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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드 300만장 실종 사건

황태자의 사색 2022. 4. 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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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드 300만장 실종 사건

입력 2022.04.27 03:00
 
 
 
 
 
서울 시내에서 한 시민이 카드를 이용해 제품을 구매하는 모습. /연합뉴스

공기업에 다니는 정모(38)씨는 작년부터 체크카드를 지갑에서 빼서 집에 두고 다닌다. 돈을 지불할 때 신용카드 또는 간편 결제 서비스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간편 결제를 사용해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체크카드의 장점이 없는 것 같다”며 “(체크카드는) 유효기간이 끝나면 갱신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같은 간편 결제 서비스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체크카드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300만장이 넘는 체크카드가 사라졌다. 신용카드가 등장해 지폐 사용을 크게 줄인 데 이어, 간편 결제 페이가 체크카드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체크카드 309만장 사라져… 대신 페이 삼총사 결제액 작년 63조, 2년새 6배로 늘어난

26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전업 카드사 7곳(신한·KB국민·삼성·현대·롯데·하나·우리)이 발행해 사용 가능한 상태에 있는 체크카드는 6265만장이다. 2020년 말에 6574만장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309만장이 줄었다. 체크카드는 2016년 6788만장으로 최고점에 달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7년 6741만장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매년 수십만 장씩 감소하더니 작년에 한꺼번에 309만장이 사라진 것이다. 신규 발급도 감소하고, 유효기간이 도래했을 때 갱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크카드의 퇴조와 맞물려 간편 결제 서비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 등 3가지 간편 결제 서비스로 결제된 금액은 63조6702억원에 달한다. 2019년 10조5881억원, 2020년 42조7824억원이 결제된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성장이다.

은행 계좌에 연결해 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간편 결제 서비스는 이용액이 은행 계좌에서 바로 빠져나가는 체크카드와 구조가 엇비슷해 소액 직불 결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간편 결제를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체크카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카드업계는 특히 온라인에서 소액 결제가 잦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0년대생)가 대거 체크카드에서 간편 결제로 넘어가고 있다며 위기감을 표시하고 있다.

 

체크카드와 달리 신용카드는 부가 서비스 혜택이 많고 신용 구매를 하는 방식인 데다 경제력이 있는 중년이 주된 고객층이기 때문에 간편 결제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신용카드는 모두 1억1769만장으로서 1년 전보다 396만장 늘어났다.

◇카드사들 수익성 낮다며 체크카드 외면

정부는 가계 부채 위험을 줄이고자 외상 개념인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사용을 장려해왔다. 연말정산을 할 때도 소득공제율을 신용카드는 15%, 체크카드는 30%를 적용한다. 하지만 간편 결제로 쓴 금액도 현금영수증 발급을 신청하면 체크카드처럼 3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체크카드가 간편 결제보다 유리한 점이 별로 없는 것이다.

카드사들도 수익성이 낮다며 체크카드 발급에 소극적이다. 신용카드는 카드론이나 현금 서비스와 연계시켜 추가 수익을 끌어내지만 체크카드는 이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수료율도 매출 3억원 이하 사업장 기준으로 신용카드는 0.5%이지만, 체크카드는 0.25%로 절반이다. 신용카드와 달리 체크카드는 연회비도 없다.

체크카드를 은행 계좌와 직접 연동해 사용하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로 은행 지점에 찾아가 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체크카드 신규 발급량이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핀테크업체들의 공세에 맞서느라 이익률이 낮은 체크카드에 대한 관심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향후 핀테크업체들이 신용카드와 비슷한 온라인 후불 결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체크카드는 설 땅이 더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카드사 임원은 “체크카드가 당장 돈벌이는 안되더라도 중고생이 많이 쓰기 때문에 미래 고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10대도 간편 결제를 널리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