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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는 여성이 본다, 양지로 나온 BL

황태자의 사색 2022. 4. 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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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는 여성이 본다, 양지로 나온 BL

[issue+] BL은 왜 인기인가
몰래 감상하던 시대 끝나고 네이버 등서 웹드라마 잇단 공개
리디북스선 신작만 한 달 300종
“여성의 욕망 남성 캐릭터에 투영, 자유자재로 기적의 사랑 즐겨”
10년 새 10배 성장… 수출도 완판, 일본에서는 지상파에서도 인기

입력 2022.03.31 17:39
 
 
 
 
 
지난 2월 16일 공개된 직후부터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질주 중인 BL 드라마 ‘시맨틱 에러’. 공대생 ‘아싸’ 추상우(박재찬·오른쪽)와 그의 일상에 에러처럼 나타난 안하무인 미대생 ‘인싸’ 장재영(박서함·왼쪽)이 주인공인 캠퍼스 로맨스다. /왓챠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NEW가 새로운 장르에 뛰어들었다. 이름은 BL(Boy’s Love). 놀라지 마시라. 남자와 남자의 애정 행각을 그리는 장르다. NEW가 만든 첫 BL 웹드라마 ‘블루밍’이 31일 네이버 시리즈온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명필름도 NEW와 함께 BL 드라마 ‘따라바람’을 공동 제작 중이다.

최근 BL 시장의 빅뱅을 이끈 히트 상품은 ‘시맨틱 에러’.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지난 2월 16일부터 5주 연속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공대생 ‘아싸’ 추상우(박재찬)와 그의 일상에 에러처럼 나타난 안하무인 미대생 ‘인싸’ 장재영(박서함)의 캠퍼스 로맨스. ‘시맨틱 에러’는 2018년 리디북스 BL 부문 대상을 차지한 19금(禁) 웹소설이 원작인데 드라마는 12세 관람 가로 수위를 낮췄다. BL 장르가 낯선 사람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흥행 배경으로 꼽힌다.

NEW가 제작한 BL 웹드라마 '블루밍' /NEW

◇10년 사이 10배 성장

BL은 1960년대 일본에서 ‘미소년 만화’로 태어났다. 여성의 다양한 욕망이 투영된 남성 캐릭터들이 기적적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소설,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으로 뻗어나갔다. 일본 BL 평론가 미조구치 아키코는 ‘BL 진화론’이라는 책에서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서 해방돼 남성 캐릭터에 가상으로 자신을 기탁함으로써 자유자재로 사랑을 즐기는 장르”라고 BL을 정의했다.

국내에서는 2016년 리디북스를 시작으로 알라딘, 네이버 등이 BL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 카카오페이지는 2021년 7월에 BL 파트를 따로 만들 정도다. 시장성을 보고 웹소설·웹툰을 상업 연재하며 독자층을 확대한 것이다. 리디북스에서는 BL 신작이 한 달에 300종 쏟아진다. 일본 BL을 수입해온 AK커뮤니케이션즈 이동섭 대표는 “BL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을 파고든다”며 “종이책으로만 존재하던 시절엔 독자가 ‘몰래 감상하는 장르’였으나 디지털 콘텐츠로 바뀌자 최근 10년 사이 10배 이상 시장이 커졌다”고 말했다.

2017년 리디북스에서 연재된 BL 웹소설 '시맨틱 에러'. /리디북스

◇음지에서 양지로

BL은 싫어할 수는 있지만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규모가 됐다. 웹소설로 출발해 웹툰·애니메이션을 거쳐 드라마로 제작된 ‘시맨틱 에러’는 리디북스 BL 콘텐츠의 첫 영상화 사례다. 리디북스 김정은 매니저는 “드라마 공개 후 1주일 동안 원작 웹소설은 576%, 동명 웹툰은 312% 매출이 상승했다”며 “드라마 포토 에세이도 2주 만에 3만부 이상 팔렸다”고 전했다. 웹소설·웹툰으로 시장성이 검증된 ‘신입사원’은 올 하반기에 영화로 나올 예정이다.

 

BL은 더 이상 소수가 즐기는 음지문화가 아니다. 브로맨스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왓챠에서는 일본 드라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와 게임이 원작인 국산 학원물 ‘새빛남고 학생회’도 인기를 모았다. 교보문고 통계에 따르면 BL을 ‘내돈내산’한 고객은 96%가 여성. 20대부터 40대까지 고루 분포돼 있다. 극작가 이수진씨는 “BL은 여성 독자(시청자)가 감정이입할 필요 없이 안전하게 볼 수 있는 판타지”라며 “동성애자들은 이 장르를 혐오한다”고 했다. ‘블루밍’은 두 남자의 키스 장면이 나오지만 서정적이라 12세 관람 가 등급을 받았다.

일본 BL 드라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 /미디어캐슬

◇K-BL 잠재력도 있다

일본에서는 지상파 TV아사히에서도 나온다. 국내에서 BL은 과거 10대 아이돌그룹 팬들이 멤버를 짝지어 만들던 팬픽(팬 창작물) 문화와 얽혀 있다. ‘덕통사고’라는 말을 아시는지. 덕질을 하다 크게 빠져드는 것을 일컫는데 BL이 딱 그런 장르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수려한 외모, K콘텐츠의 인기에 더불어 ‘K-BL’ 잠재력도 있다는 평이다. 충성도 높은 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관여한다. 포토에세이, OST, 굿즈 등 2차 부가 시장도 전망이 밝다.

‘블루밍’을 포함해 NEW가 올해 순차적으로 공개할 BL 드라마 5편은 해외 세일즈에서 모두 완판됐다. 제작비 2억~3억원으로 단기간에 찍을 수 있다는 것도 BL 드라마의 장점.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 대표는 “코로나 이후 OTT가 급성장하며 대중은 ‘골라 보는 재미’를 알게 됐고 히트 상품에 더 쉽게 접근한다”며 “’오징어게임’이 K드라마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면 ‘시맨틱 에러’는 수면 아래 있던 BL을 대중적인 위치로 끌어올린 셈”이라고 했다. 영화계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앞다퉈 이 장르에 뛰어드는 이유다.

☞BL이란

보이즈 러브(Boy’s Love). 남성과 남성의 사랑 이야기지만, 창작자와 소비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과거엔 숨어서 보는 음지 문화로 불렸지만 최근 히트 콘텐츠로 급부상. 소설, 웹툰, 드라마를 넘나들며 사랑받고 있다.

나는 BL을 꿈꾼다 /트위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