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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특위는 지극히 사소한 예다.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의 국가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뜻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일이다. 172석 다수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일사천리로 마무리하는 모습은 윤 당선인에게 처한 현실을 새삼 일깨웠을 것이다. 비단 여소야대 상황뿐이 아니다.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순순히 길을 내주지 않는 맞상대의 특질까지 말이다.
윤 당선인을 키운 건 팔 할이 특유의 직진 성향과 승부사 기질이었다. 검사 시절 정권과의 갈등 국면에선 그의 기개가 빛이 났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10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을 폭로하거나 2021년 3월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검찰총장직을 던질 때 그러했다. 권력에 ‘맞짱’을 뜨며 ‘검사 윤석열’에게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이는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당시 여권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그런 점에서 윤 당선인이 복기해야 할 대목이 있다. 구(舊)여권의 무도한 입법 꼼수에 묻혔지만 여야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한 과정 말이다. ‘검수완박 결사 저지’를 외쳐온 권성동 원내대표가 덥석 중재안에 합의한 것은 의아했다. 하지만 합의 사흘 만에 윤 당선인이 사실상 파기를 종용한 것이나 느닷없는 국민투표 카드로 국민의힘 의원들마저 떨떠름하게 만든 것은 더 의아했다. 씨알도 안 먹힐 여소야대 국회보다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 동력을 얻겠다는 취지였을 테다. 하지만 자리가 바뀌니 검사 시절 빛났던 기개가 이번에는 그저 거칠고 투박한 리더십으로 보였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 나의 최선을 직진으로 관철시킬 수 없다. 당장 섣부른 합의와 손쉬운 번복으로 당 일각에선 실익도, 명분도 모두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쁜 선례도 만들었다. 내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라면 앞으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대통령 재가는 받고 왔느냐”라고 물을 것 같다. ‘여의도 정치’는 이슈를 끌고 들어와 ‘푸닥거리’를 하고 합일점을 하나라도 찾아가는 게 본령이다. ‘0선 대통령’이 그러한 정치를 혐오하거나 멀리하지 않으면 좋겠다. 국정운영에서 국회의 위상은 생각보다 크다. 덩치 큰 공룡이 ‘생떼’를 부려도 일단 붙잡고 앉아 설득해야 한다. 정치에서의 명분은 그렇게 쌓인다.
홍수영 정치부 차장 gaea@donga.com