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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도 머니게임…러·우크라에 ‘베팅’하는 투자자들

황태자의 사색 2022. 3. 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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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도 머니게임…러·우크라에 ‘베팅’하는 투자자들

중앙일보

입력 2022.03.10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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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수익의 기회로 삼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사람들이 ATM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전쟁은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는 참혹한 현장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일확천금의 기회다. 격화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을 수익의 기회로 삼는 ‘비정한 머니게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쟁 채권을 사들이고, 휴짓조각 수준인 두 나라 국채의 ‘저가 매수’에도 나선다. 러시아 원유 금수 조치로 인한 국제 유가 폭등에 베팅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투자자의 눈길을 끈 건 우크라이나가 발행한 ‘전쟁 채권’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전쟁에 따른 군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81억 흐리우냐(약 2억7700만 달러·약3422억원) 규모의 전쟁 채권을 발행했다. 채권 만기는 1년으로, 수익률은 11%다.

러시아 달러 채권 가격 추이.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우크라이나가 빚을 갚지 못할 위험도 크지만,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일부 개인 투자자는 (채무불이행) 위험을 감수하고 전쟁 채권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며 “온라인 투자 포럼이나 각종 금융회사 SNS에 우크라이나 전쟁 채권 매입 문의가 있다”고 전했다.

전쟁으로 폭락한 두 나라 국채도 배짱이 두둑한 투자자의 사냥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국적 투자운용사인 그래머시 펀드 매니지먼트는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회사 포트폴리오 점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달러 채권 매수 여부를 논의했다고 지난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달러 채권 가격 추이.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당시 우크라이나의 2027년 만기 달러 채권 가격은 달러당 45센트로, 두 달 전(달러당 94.25센트)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다. WSJ은 “미국의 그래머시 펀드 분석가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이후 어떤 형태로든 독립을 유지한다고 예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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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각종 경제 제재로 국가신용등급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러시아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은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국채 가격이 폭락하며 ‘저점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은 자유낙하 중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3일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Baa3’에서 ‘B3’로 6단계 하향 조정했고, 사흘 후인 지난 6일에 채무불이행(디폴트) 직전 단계인 ‘Ca’로 강등했다. 피치도 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B’에서 ‘C’로 6단계 강등했다. 피치는 “C등급은 국가 부도가 임박했다는 시각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이 수직 낙하하면서 2029년 만기 달러 국채 가격은 지난 3일 달러당 16.625센트까지 내려앉았다. 두 달 전(달러당 109.375센트)에 비해 84% 폭락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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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채의 ‘저점 매수’ 기회란 시각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익명의 헤지펀드 매니저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 국채의 가격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뒤에 투자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보다도 더 싸다”고 말했다.

경제 제재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일부 러시아 기업의 회사채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JP모건은 지난 4일(현지시간) 고객에게 보낸 애널리스트 메모에서 러시아 에너지 기업인 루크오일의 회사채에 관한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루크오일의 회사채 가격은 이날 기준 달러당 32센트까지 떨어졌지만, 향후 달러당 100센트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JP모건은 “(루크오일은) 국제 에너지 사업을 단독으로 운영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며 “지난해 35억 달러(약 4조3000억원)의 수익을 낸 데다 해외 채무 비중도 낮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에 나서는 등 에너지 제재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국제 유가 상승에도 각국 투자자의 ‘베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5월물)를 배럴당 200달러에 사들이겠다는 콜옵션 계약이 이날 1200건 이상 체결됐다. 해당 콜옵션은 오는 28일 만료된다.

콜옵션은 자산 가격이 향후 올라도 미리 정해둔 저렴한 가격에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다. 브렌트유의 가격이 이번 달 안으로 200달러를 넘어갈 것이란 전망에 돈을 거는 셈이다. 밥 라치노 패스트레이딩 파트너는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변동성이 커지면서 콜옵션 투자자가 명백히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