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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엔데믹 된다는데 이제 국산 백신 개발?

황태자의 사색 2022. 4. 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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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엔데믹 된다는데 이제 국산 백신 개발?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0:38

업데이트 2022.04.1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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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구독

〈코로나19 백신 개발 현장〉

팬데믹 2년 지나서야 ‘1호’ 윤곽

화이자·모더나 속도와 비교 안돼

90% 접종에 임상시험 모집 난관

‘원 스톱’ 절차 획기적 단축 필요

강주안 논설위원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21일 SK바이오사이언스(SK바사)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1000만회 접종분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1월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나온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국산 백신을 사기로 한 것이다. 아직 개발이 끝나진 않았지만 ‘백신 주권’을 강조해온 정부가 첫 수확을 눈앞에 둔 셈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도 춘천 소재 유바이오로직스 제2 공장에서 박영신 생산2본부장이 백신 생산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백신 3상 시험 승인을 받았다. 강주안 기자

그런데 계약 체결 보름 뒤인 지난 7일 해외에서 들여오는 코로나19 백신이 남아도는 바람에 정부가 1748만 회분의 수입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 밝혀졌다. 사태 초기 늑장 도입으로 국민을 애타게 했던 백신이 이젠 과잉 수입으로 해외 제약사들에게 구매 취소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거액을 주고 외국에서 사들인 백신의 상당량을 벌써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일일 접종자가 줄면서 올해 들어서만 60만 회분 넘게 폐기됐다. 11일 발표한 일일 확진자 수는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고 정부는 ‘포스트 오미크론’ 방침을 고민 중이다. 60세 이상 국민 10명 중 9명이 3차까지 접종을 마친 상황에서 국산 백신 개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 정부 임기 내 출시 어려워

국산 1호 백신은 SK바사의 ‘GBP510’이 유력하다. 아스트라제네카(AZ) 등을 위탁 생산해온 SK바사가 미국 워싱턴대 약학대 항원디자인연구소와 공동 개발 중인 백신이다. 면역증강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기술을 활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월 경북 안동 공장을 방문하며 기대를 보였지만 임기 내에 출시는 어렵게 됐다. 진창현 팀장은 "상반기 내에 개발을 완료하고 하반기에 접종하게 될 전망"이라고 설명한다. 개발 상황과 생산 설비를 살펴보기 위해 현장 취재를 요청했으나 SK바사 측은 "군·경의 경비 등으로 외부인 출입이 안 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SK바사에 이어 3상 단계에 진입한 회사는 유바이오로직스다.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도 춘천에 있는 제2 공장에 찾아가 백신 개발 현장을 돌아봤다. 실험실에선 오미크론 백신용 항원이 담긴 플라스크를 기계로 회전시키고 있다. 3상이 끝나면 양산에 활용할 장비 구축이 진행 중이다. 작은 플라스크에서 시작해 점점 큰 탱크로 용량을 늘려가며 세포를 배양해 1000ℓ 규모에 이르게 된다. 1000ℓ 탱크를 채운 원료로 백신을 만들어 바이얼 단위로 담게 된다.

동물실험은 춘천의 바이오산업진흥원 시설에서 진행된다. 2층 동물실험실에 들어서자 상자들이 보인다. ‘오미크론’ ‘델타’라는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상자 안에는 어른 손가락보다 약간 큰 마우스들이 5~6마리씩 들어있다. 이찬규 연구본부장은 "개발 중인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과 델타 변이용 백신을 주사로 맞은 마우스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몸에 형성된 항체 등을 분석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 사람 대상 시험에 진입하는 것이다. 새로운 감염병이 퍼져 백신이 개발될 때마다 사람보다 마우스들이 먼저 접종한다. 큐라티스 등 여러 국내 업체가 백신 개발에 뛰어들어 1·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백신 플랫폼 갖게 될까

문제는 속도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9종의 백신이 각국 정부에서 승인을 받았고 19종은 긴급 또는 제한적 사용 허가를 받았다. 미국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앤테크와 공동으로 개발을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백신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흐른 지금도 국산 백신은 전부 미완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산 백신 개발에 의미가 크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이 돼도 계속 추가 접종을 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올가을에도 맞을지 모르며, 매년 접종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지원위원회 사무국 유주현 총괄팀장은 "국산 백신 플랫폼을 개발해 두면 다른 감염병 사태가 터져도 신속하게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 업체들은 여러가지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SK바사와 유바이오로직스·HK이노엔은 합성항원백신이다. 큐라티스는 화이자·모더나와 같은 mRNA로 개발 중이며 셀리드는 바이러스벡터 방식이다. 진원생명과학은 DNA백신을 개발 중이다. 이들이 개발을 완료하면 한국은 다양한 백신 플랫폼을 보유하게 된다.

속도가 늦어질수록 어려움은 가중된다. SK바사가 올 초 밝힌 임상 3상 참여자를 보면 4037명 중 3467명을 해외에서 모집됐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백신 접종을 마친 상황에선 임상 시험 대상자를 찾는 작업부터 난관이다. 결국 백신 접종률이 낮은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백신 개발사들이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다.

‘대조 백신’ 제공 거부한 외국 제약사

외국 제약회사들의 비협조 역시 암초다. 보건 당국은 지난해 8월 국산 백신 개발회사들에 ‘대조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발 과정에서 효능을 비교할 수 있도록 시판 중인 백신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외국 제약회사 설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조 백신을 구하려고 대통령까지 나서고 외교 역량을 총동원했지만, 외국 제약사는 끝내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AZ 백신을 위탁생산한 SK바사만 감염병혁신연합(CEPI)을 통해 AZ를 대조 백신으로 구할 수 있었다. 보건 당국 관계자는 “외국 제약사의 대조 백신을 구하기는 어려워 보이므로 SK바사 백신이 개발되면 이를 국내사들이 대조 백신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까다로운 허가 절차도 지연 요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19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조치를 해왔다. 백신 개발사들은 “과거보다 빨라진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서 초고속으로 진행한 화이자·모더나 사례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고 말한다. 백신 개발은 최소 3~5년 걸리는 프로세스다. 화이자의 CEO 앨버트 불라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을 담은 저서 『문샷』에서 이를 18개월로 줄이고 다시 8개월로 단축한 일련의 과정을 ‘광속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다.

한국 백신 회사 관계자들이 꼽는 지체 이유는 다양하다. “여전히 과도한 서류를 요구해 문서 준비에만 몇달씩 날아간다.”(A사) “‘보완’ 요구 없이 한 번에 통과한 사례가 없다.”(B사) “정부 지원금을 한 번에 한 과정씩에 국한해 여러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기 어렵다.”(C사) “‘원스톱’이라고 하지만 접수만 그렇고 이후엔 따로따로다.”(D사)

대선 이후 추진력 떨어진 느낌

이런 주장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안전성이라는 부분은 양보할 수가 없다”며 “과거보다 최대한 신속하게 해왔다”고 설명했다. 만약 화이자나 모더나가 한국에서 백신을 개발했다면 9개월에 가능했을까. 한 보건 당국 관계자는 “솔직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 인력 문제 등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 바이오 벤처 대표는 “개발과 심사 양쪽 모두 인력이 적고 자본까지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구조에선 특단의 발상 전환이 없다면 향후 다른 감염병이 발생해도 국산 백신이 속도전에서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새 정부의 국산 백신 정책도 관건이다. 백신 업체 관계자는 “대선 이후 정부 차원의 추진력이 약화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백신 회사 대표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식약처 차원이 아니라 대통령 등 정부 전체를 통솔하는 사람이 직접 챙겨야만 외국 제약사와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진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상용화된 mRNA 백신이 예방 효과나 부작용을 고려할 때 그리 완벽한 백신이 아니고 우리가 개발하는 백신이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주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