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행한 대통령』 저자 라종일 교수가 차기 대통령에 주는 고언
앞으로 닷새 후면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이 누구인지 판가름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여덟 번째 대통령이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에 내려진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고 말로가 불행한 대통령도 여러 명이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지도자를 배출할 때가 되었다는 국민의 소박한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성공한 대통령에 다가설 수 있을까. 여야를 떠나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지혜를 구하기 위해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원로 정치학자로서의 이론적 지식과 함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안보보좌관, 국가정보원 차장, 주일·주영 대사를 지내면서 익힌 실무 지식을 겸비한 그는 역대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이란 저서를 내기도 했다.
국제질서 전환기마다 한국은 희생
지도자 성패, 위기인식 능력에 달려
“최선의 외교 정책은 국민적 합의”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통합과 협치, 초당외교”라고 역설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오는 10일 대통령 당선인이 찾아와서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하겠는가.
“훌륭한 지도자는 위기를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실제로 어느 역대 당선자가 나한테 묻길래 그런 대답을 해 준 적이 있다. 지도자가 위기를 깨닫고 자신이 정의한 위기를 국민에게 설득하여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국민은 단합하고 더 열심히 일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위기다. 자화자찬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대외환경은 주변이 다 강대국이란 점이다. 강대국 사이에 세력균형이 깨지는 전환기 때마다 희생을 당한 건 우리였다. 일본이 통일되어 명까지 넘보려 한 상황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명·청 교체기의 병자호란이 그런 예다. 19세기 말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큰 세력이 되고 청이 쇠퇴할 때 우리는 결국 식민지가 됐다. 1945년 일본이 무너지고 미국과 소련이 이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할 때 우리는 분단됐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했을 때 소련의 견제가 작용해 최악의 아픔인 전쟁을 겪었다. 냉전이 끝나고 잠시 평온했지만 지금 다시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에다 러시아가 전쟁까지 일으키고 있지 않나. 여야 후보의 인식이 안이해보여 걱정이다.”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도 통합, 둘째도 통합, 셋째도 통합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분열을 심각하게 본다는 뜻인가.
“그렇다. 원래 갈등이란 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순기능도 있다. 오히려 갈등이 없는 사회가 정체할 수도 있다. 갈등을 승화시켜 순기능을 하도록 함으로써 나라 발전을 이끌어내는 게 정치이고 정부의 역할인데, 지금 한국 정치는 나라를 거의 분단상태로 몰아갔다.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이 실종되고 서로 편을 갈라 싸우기만 한다. 내로남불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넘어 묘서동처(猫鼠同處)란 말까지 나온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나쁜 사람들이란 뜻 아닌가. 민주화 이래 사회갈등이 이렇게 격화하고 역기능으로만 작용한 경우는 없었다. 누가 이번 선거에서 이기든 반드시 협치를 해야 한다.”
그럼 통합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사례를 들어볼까. 2차 대전때 영국 총리 처칠은 보수당 소속이지만 그의 정부는 보수당 정부도 아니고, 노동당 정부도 아닌, 내셔널 가번먼트였다. 번역하자면 거국내각쯤 될까. 같은 당 소속이면서 자신을 반대하고 핍박했던 아스키스나 체임벌린 등 반대파는 물론이고 노동당 당수 애틀리와 노동당원들까지 내각에 등용했다. 처칠이 훌륭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큰 정치는 갈등을 수용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고 작은 정치는 자기 집단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다. 이게 말을 하긴 쉬운데 실제로 행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지금 여야가 통합정부를 얘기하고 있는데 지켜질까. 여당은 의원총회까지 열어 개헌을 포함해 정치개혁을 한다고 했는데.
“선거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옳다면 왜 진작하지 않았나. 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능력이다. 선거법 고쳐놓고 위성정당 만들어 더 엉망으로 만든 사례가 보여주지 않나.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얼마나 달라질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니까.”
라 교수는 “협치는 국내적 사회통합만 말하는 게 아니다”며 “대외정세 전환이 우리에겐 위기라고 했는데 그럴수록 외교안보는 더욱 더 초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 과정과 원인을 분석해 최근 『하노이의 길』을 출간했는데 서문의 맨끝에 “가장 좋은 외교 정책은 국민적인 합의다”라고 썼다. 2차 대전 승전국의 점령 통치를 10년 만에 극복한 오스트리아 초대 대통령 레오폴드 피글의 말이다.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국내 정치권은 아전인수 해석으로 정쟁의 소재로 삼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냉전이 끝나고 세계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고 자유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자유교역으로 번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간 사람이 있다. 푸틴이나 북한의 김정은 같은 사람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강대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다른 능력은 없고 수단은 군사력뿐이다. 군사력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1차 대전이 그렇게 참혹했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반성도 했는데, 왜 2차 대전이 일어났던가. 세계는 늘 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남북 체제 경쟁은 끝났다고 했는데 김정은에게 물어보면 ‘누구 맘대로’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는 대북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할까.
“햇볕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햇볕정책은 이솝우화처럼 상대방 옷을 벗기는 게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살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가능한 한 교류협력은 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중요한 것이 있다. 대화도 좋고 평화도 중요하지만 이걸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만일 우크라이나의 전쟁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더라면 푸틴이 쉽게 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김대중 햇볕정책의 제1 원칙이 군사적 도발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 능력이 햇볕정책 시작할 때와는 비교 안 되게 높아졌는데 어떻게 대비하나.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남한과의 수교를 통보했다. 그랬더니 김일성이 화를 내며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바르드나제는 “우리는 핵을 수천개 가지고도 망했다”고 했다. 이 말에 답이 있다. 핵을 가지고도 망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줘야 한다. 아무리 핵으로 위협해도 우리가 그 위협에 당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핵무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핵 공격을 하면 우리도 피해를 입지만 당신들은 반드시 망한다고 해야 한다. 그게 상호확증파괴(MAD) 아닌가. 그 전제 위에서 핵협상이 가능하다. 정부 고위인사가 폭탄이 떨어져도 평화를 외친다고 했는데 그런 자세로는 안된다. 노벨평화상 발언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그런 지도자 밑에서 국민은 죽어난다.”
하노이 회담을 분석한 책을 낸 이유는.
“처음부터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타협하면 된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이는 큰 잘못이다. 그건 김정은의 핵은 남한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때문에 만들었다는 김정은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상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운전자를 자처했으면 어디까지 어떻게 몰고간다는 명확한 계획과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노이가 실패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제안을 한다. 남·북·미 3자회담을 하자면서 ‘미국 항공모함에서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존 볼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 만나자는 이야기만 했고 만나서 뭘 하자는 얘기가 없었다며 ‘실질 내용보다 만남의 형식에 집착했다’고 썼다. 이 부분을 보며 가슴이 참 아팠다. 정부는 이에 대해 말이 없다. 그래서 아직 전체 내막이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가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