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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배고파, 기록·감각·기술 완벽한 ‘궁극의 스케이팅’ 꿈

황태자의 사색 2022. 5. 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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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배고파, 기록·감각·기술 완벽한 ‘궁극의 스케이팅’ 꿈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30 00:02

업데이트 2022.04.3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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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인터뷰] ‘쇼트트랙 월드 퀸’ 최민정

최민정은 “영원한 1등도, 당연한 1등도 없다. 동메달도 금메달만큼 귀하다”고 했다. 최영재 기자

최민정(24·성남시청)은 주니어 시절부터 ‘쇼트트랙 천재’로 불리던 선수였다. 1m63㎝의 작은 체구지만 엄청난 순간가속력과 지구력을 앞세워 빙판을 평정했다.

최민정은 이제 ‘쇼트트랙 월드 퀸’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올해 2월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초반 중국의 편파 판정에 시달렸지만 1000m 은메달을 시작으로 반전을 시작했고, 1500m 금, 3000m 계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4월 1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끝난 세계선수권대회는 최민정의 ‘여왕 즉위식’ 무대였다. 4개 종목(1000m, 1500m, 3000m 슈퍼 파이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통산 4번째 여자부 종합우승(2015,2016,2018,2022년)을 달성했다. 특히 3000m 계주에서 막판 불꽃같은 ‘아웃코스 질주’로 드라마 같은 역전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1,2위를 확신했던 캐나다-네덜란드 선수가 약속이나 한 듯이 얼굴을 감싸 쥐는 모습은 뭉크의 그림 ‘절규’를 연상케 했다.

최민정은 과거엔 ‘뭔가 불안하고 쫓기는 모습’의 선수였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른 지금은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최민정의 소속사 올댓스포츠에서 그를 만났다.

관중석도 ‘어, 이건 뭐지’ 놀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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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세계선수권으로 이어지는 빅 시즌이 끝났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좀 다녀왔고요. 행사나 인터뷰도 소화했습니다. 학교(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는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남은 15학점을 채워야 합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졸업은 해야죠. 하하.”
세계선수권 3000m 계주 결승의 엄청난 아웃코스 역전승이 요즘도 화제입니다.
“두 바퀴를 남기고 3등으로 계주를 받았는데 거리가 생각보다 많이 벌어져서 쉽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마지막 주자로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달렸죠. 한 바퀴 남았을 때 저는 속도가 확 나고 1,2등은 몸싸움을 하면서 속도가 좀 줄었어요. 그 찰나의 타이밍이 잘 맞아서 추월을 할 수 있었죠.”
결승선 들어올 때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마지막 바퀴 돌면서 ‘이거 되겠다’ 싶었고 결승선 끊는 순간 ‘아, 내가 먼저 들어왔구나.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좀 많이 놀랐고 진짜 짜릿했던 순간이었죠. 관중석도 ‘어, 이건 뭐지’ 하는 놀람과 반전의 분위기였어요.”
최 선수의 극적인 레이스를 보면서 ‘나도 힘들지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댓글을 남기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런 댓글도 많이 봤고 ‘선수님처럼 저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니까 좋은 일이 생겼다’는 내용의 손편지도 많이 받았어요. 운동선수로서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감사했고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졌어요.”
아웃코너로 추월하려면 엄청난 가속력이 필요한데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는지요.
“기본적으로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기술도 몸에 배야 합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많이 해야 하고요. ‘나보다 더 연습을 많이 했다면 그 선수가 금메달을 따라’고 말했다는 건 살짝 와전이 된 거고요.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경쟁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한창 체력훈련 할 때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늘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최민정이 2022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여자 1000m 준결승에서 역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쇼트트랙은 변수가 많고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매력이다. 그러나 몸싸움 과정에서 실격자가 나오고 순위가 뒤집히는 경우가 잦아 ‘공정한 스포츠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최 선수는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경기도 많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점 때문에 누구에게나 1등을 하거나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쇼트트랙의 매력”이라며 “그런 변수를 줄이기 위해 선수들은 굉장히 노력하고 준비합니다. 그러면서도 ‘쇼트트랙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죠. 그런 변수까지 감안하면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힘들고 지루한 훈련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선수촌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은데 친구들이랑 통화를 하면서 수다 떠는 게 좋고요.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면서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게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되는 것 같아요.”

반려견 위해 열심히 사료값 벌어야

옹심이(반려견) 자랑 좀 해 주세요.
“(얼굴이 확 밝아지며) 옹심이 자랑하려면 한도 끝도 없긴 한데…. 진짜 뭘 해도 다 귀여운 것 같아요. 애교도 많고. 옹심이를 위해서 열심히 사료값 벌어다 주고(웃음), 장난감이나 간식도 많이 사다 줍니다. 옹심이는 동물이나 캐릭터 인형을 좋아해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커서 보니까 운전하는 일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빙상장에서 집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전을 해 주셨고, 제가 체격이 작으니까 엄마가 먹는 것도 신경을 많이 써 주셨어요. 오늘의 최민정이 있게 해 주신 분이죠.”
스물넷인데 너무 많은 걸 이루었어요. 아직도 배가 고픕니까.
“당연하죠(웃음). 지금보다 더 잘 타고 싶어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지금 자리에서 더 하다 보면 더 좋아질 수 있고 더 빨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스케이팅은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느끼는 어떤 감각이나 기술 같은 부분도 있을 거라고 봐요.”

그 얘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2위를 한 ‘맞수’ 이상화를 꼭 안아줬던 고다이라 나오(일본)다. 2018년 6월 도쿄에서 만난 고다이라는 “궁극의 스케이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궁극의 스케이팅이란 ‘몸의 움직임, 스피드, 마음,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역시 세계 최고 레벨 선수들은 느끼는 게 비슷한 것 같다”고 하자 최민정 선수는 “진짜 멋진 표현이네요. 사실 이번 3000m 계주가 그런 느낌에 가장 가까웠던 경기였어요. 그런 레이스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쇼트트랙 퀸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곽윤기는 유튜버 오빠, 치킨 연금 포인트 4억
인터뷰 중간중간 ‘다섯글자 게임’을 했다. 사진을 보여주고 그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다섯 글자로 답하게 했다.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곽윤기(33·고양시청)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유튜버 오빠’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포츠텔러, 쇼트트랙 연구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곽윤기는 유튜브 채널 ‘꽉잡아 윤기’를 운영하며 쇼트트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 채널의 구독자는 125만 명에 이른다.

최민정 선수에게 본인도 이런 걸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주도적으로 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지만 기회가 되는 대로 언론을 통해 쇼트트랙을 열심히 알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치킨 사진을 보여주자 웃음을 터뜨린 뒤 ‘평생 먹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기도 한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베이징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만 60세까지 매일 ‘1인 1닭’을 할 수 있도록 ‘치킨연금 포인트’를 지급했다. 최민정이 받게 될 포인트는 약 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