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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꿀꿀대는 소리… AI는 무슨 뜻인지 안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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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꿀꿀대는 소리… AI는 무슨 뜻인지 안다

AI 번역기로 감정 92% 파악
돼지 411마리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일생 녹음한 파일 7414건 분석
아프리카코끼리 소리 학습한 AI
”밀렵꾼 왔다” 경고하는 소리 구별
멸종위기종 구하는 데에도 도움

입력 2022.03.23 09:00
 
 
 
 
 
동물 언어 해독하는 AI 번역기들

어릴 때부터 돼지는 늘 꿀꿀댄다고 들었다. 사실과 다르다. 배가 부르면 낮게 꿀꿀거리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높은 소리로 꽥꽥 운다. 덴마크 과학자들이 돼지가 평생 내는 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소리만 듣고 감정 상태를 알아냈다.

어떤 언어라도 해독하는 구글 번역기처럼 동물 소리에 담긴 뜻을 파악하는 AI 번역기가 개발되고 있다. 돼지, 닭 같은 가축은 물론, 고래와 코끼리, 원숭이 등 야생동물까지 다양한 동물의 소리를 녹음해 AI로 해독하고 있다. 과연 영화 ‘닥터 두리틀’처럼 사람이 동물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가축의 감정 파악, 사육 조건 개선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엘로디 브리퍼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인공지능으로 돼지의 소리를 분석해 감정 상태를 92% 정확도로 읽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덴마크, 프랑스와 스위스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돼지 411마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녹음한 파일 7414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어린 돼지가 형제를 만나거나 어미 젖을 빨 때처럼 긍정적인 감정일 때는 낮은 소리로 짧게 꿀꿀댄다. 반면 낙인을 찍거나 거세를 당하는 공포 상황에서는 꽥 하고 높은 소리를 냈다.

AI 동물 번역기는 가축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브리퍼 교수는 “누군가 이번 알고리즘으로 농가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앱(app·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축의 복지를 개선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조지아 공대는 2015년부터 인공지능으로 닭 울음을 번역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진은 사육장의 온도나 조명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이를 통해 닭이 내는 소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멸종 위기 동물 보호에도 도움

동물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연구는 역사가 오래됐다. 과학자들은 야생동물을 오랫동안 관찰하거나 사육하면서 의사소통 과정을 연구했다.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고릴라 코코는 스탠퍼드대 연구진에게 수화(手話)를 배워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동물의 언어 해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연구자가 일일이 분석하지 않아도 녹음 파일만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키면 스스로 어떤 의미인지 파악해냈다. 미국 노던 애리조나대의 콘 슬로보치코프 교수는 이 방법으로 초원에 사는 설치동물인 프레리도그가 동료에게 연구자가 입은 옷 색깔이 달라졌다고 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I 동물 번역기는 야생동물 보호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201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멸종위기종인 명주원숭이가 내는 소리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개체를 구별해냈다. 실리콘 밸리의 동물 보호 단체인 ‘컨서베이션 메트릭’은 아프리카코끼리의 녹음 파일 90만시간분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밀렵꾼이 왔다고 경고하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호주 과학자들은 멸종위기 꿀빨이새의 짝짓기 노래를 해독해 개체수를 늘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고양이 소리에 담긴 의미를 해독하는 '야옹 톡(MeowTalk)' 앱. 아마존의 인공지능인 알렉사를 개발한 엔지니어들이 만들었다./MeowTalk

◇바닷속, 집에도 AI 번역기 도입

바다도 예외가 아니다. 플로리다 애틀랜틱대의 데니스 헤르징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돌고래 소리를 인공지능으로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의 마이클 브론스타인 교수는 2019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향유고래 소리 녹음 파일 2만6000여 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특정 소리 다음에 어떤 고래가 답을 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정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인 알렉사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이 지난 2000년 고양이 소리를 번역하는 앱인 ‘야옹 톡(Meow Talk)’을 발표했다. 이 앱은 개별 고양이 소리를 학습시켜 맞춤형 번역을 구현했다. 설치류 소리를 해독했던 슬로보치코프 교수는 2018년 줄링구아(Zoolingua)라는 회사를 차려 반려견 AI 번역기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개 짖는 소리뿐 아니라 얼굴 표정, 몸동작도 학습시켜 번역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