입장에서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태도가 아주 강렬하다.”

-차기 정부에서 어떤 정책이 실현돼야 하나.

“대통령의 철학으로 정책을 우선순위에 놓지 않으면 실제 구현이 어렵다. 이준석 대표가 ‘젠더 이슈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20년 동안 성범죄 관련 통계를 정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10대, 초등학생 성폭력 피해자가 폭증한 것이다. 이건 절대 증가해선 안 되는 수치다. 초등학생이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면 그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동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

-어떤 사회를 꿈꾸나.

“아이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는 사회.”

◇여의도 정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민주당의 모 인사는 ‘국회의원 한번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조롱하던데.

“그 사람한텐 의원직이 엄청 좋은 자리겠지(웃음). 그런데 내가 옆에서 보니까 정당 활동이라는 게 할 일이 못 되는 것 같다. 어디에 소속돼서 해야 할 말을 참는 성격이 못 된다. 여의도 생각, 전혀 없다.”

-어떤 아내, 어떤 엄마인가.

“남편과는 ‘나는 나 너는 너’, 독립적으로 산다. 아이들에겐 엄한 엄마였던 것 같다. 특히 딸이 원망을 많이 한다. 오빠(아들)는 나가서 자고 와도 뭐라고 안 하면서, 딸은 맨날 잡으러 가니까. 직업병이었던 것 같다.”

이수정 교수의 '그것이 알고 싶다' 출연 장면. /SBS

-범죄자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건,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다.

“제자 중에 프로파일러 하다가 절에 들어간 친구가 있다. 인간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난 그이를 너무 잘 이해할 것 같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이것도 직업병이다. 가족이 없었다면, 이 업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뭔가.

“사회화된 사람, 교육받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지 않는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회규범을 지키면서 살지. 범죄자들은 욕망에 취약한, 욕망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가해자한텐 딱히 할 말이 없다. 피해자에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으니 회복에 노력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이들에겐 ‘범죄 피해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니, 피해자를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말투가 상당히 직선적이다.

“어머니가 나를 잘못 키웠다(웃음). 타협을 잘 못 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 ‘정직하라’는 게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내 나름대로 정직한 선택을 하며 살았고, 윤 후보 편에 선 것도 그 선택의 연장선상이다.”

-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좋은 정책을 펴지 못한다면.

“그때는 배를 갈라야지, 하하! 걱정 말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여성을 무시하는 정책, 범죄 피해자를 외면하는 정책을 할 순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