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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때리고 약 발라주던 엄마…폭력도 사랑인 줄 알았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2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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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때리고 약 발라주던 엄마…폭력도 사랑인 줄 알았다”

입력 2022-03-28 15:42업데이트 2022-03-28 15:57
 
직장인 김가을 씨(25)는 친아버지에게 맞는 게 일상이었다. 때를 가리지 않고 날아오는 주먹이 두려워 옷 안에 휴지 뭉치를 넣기도 했다. 맞은 곳을 또 맞지 않으려 자세를 바꾸면 거슬린다며 더 때린 탓에 부동자세로 견디는 것이 지옥에서 1초라도 빨리 벗어날 유일한 방법임을 터득했다. 사회복지사 전안나 씨(40)는 어렸을 때부터 양어머니로부터 ‘너는 언제 죽냐’는 말을 매일 들었다.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았고, 몸을 마구 밟기도 했다. ‘태어난 것 자체가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고백한 에세이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천년의 상상), ‘태어나서 죄송합니다’(가디언)가 각각 21일, 23일 출간됐다. 두 저자는 부모에게 매 맞고 욕설을 들으며 자란 기억부터, 어떻게 가정폭력을 인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과정을 서술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인이 된 후에도 한 동안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 씨는 결혼을 하게 된 27살에, 김 씨는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한 뒤 쉼터에 가게 된 23살에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가정폭력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에 있었다. 부모는 가해자인 동시에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보호자이기 때문. 전 씨는 “어머니는 온갖 이유로 저를 때리고, 다음날 약을 발라주는 행동이 무한 반복됐다. 이 때문에 폭행도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폭력은 자녀를 위한 체벌이라는 오류에 빠지기도 쉬웠다.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김 씨는 “학창시절 아버지는 늘 ‘공부 잘하라고 때리는 거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폭행이 이어지자 이 사람은 뭐라도 때릴 이유를 찾아서 때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 경찰에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의 상처는 여전히 이들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전 씨는 독립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잠든 전 씨를 깨워 때리기도 했던 양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방문을 잠그고 잔다. 김 씨는 남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동생을 때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일 보니 저도 남동생을 똑같이 때리고 있더라. 누군가를 때린다는 게 문제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두 책은 피해자를 위로함과 동시에, 가정폭력을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에 일침을 날린다. 김 씨는 “가정폭력을 신고해봤자 다시 부모 밑에 들어가 살아야 했기에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철저한 분리, 쉼터 등 인프라의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전 씨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체벌을 가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아이를 향한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되지 않는다는 걸 모든 부모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