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체구서 핵폭탄급 성량, ‘전쟁용 탱크’ 별명 얻었죠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오페라 ‘아틸라’ 주연 임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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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창립 60돌 기념작 ‘아틸라’에서 오다벨라를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 전민규 기자
159㎝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성량이 핵폭탄급이다. 소프라노 임세경(47)이 2015년 이탈리아 고대 원형경기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주역을 따낸 첫 한국인에 등극한 이유다. 아레나의 간판 레퍼토리 ‘아이다’는 이집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베르디의 대작인 만큼 소프라노에게 요구되는 파워가 다르다. 그 후 임세경은 명실공히 ‘0순위 아이다’로 직행했다. 2019년 본고장 이집트 정부 주최로 룩소르 하트셉수트 신전 무대까지 올랐다.
고음과 기교에 강한 한국 소프라노계에 보기 드문 파워풀한 리릭 스핀토로 꼽히는 그의 진가를 만날 수 있는 오페라를 오랜만에 국내에서 만난다. 국립오페라단 창립 60주년 기념작으로 첫선을 보이는 베르디의 ‘아틸라’(4월 7~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다. 5세기 중반 훈족의 침략에 대항했던 이탈리아 역사를 다루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전설적인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로 유명한 거장 잔 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을 맡아 더욱 화제다.
“몇 년 전 라 스칼라 극장이 시즌 개막작으로 올려서 붐이 불었어요.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던 마리오 델 모나코는 모든 성악가들의 영웅인데, 집안 내력인지 그 아들도 열정이 대단하세요. 80살인데 지치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셔서 연습실 분위기가 살벌하죠.(웃음) 다행히 저와는 금방 친구가 됐어요. 제 소리가 너무 좋다면서 10월에 자그레브에서 자신이 연출하는 ‘나부코’ 공연에 바로 추천을 해주셨죠.”
그가 맡은 여주인공 오다벨라는 성경의 유디트에 비유되는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오페라에서 몹시 이례적인 캐릭터다. 주요 아리아의 가사도 “나는 살림하는 여자가 아니라 강한 이탈리아 여장군”이라는 내용이란다. “아주 독한 여자예요. 원수인 아틸라가 독약을 먹으려는 순간 구하는 이유가 자기 손으로 찔러 죽이기 위해서죠. 뭐든 자기 손으로 해결을 해야 하니까요. 칼 쓰는 장면도 있고, 액티브하게 상대방을 리드하면서 군사를 끌고 가는 역할이 처음엔 힘들더군요. 새삼 내가 생각보다 여성적인 사람이구나 깨닫게 됐어요.(웃음)”
지금은 마리아 칼라스의 전성기에 비유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지만, 인고의 세월이 길었다. 2004년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로 데뷔한 이래 10년 넘게 끝없이 오디션을 보며 유럽의 온갖 극장을 전전했다. 마흔을 넘겨 빈 슈타츠오퍼와 아레나 디 베로나 무대에 발탁되면서 월드 클래스로 인정받은 대기만성형이다.
“전문 연주자 과정을 마친 라 스칼라에서 단역만 계속 할 수도 있었어요. 라 스칼라의 단역은 공연 횟수가 많으니 주역보다 돈을 많이 벌거든요. 돈을 벌 것인가, 주역에 도전할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돈을 포기했죠. 오디션을 수백 번 본 끝에 아레나에 도전했는데, 한 곡 부르니까 바로 합격되더군요. 이탈리아의 자존심 같은 무대라 저도 놀랐죠.”
세계적인 소프라노라는 직업도 늘 화려한 건 아니란다. 무대 뒤 풍경은 오히려 극한직업에 가깝다. 베르디 시절 ‘아이다’가 최초로 공연됐던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노래했던 야외 오페라도 웃지 못할 사건의 연속이었다. “오페라를 처음 해보는 제작사가 의상 준비를 안해 놓은 거예요. 콘서트처럼 가수들이 자기 옷을 가져올 줄 알았다나요. 최고의 가수들과 오케스트라를 불러서 1000달러짜리 티켓을 매진시켜놓고 의상이 없으니, 가수들이 직접 시장에 가서 천을 끊어다 둘둘 두르고 무대에 서야 했죠. 화장실도 딱 두 칸인데, 관객과 같이 줄을 서야 되더군요. 인터미션 때 너무 급해서 내가 이 공연의 주인공이라고 빌면서 먼저 들어갔죠. 3막에 굉장히 어려운 아리아가 있어서 매번 엄청 긴장을 하는데, 그땐 화장실 때문에 아무 생각도 안나서 제일 잘 불렀던 것 같아요.(웃음)”
임세경은 소위 ‘흙수저’ 성악가다. 한양대 성악과 입학 전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서울대에 다니던 옆집 오빠에게 넉달 동안 배운 게 전부였다. “전주의 먹고 살기 바쁜 집에서 태어났어요. 음악이 하고 싶어도 포기하고 지냈는데, 고3 때 옆집 오빠 노래 소리가 자꾸 들리는 거예요. 무조건 벨을 누르고 조언을 구했죠. 오빠는 난감해하면서도 일단 학교로 와보라더니, 선후배들까지 불러 놓고 가르쳐 주더군요. 결국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가 그 오빠한테 한달에 8만원씩 주고 넉달을 배웠어요. 엄마는 32만원으로 음대 입시를 해결했다고 요즘도 얘기하시죠. 그 오빠는 지금 독일 합창단에 계세요. 제가 솔리스트로 선 무대에서 합창하신 적도 있는데, 뿌듯해 하시더군요.”
지금의 그를 만든 건 라 스칼라 전문 연주자 과정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은 터키 소프라노 레일라 겐처다. 2004년 한국인 최초로 라 스칼라 솔리스트 과정에 합격한 그의 이름을 2년 동안 한번도 불러주지 않았던 애증의 스승이다. “터키 동전에 얼굴이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할머니였는데, 자기가 이탈리아에서 받았던 차별을 보복하듯이 다른 외국인들을 구박했어요. 2년 동안 저를 ‘어이’라고 불렀죠. 매일 울면서 집에 갔는데, 어느날 제가 ‘나비부인’ 아리아를 부르는 걸 듣고는 네 재능을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더군요. 그 후 라 스칼라 무대에 학생이 아닌 프로 대우로 서도록 기회를 줬어요. 차별받았던 2년이 전화위복된 셈이죠.”
그에겐 디바 특유의 새침함이나 고고함이 없었다. 스스로 ‘공주과’가 아니라 ‘예쁜 척’이 제일 어렵다고 쿨하게 말한다. “서 있기만 해도 예쁘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연기파가 됐어요. 예쁜 디바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걸 찾으면 그게 디바라고 생각하고 모든 역을 ‘임세경화’하려고 노력했죠. 이탈리아에서 제 별명이 ‘전쟁용 탱크’거든요. 심플해서 고장 안 나고 전진만 한다는 건데, 조그만 동양인이 씩씩하게 다니니까 에너지를 높이 평가해 준 거죠. 그렇게 봐주니까 더욱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꾀도 좀 부려야겠다 싶어요. 나이를 먹은 거죠.(웃음)”
전성기에 코로나가 터진 아쉬움을 털고 올해 본격적인 재시동에 나선다. 7월 한달 동안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나비부인’을 시작으로 홍콩의 ‘토스카’, 자그레브의 ‘나부코’ 등이 예정돼 있다. “다양한 역할도 좋지만 ‘아이다’와 ‘나비부인’ 전문으로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위치가 된 걸 행운이라 생각해요. 남은 목표는 역할이 아니라 오래가는 것이죠. 고음과 발성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매일 소리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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