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한국 사회에 없었던 범죄자… 그에게 사람은 한낱 도구였다”
보험금 노린 희대 사이코?
프로파일러가 본 이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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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계곡 살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건 용의자 이은해(31)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2002년 3월 한 지상파 예능 방송에 출연한 초등학생 이은해는 장애가 있는 부모의 휠체어를 보관하느라 혼자 쓸 방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크면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고 싶다”던 그의 다짐은 전파를 타고 전국의 시청자를 울렸다.
정확히 20년 뒤 이은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의 ‘괴물’이 돼 다시 TV에 등장했다. 8억원의 사망 보험금을 노려 내연남과 함께 남편을 계곡물에 빠뜨려 죽이고, 4개월의 도주 행각 끝에 살인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붙잡힌 것. 이은해가 자취를 감춘 동안 언론에 보도된 그의 행적들은 한편의 범죄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지명 수배를 받아 쫓기는 와중에 태연하게 여행을 다녀오는 대범함, 성형 후 달라진 외모를 찬양하는 온라인 추종 세력도 등장했다. 이은해는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됐을까. 범죄 분석 전문가들과 함께 그 심리를 파헤쳐봤다.
◇사람을 도구처럼 이용
이은해는 내연남인 조현수(30)와 함께 지난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경 경기 가평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모씨(사망 당시 39세)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은해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윤씨에게 4m 높이 바위 절벽에서 계곡에 뛰어들도록 한 뒤 윤씨의 구조 요청에도 1시간 가까이 넘게 구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당시 단순 변사로 처리됐던 사건은 지난 2020년 한 지상파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뒤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최근 경기 고양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된 이은해는 살인 및 살인미수·보험 사기 미수 혐의로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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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분석 전문가들은 이은해를 두고 “기존 강력 범죄자와 다른 유형의 사이코패스”라고 입을 모았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수사 당국에서 정식으로 검사를 하겠지만, 이은해는 타인을 철저히 이용해 골수까지 빼먹고도 죄의식이 없는 반사회성, 남을 철저히 조종하는 걸 즐기는 지배적인 성향, 상습적인 거짓말 등 이익 추구형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이은해는 10대 시절부터 여러 범죄를 접하면서 선택적 공감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성인이 되면서 범죄 대상으로 정한 사람에겐 공감하지 않는 태도가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버린 고유정의 범행 동기가 분노였다면, 이은해는 (행동에서)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그저 ‘저 사람(남편 윤씨)을 물에 빠뜨려 없애고 이익을 얻겠다’는 도구적 살인에 익숙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은해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 10대 시절부터 성매매·절도·사기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전문가들은 “이은해가 어려서부터 범죄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주변 모든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행동 방식이 굳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은해는 2017년 3월 대기업 연구원인 남편 윤씨와 결혼하고 인천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은해는 연봉으로 6000만원가량을 받던 윤씨의 월급을 모두 가져가고, 윤씨를 회사 사무실과 가까운 수원의 반지하 월셋방에 살게 했다. 윤씨가 사망한 뒤 그의 유족 앞으로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도 1000만원 넘게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유족 측에 따르면 윤씨가 생전 모았던 3억원과 결혼 후 빌린 돈 등을 합쳐 7억 상당의 금액이 이은해 수중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편 윤씨는 생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윤씨는 이은해와 카톡 대화에서 ‘1만원만 입금해줘. 도시락, 생수 사먹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한 방송에선 이은해가 밀린 월세를 냈다고 말한 윤씨에게 ‘친구들과 여행 경비가 필요한데 돈을 썼느냐’며 화를 내는 통화 음성이 공개되기도 했다. 윤씨 명의의 자동차는 내연남인 조현수가 사용했다.
범죄 분석가들은 이은해가 집요하게 윤씨를 착취하던 모습과 달리 치밀하지 못한 점도 주목했다. 이은해는 2019년 사망에 이른 계곡 익사 사건을 포함해 총 3차례 윤씨 살해를 기도했다. 2019년 2월 복어 피가 섞인 음식을 윤씨에게 먹였는데 치사량 미달로 미수에 그쳤고, 3개월 뒤엔 낚시터에서 수영을 못하는 윤씨를 물에 빠뜨렸다가 지인에게 발각됐다. 이은해는 윤씨의 발인 날에 조현수와 함께 윤씨의 수원 자취방에 드나드는 모습이 건물 CCTV에 찍히기도 했다. 이수정 교수는 “이은해는 결정적으로 윤씨의 사망 보험금이 나오지 않아 방송사에 이를 제보했다가 거꾸로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는 실수를 했는데 이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세상 물정 인식이 떨어져 생긴 것”이라고 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사이코패스가 모두 치밀한 범죄자는 아니다”라며 “이은해는 (사람을 이용하듯) 방송, 언론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공범 조직 있다”
가평 계곡 사건이 남긴 의문점 가운데 하나는 ‘공범’이 있는지 여부다. 이수정 교수는 “오피스텔 같은 대단지 주거지는 최근 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은해가 숨어있던 오피스텔 원룸도 그가 과거 활동했던 성매매 조직에서 마련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은해와 조현수가 도주하는 동안 1박2일 여행을 간 것도 꼬리 자르기를 위해 공범들과 만나 모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 윤씨 살인의 도구로 쓰인 복어 독은 일식 조리사 자격이 있어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이은해가 윤씨를 살해한 이후 도피 과정에서 다수의 조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은해의 인천 신혼집에선 대포폰이 20여 대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이은해를 중심으로 한 범죄 조직이 신혼집을 아지트로 삼고 남편 윤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각종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은해가 조현수처럼 청소년기에 성매매, 절도를 하면서 알게 된 전과자들과 집단을 이뤄 조직적으로 남을 괴롭히고 금전을 빼앗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이런 집단은 가출팸(가출 청소년 집단)이었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조직화된 것”이라며 “이들의 특성은 피해자 주변 가족·지인 관계를 모두 끊고 종속하게 만든 다음 현금, 사회적 자산을 다 빼먹고 마지막에 버리는 것인데 이은해의 경우 그 방식이 살인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이런 조직은 위계질서나 직책은 없으면서 돈뿐 아니라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에서 기존 조폭과는 다르다”며 “미국에서도 IT기기 사용에 능하고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10~20대 범죄 조직을 링(Ring)이라는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분류하며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법을 너무 잘 아는 이은해
결국 검경은 남편 윤씨 살인 사건과 이은해 이전 남자 친구의 사망 사건 2건에서 이은해의 혐의점을 밝히고 배후의 공범 조직을 찾아내는 데 수사 역량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은해와 조현수가 진술을 거부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 교수는 “이은해나 조현수가 순순히 경찰 조사에 응할 경우 범죄 배후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비협조로 일관하는 것”이라며 “이은해는 현재 경찰이 어느 정도 선까지 수사가 진척이 됐는지, 증거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를 역으로 살피는 수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이은해는 10대부터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 너무 법을 많이 아는 ‘법꾸라지’가 됐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은해에 예속된) 조현수는 이은해에게 무한 충성심이 있고 이은해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의 입을 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사기 범죄로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계곡 살인 사건의 또 다른 공범을 집중 조사해 이은해, 조현수의 죄를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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