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는 것 못 막듯··· 보수 후보 최다 득표율은 호남 민심 바뀌는 신호”
[아무튼, 주말]
文정부 때린 광주카페사장
배훈천이 본 대선 후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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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2%.
이 네 개의 숫자가 흐름을 바꿨다. 윤석열 당선인이 광주광역시에서 받은 득표율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래 보수 대선 후보가 받은 최다 득표율이자, 이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두 자릿수다. 누군가는 12%대의 최다 득표율이야말로 ‘지역 정치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하지만, 광주 카페 사장 배훈천(54)씨는 이를 철옹성 같던 광주와 호남의 지역 장벽이 무너지는 신호라고 봤다.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11년째 ‘커피 루덴스’를 운영하는 그는, 지난해 6월 광주에서 열린 만민토론회에서 실명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정치 논객의 길로 들어섰다.
배씨는 “지금까지 광주·호남을 독점해온 기득권과 토호 세력을 심판하자는 게 광주에 불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라며 “한번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중간에 추위가 다시 오더라도 봄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광주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 광주·호남 지역에서 막판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복합 쇼핑몰 공약’에 앞서 지난해 6월 ‘대기업 복합쇼핑몰 유치 광주시민회의’를 조직하고 광주 시민 660명의 서명을 받아 광주시의회에서 ‘복합쇼핑몰 유치 광주 시민운동 660인 선언문’도 발표한 바 있다. 그에게서 광주와 호남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광주 지방선거에 윤희숙·이준석 나와야
–12.72%라는 광주의 득표율을 어떻게 보시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호남에서도 상당히 높았다. 그간 광주를 독점해 온 기득권·토호 세력에 대한 반발도 컸다. 그게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한번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중간에 추위가 다시 오더라도 그 기세는 예전만 못하다. 광주에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도 그렇다.”
–기득권·토호 세력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광주의 지배 권력은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른바 ‘광주 정신’으로 묶인 공고한 카르텔이다. 군사독재 시절 시민단체는 숨도 못 쉬고 탄압받았다. 그때는 다들 내가 못하는 일을 시민 운동가들이 대신 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보수를 기존의 가치를 지키려는 성향으로 정의한다면, 호남의 진보 세력이야말로 보수다. 이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 단체의 존립이나 지배력의 유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광주 정신을 들이밀며 ‘평등을 위해 덜 먹고 덜 발전하자’ ‘발전하면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고 평범한 시민을 가스라이팅 한다. 그 결과가 광주의 지금 현실이다. 제대로 된 복합쇼핑몰 하나 없다.”
–그럼에도 이준석 대표가 목표한 30% 득표율이나, 민주당이 영남·대구에서 받은 득표율보다는 여전히 적다.
“이 대표의 30%는 말 그대로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선거운동의 일환이라고 본다. 물론 나도 체감했던 민심에 비해 득표율이 적다는 생각은 들었다. 젊은 층에선 결국 광주는 바뀌지 않을 거라며 지역을 떠나겠다는 사람도 있더라. 첫술에 배부르겠나. 복합몰은 처음엔 이슈 몰이를 했지만, 대통령 공약이 고작 복합몰이냐는 민주당의 논리로 어느 정도 방어가 됐고, 다른 지역 분들의 지나친 조롱에 오히려 이 공약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생겼다. 또 막판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도 민주당 진영이 결집하는 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사전 투표 날 보니 단일화 때문에 왔다는 사람들이 많더라.”
–지역주의 한계를 깰 수 없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가 광주에서 받았던 지지율을 보라. 30.08%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61.14%에 그쳤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순천·곡성에서 당선됐고, 광주 서구을 후보로 나왔을 때도 비록 낙선했지만 39.7%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광주 사람들도 대안이 있으면 다른 후보를 찍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광주에선 보수당 후보가 대안이 안 될 때가 많았다.”
–무슨 의미인가.
“보수 후보가 있다고 해도 광주에는 와보지도 않고 선거운동 하는 사람도 없다. 광주를 위한 공약도 없다. 그렇다면 광주 사람들에게 보수 후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대안으로 선택할 후보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결국 민주당을 찍게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호남과 20~30대 여성에서 이런 표가 많았다고 본다. 윤석열 당선인의 전두환 찬양 발언 등이 없었다면, 득표율 20% 이상도 가능했을 것이다. 보수당이 호남에서 영남의 민주당 지지만큼 확보하려면, 대선 때 관심 가졌던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당장 이번 6월 지방선거부터 윤희숙·이준석 등 전국적으로 인지도 있고 신망받는 후보를 광주에 공천해 지역의 민심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광주도 기존 토호 세력과 유착 관계가 없는 외부 인사가 와서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힘이 공약으로 내걸기 전부터 복합쇼핑몰 추진 시민회의를 조직했다.
“광주가 청년과 미래 세대가 살아갈 공간이 돼야 하는데, 죽음과 추모의 공간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우리 큰아이가 29세인데, 요즘 생각해보면 그 애를 키울 때가 오히려 광주의 쇼핑 환경이나 놀이 문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우치 패밀리랜드나 동물원도 그럴싸했고, 롯데마트나 이마트가 새로 생기면서 가볼 곳도 많았다. 그런데 이 20년 전 생활 인프라가 여전히 그대로다. 20년간 그대로이니 매일 낡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젊은이들이 노출돼 있으니, 광주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환장할 일인가.”
–복합쇼핑몰은 생길 것이라고 보나.
“이번에 복합몰 공약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현 광주시장을 비롯해 출마 예정자들까지 나서서 복합몰 공약을 앞다퉈 이야기하지만, 나는 회의적이다. 광주에는 워낙 그런 역사가 많아서. 광주 지하철 2호선을 예로 들자면, 처음 짓기로 한 시점에서 20년 정도 표류하다 겨우 땅 파기 시작했다. 2015년에 신세계와 복합몰 추진할 때 양해각서(MOU)까지 다 맺었는데도, 결국 엎어졌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文 정부 때 정치가 삶 바꾸는 것 절감
배씨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3년 고등학교 때 처음 광주로 왔다. 전남대 철학과 86학번. 30년 이상 광주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이곳에서 자식 셋을 키웠다. 카페 이전에는 학원업 등에 종사했다.
–전남대 학생운동 조직, 그중에서도 선봉에 섰던 오월대 출신이었다고 들었다.
“1980년 5·18을 경험한 세대가 전남대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건 별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더 기이한 건 80년대면 30년이 훌쩍 지난 일인데, 아직도 당시에 뭘 했는지를 경력으로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5·18이 특정 정치 세력 운동권 출신에 의해 사유화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도구 정도로 이용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다보니 5·18이 대한민국의 5·18로 확산되지 못하고, 광주만의 5·18로 갇히게 됐다.”
–만민 토론회로 주목받았다. 광주에 살며 실명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광주 사람들은 다 문 대통령 칭송만 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광주 사람들도 밥 먹다 정부 욕하고, 그러다 언쟁도 하고 그런다. 카페에서 가끔 손님들 하시는 이야기 들어보면 특히 원전 폐쇄에 대해 비판하는 분들이 많다. 오히려 나는 먹고사는 문제가 바빠서 정치에 관심 못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정치가 스포츠 경기처럼 관람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삶과 가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30년간 자영업자로 살았는데 어느 날 최저임금이 갑자기 대폭 올랐다. 장사는 안되고, 사람은 쓸 수가 없다. 살림하던 아내까지 나와 쉬는 날도 없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자사고 폐지였다. 아이의 선택에 따라 자사고에 보냈다. 그런데 국민적인 합의나 법률에 의하지 않고 편법을 동원해 억지로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였다. 이에 반발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겐 귀족학교, 특권교육, 기득권층이란 공격을 퍼붓더라.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현 정부의 주도 세력이 80년대 운동권의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한 치의 발전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민으로서 할 이야기는 하면서 살자는 생각에 실명을 내걸고 나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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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그 파급력이 엄청났다.
“그렇게 야만적이고 비겁한 방식으로 한 인간을 공격할 줄은 나도 몰랐다. 특히 나는 내가 스스로 공론장으로 나선 만큼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은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위로와 지지도 받았다. 일면식도 없는 5·18 최초 수배자 최운용 5·18구속부상자회 고문이 카페로 찾아오셨더라. 처음엔 ‘당신이 배훈천이냐’고 하기에 또 비슷한 비난을 받겠거니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그런데 5·18에 앞장서서 수년간 탄압을 받았던 자신의 모습이 연상된다며, 당신이야말로 5·18의 의로운 저항 정신을 잘 계승한 사람이라고 격려해주시더라.”
–과거 5·18 특별법에 반대 서명을 한 점 때문에 ‘극우 정치 활동가’였다는 주장도 나오던데. 특별법은 5·18 민주화 운동을 비방·왜곡·날조할 경우 징역형 또는 벌금형으로 형사처벌 할 수 있게 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의 최저임금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철수 후보를 찍은 것 빼고는 선거 때마다 진보 정당에 표를 줬다. 지금이야 언론사에 글도 쓰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만 당시엔 그저 일반 시민일 뿐이었다. 일반 시민이 정부 비판 발언을 했다고 극우라고 낙인찍어 공격하는 건 파쇼적인 행위다. 특별법을 반대한 건, 5·18의 이름을 내걸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처벌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18을 겪으면서 침범할 수 없는 가치로 내세웠던 게 표현의 자유다.”
–광주에선 유독 ‘광주 정신'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당신이 생각하는 광주 정신이란 무엇인가.
“서울 정신, 대구 정신, 울산 정신이란 말은 없는데, 광주 정신이란 말은 있다. 아마 5·18 민주화 운동을 겪은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5·18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이었다. 존엄한 개인으로 인정받고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게 진정한 광주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광주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도 하다. 나와 같은 존엄한 개인들이 지배층의 권세에 억눌려 있기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것부터 이런 광주 정신은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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