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숨은 보물, 목련천국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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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은 기적 같은 공간이다. 고 민병갈 박사가 1962년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세계적인 수준의 수목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수목원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봄이 길어 다양한 꽃을 오래 볼 수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실감 난다. 예년보다 봄꽃 개화가 늦다고 성화였는데 삽시간에 벚꽃이 져버렸다. 꽃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면 충남 태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천리포수목원에는 4월 말에도 벚꽃과 목련꽃이 핀다. 벚꽃과 목련꽃뿐만이 아니다.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한국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이다. 올해는 천리포수목원에도 뜻깊은 해다. 설립자 고(故) 민병갈 박사(1921~2002) 20주기다. 수목원은 민 박사를 기리는 추모정원을 정비했고, 개원 이후 처음으로 비공개 지역을 개방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나무·꽃들의 피난처, 지금이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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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4일까지 진행되는 목련축제 기간에는 프로그램 예약자에 한해 미개방 지역을 둘러볼 기회를 준다. 목련정원과 목련산은 이 기간에만 개방한다. 민 박사가 살던 후박나무집도 볼 수 있다.
14일 오후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연못가에 진분홍꽃 뒤덮인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꽃이 땅 쪽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독특했다. 푯말을 보니 ‘종벚나무’다. 서울보다 한참 남쪽인데 벚꽃이 이제야 피다니. 이른 봄 피었다가 후두두 지는 목련꽃도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요즘이 한창이다. 천리포수목원 최창호 기획경영부장이 “내륙보다 일교차가 적고 기온이 천천히 오르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이라고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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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목련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눈높이에서 꽃을 볼 수 있다.
연못 위쪽에는 ‘민병갈 추모정원’이 있다. 올해 민 박사 20주기를 맞아 재단장했다. 그가 생전에 애정을 가졌던 목련과 호랑가시나무를 중심으로 정원을 꾸몄다. 민 박사 흉상 옆에 자줏빛 꽃 만개한 별목련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수목원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사람 손길이 탄 인공 세상이다. 수목원에서 최대한 인위를 배제했을 때 우리는 자연미를 느낀다. 천리포수목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수목원은 사람이 아닌 나무들의 피난처”라고 말한 설립자의 나무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민병갈, 나무 심은 사람』, 임준수, 2021년).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초가집 한 채에도 평생 수목원을 가꾸다 간 사람의 온기가 스며 있다.
나무에 평생 바친 1호 귀화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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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을 가꾼 고 민병갈 박사
왜 서쪽 땅 끄트머리 천리포에 수목원을 만들었을까.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가 한국을 찾은 건,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이었다. 미군 정보장교로 부임한 그는 틈만 나면 서울을 벗어났다. 한국의 산천이 좋아 친구들과 팔도를 여행했다. 그러다 1962년 천리포 해변 근처 황무지나 다름없던 땅을 샀다. 잘 가꿔서 노년을 보낼 작정이었다. 한옥을 짓고 나무를 심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한국은행 고문으로 일했다. 주식 투자를 병행하며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 돈을 모조리 천리포에 쏟아부었다. 추가로 땅을 매입하고 희귀한 나무를 국내외에서 사들였다. 1만㎡였던 수목원 부지는 57만㎡로 넓어졌다. 1970년 수목원을 시작한 민 박사는 9년 뒤 귀화했다. 제1호 귀화 미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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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는 동백도 많다. 한 나무에서 여러 색 꽃을 피운 동백.
천리포수목원은 세계적인 수준의 수목원이다. 2000년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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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박사가 쓰던 호랑가시나무 문양의 식기와 엽서.
5대 수종(목련·호랑가시나무·동백·단풍·무궁화)에 집중한 공로가 컸다. 김용식 천리포수목원장은 “설립자는 막대한 재산을 들인 수목원을 사유화하지 않고 1997년 재단법인에 증여했다”며 “고인의 뜻을 따라 수목원 본연의 역할인 식물 연구와 보존,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련만 64종 … 24일까지 목련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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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곳곳에 수선화도 만개했다.
지금 수목원에는 수선화·동백꽃·진달래꽃 등 온갖 꽃이 만개했다. 주인공은 단연 목련이다. 수목원은 64종, 871개 분류군의 목련을 보유했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종류의 목련꽃이 핀다. 그래도 목련의 계절은 봄이다. 이달 9~24일 목련 축제를 여는 까닭이다.
수목원 본원인 ‘밀러 가든’에도 목련이 많다. 방문객은 대부분 밀러 가든을 중심으로 수목원을 즐긴다. 보통 밀러 가든 외 지역은 식물 연구와 증식을 위한 공간이어서 출입이 제한되지만, 목련 축제 기간에는 들어갈 수 있다. ‘가드너와 함께 걷는 목련정원’ ‘목련산 트레킹’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목련산은 개원 이후 올해 최초로 개방했다.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걷는 코스다.
에코 힐링센터 뒤편 목련정원은 목련 천국이라 할 만했다. 꽃에서 수박 냄새가 나는 ‘불칸’, 꽃 한 송이가 사람 머리만 한 ‘로부스타’, 아이스크림 색깔 같은 ‘스트로베리 크림’ 등 난생처음 보는 목련이 가득했다. 축제를 앞두고 만든 3.6㎞ 목련산 걷기 길은 1시간 반 코스였다. 코스 초입에는 민 박사가 거주했던 ‘후박나무집’이 있었다. 마당에 그가 남달리 아꼈다는 ‘선듀(Sundew) 목련’ 한 그루가 있었다. 민 박사의 기품을 닮은 나무였다. 그 곁에 한참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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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은 연중무휴다. 오전 9시 열고 오후 6시 닫는다. 숙소도 있다. 저렴한 에코힐링센터는 6만원(2인실)부터, 독채형 가든 하우스는 15만원부터다. 목련 축제는 이달 24일까지다. ‘가드너와 함께 걷는 목련정원’ 프로그램은 4만원, ‘목련산 트레킹’은 3만원이다. 수목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입장료는 어른 9000원, 14세 미만 어린이는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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