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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윳값 20만원 빌린 주부…원금만 400만원으로 불었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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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윳값 20만원 빌린 주부…원금만 400만원으로 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29 00:02

서민 파고드는 불법사채 

불법사채의 덫

코로나19의 여파로 깊어진 양극화의 그늘 속에서, 연이율 5000% 넘게 이자를 받는 불법 사채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탐사팀이 그 실상을 살펴봤다.

“돈 안 갚으면 당신 애들을 섬에 팔아버릴 수도 있다.”

 

아이 5명을 키우는 주부 유 모(37)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독촉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유 씨 남편은 전통 시장 수산업체에서 일한다. 300만 원대 월급은 코로나19 타격으로 30만원 넘게 줄었다.

 

정부 양육수당 55만원이 나왔지만,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빠듯했다고 한다.

 

유 씨는 “건강검진비, 분윳값, 쌀값이 필요했다”고 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남편 몰래 온라인 대출 중개 사이트를 통해 미등록 대부 업체를 통해 2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1주일 안에 40만원을 갚아야 했다. 연이율 5214%.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냈고 6곳에서 총 400만원(원금 기준)의

빚을 졌다.

 

전남에서 건설업을 하는 김 모(39) 씨는 하청 일을 한다.

 

코로나19로 지역 건설업계 불황이 이어지며 제때 받지 못한 공사 대금이 늘었다.

 

김 씨 역시 대출 사이트를 통해 총 3곳에서 700만원을 빌렸다.

 

지인들은 파산 신청을 권유했지만, 그는 사채를 쓰며 버텼다. 파산할 경우 더는 사업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빚은 끝없이 불어났다. 총 8000만원을 빌렸고 1억원 넘게 갚은 상태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수 천만원의 돈을 더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생이 명품 사려고 빌리기도

2019 불법사금융 실태 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불법 사채를 빌려 쓴 채무자들은 사업 실패,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사기 피해 등으로 신용도가 낮아 기존 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금감원이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실에 제출한 ‘2019 불법 사금융실태 조사’(2020년 11월~2021년 1월,

전국 만20세 이상 성인 1만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등록 대부나 미등록 사채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12.6%다.

 

이중 미등록 사채만 이용해본 경험자는 5.4%로 모수로 추정할 경우 219만명에 이른다.  불법 사채업자들도 필사적이다.

 

5억원 규모 사채업을 하는 A(34)씨는 “돈 빌려 신나게 쓰고 ‘불법이라 못 갚겠다’는 경우도 많아 힘들다”면서

“무슨 수단을 쓰든 (빌려준 돈은) 받아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A씨에 따르면 사채 영업 방식은 크게 온라인 대출 플랫폼을 통한 인터넷 영업, 지역 내 명함 뿌리기, 지인 영업 등

세 가지다.

 

보통 소상공인들은 큰 액수를 원하지만, 유흥업 종사자·대학생·직장인 등은 소액 대출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A씨는 “꼭 필요한 급전도 있겠지만, 회사 월급·상여금 들어 오기 전 유흥을 위해 대출받는 이들,

명품을 사고 싶은 대학생과 유흥업 종사자, 사설 도박에 빠져 돈을 빌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사채업자들의 말말말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되며 금융권과 정식 대부업체의 대출은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신용불량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물론이고, 번듯한 직장이 있더라도 기존 채무가 많아 이런 곳에서 추가 대출을

거절당하는 이들은 불법 대부업체를 찾는다.

 

미등록 사채업체는 기록이 남지 않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이나 지원기관의 구제를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기동(41)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지난해 4월, 평소 잘 아는 소년원 관계자로부터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소년원 출신 20대 여성 A씨를 좀 도와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았다.

 

그가 만난 취업준비생 A씨는 생활비가 부족해 사채업자에게 20만원을 빌렸다.

 

1주일 뒤 40만원을 갚는 조건(연이율 5214%)이었다. 매주 30만원씩 갚았지만, 빚은 두 달 만에 3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 소장은 앉은 자리에서 사채업자 8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1시간여 갖은 욕설과 고성이 오간 끝에 악성 채무가 정리됐다.

 

“채무자 돕는 시스템 갖춰져야”

 

이 소장은 A씨의 사연을 지난해 5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총책 이기동’에 올렸다.

 

당시 영상이 주목받으며 불법 사채 피해 제보가 쇄도했다.

 

이후 불법 사채 이용자들의 사연을 듣고 실시간으로 악성 부채를 정리하는 생생한 과정을 보여주는 유튜브 방송을

매주 진행해 왔다.

 

그동안 이 소장이 해결한 악성 채무자만 150명이 넘고, 그 과정에서 접촉한 불법 사채업자들은 800여명이나 된다.

 

그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젊은 시절 경험이 한몫했다. 그는 청춘을 ‘어둠의 세계’에서 보냈다.

 

20대 시절 8년간 보이스피싱 조직의 대포통장 모집 총책으로 활동했다. 범죄의 대가로 2년 6개월간 감옥생활도 했다.

 

그에게 제보를 해오는 피해자들은 수사 기관, 지원 기관에서 구제를 받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해당 기관들이 채무는 민사 문제라는 이유로 해결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가 채무자를 실질적으로 돕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 QR

불법 사채의 세계를 생생하게 취재한 기획시리즈는 중앙일보 홈페이지(https://www.joongang.co.kr/series/11545)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국·이영근 기자 yu.sungk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