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차 없이 온도 맞춰주는 주전자, 커피 맛 브라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타임모어’ 피시 스마트 캐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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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설정한 온도를 오차 없이 유지하는 ‘ 타임모어’ 피시 스마트 전기 캐틀. [사진 윤광준]
모처럼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바텐더는 능숙한 솜씨로 위스키에 탄산을 섞어 칵테일을 준비했다. 위스키 상표까지 각인시킨 기다란 사각 얼음을 담은 하이볼 잔은 깨질 듯 얇았다. 황금빛 위스키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입술에 닿는 찬 온도의 감촉이 좋았다. 마신 술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바텐더의 정성은 유리잔의 선택으로 완결된 느낌이다. 함께한 일행 중 하나가 대번에 일본의 기무라 글라스임을 알아봤다. 입술에 닿는 잔의 감촉을 중요시해 평소 술잔을 모았던 공력이 드러난 셈이다.
예민한 감각의 충족을 위해 온갖 시도와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덕후들이 있다. 술만큼 잔을 신경 쓰는 디테일이 나는 좋다. 깊은 관심으로 대상에 빠져들고 몰입된 선택의 경험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 삶에 투영됐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전모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지고 마시는 동안 알게 된다. 취하기 위해 허겁지겁 마시는 술이라면 이런 번거로운 절차와 과정은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빠진 일상의 관행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좋고 나쁨을 드러내는 것만이 취향이라면 싱겁고 멋쩍다. 좋은 이유를 1백 가지 정도는 댈 수 있어야 취향은 의심받지 않는다. 다섯 개로 나뉘어 날뛰는 감각을 두루 만족시키기 위해선 경험의 수가 수백 개라도 모자란다. 그 끝이 궁금해 온갖 시도와 경험을 거쳐 얻게 된 확신의 행동이 취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두께가 다르고 굽이 있는 유리잔이 손끝과 입술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종잇장처럼 얇은 유리잔과 치아 끝에 걸리도록 굽 두른 잔은 왜 필요할까. 알기 위해선 하나하나 써 보는 수밖에 없다. 이미 알아버린 이들이 먼저 감각의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원했던 취향과 그 감각의 물건이 합치됐을 때의 쾌감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취향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로 굳는다. 어떤 경우라도 그 바탕은 오감의 회복과 균형감각의 발동이다. 경험으로 얻게 된 깨달음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절로 구분시킨다. 지녀야 할 물건과 버려야 할 물건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열 개를 버릴 수밖에 없는 과정에서 키운 안목의 힘이다. 잘고 사소한 일들의 연속으로 채워지는 게 일상이다.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 자잘한 선택이 모여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시킨다. 약은체하며 남의 경험을 빌려 과정을 단축시킨다 해도 별 소용 없다. 내 것이 빈약하면 선택을 주저하게 된다. 취향은 행동으로만 드러나는 법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라이프 스타일이란 결국 시간과 돈, 노력을 아낌없이 써서 만든 게 맞다.
술자리의 여운은 길게 남았다.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작업실에 있으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려 즐긴다. 20년 넘게 나의 의식과 행동을 환기시키는 의례와 같은 행동이다. 그동안 커피로 할 수 있는 온갖 짓을 다 해봤다. 좋다는 원두를 사들이고 품평했으며 바리스타 흉내까지 내봤다. 여러 방식의 커피 도구와 에스프레소 머신도 두루 써 봤다. 커피 벨트를 따라 산지도 둘러봤고, 전문지 발행인을 친구로 둔 덕에 지식도 늘었다.
나의 커피 사랑은 밖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과 병은 떠들고 다녀야 하는 게 맞다. 더 많이 알고 능력 있는 이들을 만날 개연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소문의 파장은 컸다. 수입사와 바리스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변엔 오래전부터 원두 로스팅을 하는 친구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수시로 커피를 보내줬다.
온갖 도구와 방식의 섭렵 끝에 갈아놓은 커피에 물만 부으면 되는 간단한 드립 추출법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불만은 그치지 않았다. 드립 할 때마다 맛의 편차가 심해서 속상하기까지 하다. 스스로 깜짝 놀랄만한 대단한 맛은 어쩌다 한 번의 우연함으로 얻어진 듯했다. 단순해 보이는 일일수록 경지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과정의 단순함 이면에 깔린 전제부터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커피는 과학이라는데 조건을 지키면 안 될 리 없다.
함께 로스팅된 원두라도 분쇄된 입자의 크기나 물의 온도, 추출 시간에 따른 변수가 맛을 좌우한다. 초기엔 차이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결과의 기대치가 크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예전엔 다양한 종류의 원두커피와 좋은 로스팅을 입수할 기회가 적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실력 있는 바리스타들이 최고 등급의 스페셜티 원두를 초 단위로 정밀하게 로스팅한 커피가 내 곁에 있다.
추출 방식과 사람의 기량이 나머지 맛을 낸다. 커피를 가는 그라인더의 성능도 중요하다. 미분이 없는 고른 입자가 물 빠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물의 성분도 흘려버릴 수 없다. 미네랄이 풍부한 생수가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광물질 성분이 제거된 연수에서 훨씬 깊은 맛이 우러난다. 필터 방식의 정수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다음은 물의 온도와 추출 시간이다. 딱딱한 원칙이 무슨 소용 있으랴만 쓴맛이 우러나면 온도를 내려야 한다. 커피의 신맛은 온도를 올려야 줄어든다.
모든 건 제 입맛에 맞춰야 한다. 하지만 드립 잘하는 이들의 솜씨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작은 차이를 엄청 크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커피 종류에 따라 물의 온도를 바꾸고 정확하게 유지하는데 더 큰 힘을 들인다. 고수의 비법은 끓인 물을 낮은 온도로 중탕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항온을 유지하는 거였다. 물의 온도는 90°C, 추출 시간은 2분10초 같은 그들만의 고집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나와 다른 점이다.
내게도 좋다는 코만단테 그라인더와 정밀한 타이머, 저울이 있다. 최상급 원두도 충분히 쟁여놨다. 걸러진 물도 이상 없다. 바꾸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물 끓이는 주전자다. 물을 끓이는 데 무슨 차이가 있으랴 싶었다. 아차! 방점을 잘못 찍었다. 물을 끓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온도다. 난 그동안 귀찮아서 끓인 물의 온도를 대충 체크해서 썼다. 온도 변화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의 기막힌 커피 맛은 절묘하게 온도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였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기능이 더해진 주전자는 이래서 필요하다. 커피 판에선 ‘드립 캐틀’이라 부른다. 필요하면 바로 사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놀랐다. 너무 종류가 많아서다. 고수의 조언은 이럴 때 유용하다. 나의 커피 사부는 ‘타임모어’란 브랜드의 ‘피시 스마트 전기 캐틀’을 추천해 줬다. 커피 판에 웬 피시? 물고기 어(魚)자를 쓰는 대만 디자이너의 이름을 붙인 거다.
애플의 제품을 보는 것 마냥 단순한 디자인에 끌렸다. 손으로 제어판을 문지르면 온도조절이 된다. 설정된 온도와 오차 없이 유지되는 성능도 맘에 든다. 내 입맛으로 찾아낸 89°C가 절실했다. 항온으로 데워진 물로 드립 하니 비로소 원하던 커피 맛이 난다. 브라보! 이럴 수가! 그동안 나의 커피 맛이 형편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일은 이토록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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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 사진가. 충실한 일상이 주먹 쥔 다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대 위에서 깨달았다. 이후 음악, 미술, 건축과 디자인에 빠져들어 세상의 좋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됐다. 살면서 쓰게 되는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일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심미안 수업』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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