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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암호화폐 투자 그룹이 산 국보

황태자의 사색 2022. 4. 2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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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암호화폐 투자 그룹이 산 국보

고려불감에 아무 관심 없다가
비국적자가 샀다는 소식에
침 튀기며 화내는 사람들
"그것을 잃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몰라"

  • 입력 : 2022.04.23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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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지 않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이 일만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유럽 웹사이트에 블록체인, 가상화폐와 관련한 기사를 쓰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와 IT라는 주제가 너무 어색한 조합이라는 지적을 해도 할 말은 없다.
 
상반된 두 주제에 관한 글을 써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몇 주 전 두 주제를 넘나드는 최초의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중순 탈중앙화된 자율조직, 다오(DAO)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국보 금동삼존불감을 구매했고 나는 이에 관한 기사를 써야 했다.

금동삼존불감은 지난 1월 간송미술관에 의해 경매에 올려졌으나 낙찰자를 찾는 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공동투자자 집단인 헤리티지 다오가 불감을 구매했고 그들은
소유권 51% 지분을 간송재단 측에 기부해서 금동삼존불감이 영구히 전시될 수 있게 했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내가 일하고 있는 웹사이트에 쓰고 있는 상황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지도상에서 한국을 찾는 것도 쩔쩔맬 것이 뻔한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은 불감의 문화적 의미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오다니.

이 뉴스가 보도된 직후, 한국의 주요 일간지를 검색해서 이 사건에 대해 쓴 칼럼을 찾아 읽어보았다.
 
모두가 국보가 판매된 것에 공분하고 있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한국의 박물관이 국보를, 특히나 싱가포르에서 설립된 외국계 단체에 판매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전문가의 의견은 옳다. "어떻게 누가 감히 한국의 문화재를 팔려고 할 수 있는가?
 
국보는 한국에 귀속되고 한국의 박물관에 전시돼야 한다"는 의견을 가졌다면 여러분 역시 옳다.

그러나 이 논쟁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 한국의 국보는 한국에 귀속돼야 하고 한국 박물관에 전시됨이 마땅하지만
슬픈 사실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감 따위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겠지만, 역사 관련 직종이 아닌 이상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다.
 
고려의 예술에 대해 자신 있게 작은 쪽지라도 꽉 채워 서술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 이 사건의 가장 큰 비극은 헤리티지 다오 외에는 아무도 국보 73호를 사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고려 미술품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TV에서는 재미있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야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한다.
 
거기다 글로벌 팬데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집값은 올라만 간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문화는 값을 매길 수 없이 소중하다. 2022년 전통문화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저조하다.
 
이제 그 유일한 가치는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소모품적인 역할만으로 전락한 듯하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현대 사회에서 등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 치명적일 수 있다.
 
조니 미첼이 이런 노래를 했다. "그것을 잃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전통문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더 많은 박물관이 문을 닫게 되며, 더 많은 값진 문화유산들이 팔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과거에 대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나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헤리티지 다오가 국보 73호를 구매한 것이 반가웠다.
 
그것은 내가 '디지털 소유권' 등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TV와 인터넷에 고려 미술품과 암호화폐가 연관된
기사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이 사건으로 인해 최소한 누군가는 소중한 문화유산과 역사에 대한 글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